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 면요리' 에세이 공모전
어린 시절 각종 연말 시상식을 볼 때마다 스킵하고 싶은 장면이 있었다. 수상자들이 울먹이며 가족과 지인을 길게 언급하는 부분.
수상은 축하할 일이지만 왜 그들의 가족 이야기를 들어야 하지? 어린 나는 그게 늘 지루했다.
브런치 작가가 된 지 이제 두 달. 생애 최초로 공모전(저작권)에 글을 출품했다. 그 계기로 다른 공모전에도 관심이 생겼다.
그러다 참여하게 된 제1회 누들플래닛 '나의 인생 면요리' 에세이 공모전.
6월 25일 오후, 최우수상에 선정되었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50만 원의 상금도 지급된다고 한다.
글로 돈 벌어보긴 처음이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기쁨은 초등학교 4학년 이후 35년 만에 ‘글로 받은 상’이라는 사실.
화면에 굵은 글씨로 새겨진 내 이름 '유호현'
마치 발자국 같았다.
그 발자국을 보며 과거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1989년 본리초등학교 4학년 10반 담임이었던 이순자 선생님.
내 기억으로 40대 초반이셨던 것 같다.
그때 나는 독후감 시간이 너무 싫었다. 가정환경 탓에 정서적으로 주눅 들어있던 내가 글을 쓴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겨우 한 문장 적고 그 지겨운 시간이 끝나기만을 바랐다. 더 이상 뭔가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선생님께서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씀하셨다.
"호현아. 시작하는 말이 왜 이렇게 좋아? 계속 써볼래?"
그 시절엔 체벌이 당연했다. 한쪽 이상을 넘긴 적이 없던 나는 손바닥 맞기가 일쑤였다.
그런 내게 처음으로 악플이 아니라 선플이 달렸던 것이다.
그때 쿵쾅 거리던 심장이 아직도 느껴질 정도다.
칭찬에 약했던 나는 내가 읽었던 그 많은 책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뒤죽박죽, 두서없이 참 길게도 적어갔다. 분명 독자의 정신을 탈색시켜 버릴 혼돈 그 자체의 글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버금상을 받았다. 개근상 빼고 내 생애 첫 번째 상.
나는 상장에 적힌 유호현이 정말 내 것 인지, 지워지지 않을지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어린 시절엔 원수 같았지만 커서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된 사람이 있다. 누나.
자존감 낮던 20대 시절, 누나는 나에게 수많은 편지를 써주었고 애정을 표현했다.
언어 감각이 뛰어난 누나의 격려 레퍼토리는 참으로 다양했지만, 클리세 같은 말이 하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현실 누나'의 말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말.
"사랑하는 내 동생. 잘 자라줘서 고마워."
난 그 말을 배신하기 힘들었다.
그 시절 하얀 설원 위에 깊고 일정한 간격의 발자국들이, 행여 하나라도 지워질까 오래 바라보았었다.
말 한마디 똑바로 못하던 내가 글을 쓸 수 있을 때까지 어떤 수많은 격려가 있었고, 무엇을 잊고 살았는지 이번 최우수상 선정을 통해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세월에 지워진 그 발자국을 복원해 보는 오늘 하루가 참으로 행복했다.
상금보다 더 값진 선물을 주신 관계자 분들께 감사드린다.
난 혼자 걷지 못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내 인생의 길을 문득 돌아보니 온통 다른 이들의 발자국이다.
부축해 준 발자국, 업어준 발자국, 등을 밀어준 발자국.
...돌아와 준 발자국.
내가 빚진 발자국이 도대체 몇 개인가?
서론에서 언급했던 족보급 수상 소감.
이제야 그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
내 이름이 불리는 순간보다 더 기쁜 것은
그 이름들을 부르는 시간들임을.
그게 결코 지루할 리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