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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리미 Apr 17. 2024

2. 임신 최종의 최종의 최종

조용히 아이가 찾아오다

임신 최종의 최종의 최종


   “어서 오세요. 오래 기다리셨죠? 오늘은 아침부터 산모분들이 많으시네요. 앉으세요.”


   이미 결과를 알고 있을 담당 의사는 항상 그렇듯 눈웃음과 함께 긍정적인 미소로 우릴 맞이했다. 잠시 초음파를 들여다보고 확신했는지 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의 눈웃음만으로는 알 수 없었다. 이미 여러 차례 실패를 경험하다 보니 예전처럼 의사 표정을 살피던 버릇은 없어진 지 오래, 그냥 덤덤했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온 터라 빨리 결과 듣고 나가서 맛있는 거 먹으러 가겠다는 마음이 더 컸는지도 모르겠다.


   “안나영 님, 먼저 검사 결과부터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지난번 피검사 수치와 오늘 초음파를 보니….”

   “…”

   “…”


   심사 결과 발표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기대하지는 않고 왔다지만 또 내심 기대하고 있는 마음은 무얼까. 담당 의사의 조그마한 입만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살짝 뜸 들이는 그 짧은 순간에는 소리가 날 정도로 침을 깊게 삼켰다. 의사는 우리 둘을 번갈아 보며 다시 살짝 웃어 보였다.



   “수치가 많이 올라왔습니다. 여기 보시다시피 주 수에 맞게 정상적인 수치로 확인됩니다. 이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겠어요.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임신을 축하드려요.”

   “네??”

   “네??”


   분명 결과를 들었음에도 다시 한번 되물었다. 역시 같은 대답이었다. 어리둥절했다. 아니 얼떨떨했다고 해야 하나. 실감이 나지 않았다. 바로 어젯밤 이제 우리 둘만의 앞날을 계획하자고 했었는데, 오히려 기쁜 마음보다 잠시 ‘어떡하지?’라는 표정으로 서로 바라보았다. 계획이 틀어진 것 같이 사색이 되었다가 다시 발갛게 올라왔다. 다른 말이 필요 없었다. 가슴에 무언가 차 올랐다. 날아갈 듯하게 기분이 좋다거나 오랜 낙방 끝에 운전면허 시험에 합격한 그런 기분이 아니었다. 어리둥절한 기분이 잠시 지속되었고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감정이 통제되지 않았다. 벅찬 가슴 부여잡고 그냥 모든 것에 감사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하다니요. 두 분이 그간 노력하신 것들이 멀리 돌고 돌아온 거죠. 이제 때가 되어 소중한 아이가 찾아온 겁니다. 두 분 너무 고생 많으셨어요.”

   “아니에요. 선생님이 친절하게 챙겨주시고 항상 희망적인 말씀 많이 해주셔서 많이 힘들었지만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희 오늘을 마지막으로 마음 접으려 했거든요. 다시 한번 너무 감사드려요.”

   “아시다시피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임신도 중요하지만 임신 후가 더 중요하니 아내분은 몸조리 잘하시고 과격한 운동은 절대 금물입니다. 될 수 있으면 누워 계시고 식사를 잘 드세요. 잘 쉬고 챙겨 먹는 게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좋은 생각을 많이 하시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남편 분은 옆에서 많이 도와주시고 잘 아시겠지만, 이제부터 남자 역할이 무척 중요합니다. 아시겠죠?”

   “네. 선생님!!”


   세상 모든 것들이 달리 보였다. 말이 일곱 번이지 자그마치 2년 넘게 최적의 몸 상태를 만들기 위해 운동도 하고 즐겨 마시던 술도 끊고, 남자도 먹는 게 좋다는 말에 엽산을 몇 통이나 먹었는지 모른다. 아내의 고생에 감히 견주지는 못하겠지만 마음고생도 참 많이 했다. 초조하고 조급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주변에서 임신과 출산, 백일잔치, 돌잔치 소식들이 전해져 오면 더욱 그러했고 옷방에서 옷 갈아입으며 문득 거울을 보다 나이가 점점 먹어가는 걸 느낄 때면 깊은 한숨만 길게 뱉어냈다. 그럴 때마다 긍정보다 비관적인 생각이 앞설 때도 여럿 있었다. ‘우리에게 아이는 사치인가.’, ‘내 인생에 아이는 없을 운명인가.’, ‘역시 노산이라 힘든 걸까.’ 별의별 생각에 비관의 끝을 달렸던 것 같다.


   소파에 대기하고 있던 예비 임산부들이 모두 우리를 부러워하고 축하해 주는 것만 같았다. 병원에서 나가는 길 문 위에 붙은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생명 탄생의 위대한 순간과 함께합니다.’ 그래 ‘위대한 순간’ 그 말이 맞았다. 내내 기쁨의 눈물을 글썽이던 아내는 살짝 부은 눈이 충혈돼 벌겋게 올라왔지만 기쁜 표정은 감추지 못했다. 아내의 아랫배에 슬며시 손을 가져갔다. ‘이 안에 생명체가 있다니, 우리 아이가 있다니 믿어지지 않아.’


   그래. 이제 시작이다. 조금 전까지 끝을 의미하는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이곳에 왔지만 끝이 아닌 이제부터가 진짜다. 이 시작을 하기 위해 그동안 그 고생을 했던가. 이제야 보상받는 기분이 조금 들었다. 남들은 뚝딱 갖는다는 아이, 우린 비록 의학의 힘을 빌리느라 조금 오래 걸리긴 했지만 억울한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생각해 보면 우리보다 더 오래 걸리는 부부들도 많고 남녀 간 신체적인 결함이나 노산의 두려움으로 아예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부부들도 많다는 걸 지난 2년간의 기간 동안 보고 듣고 알게 되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잘 안다. 


   임신…. 그래 그거면 됐다.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는 물론 스쳐 지나가는 모든 사람과 모든 상황들 그리고 오늘 하루마저도 감사했다. 그렇게 우리에게 이 따뜻한 날씨처럼 소리소문 없이 조용히 아이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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