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차 마유라 아사나
서울에 살 때 날이 좋은 주말이면 양재 화훼 공판장에 갔다. 비닐 온실 속 생선 뼈처럼 난 길을 따라 근교 수목원 나들이하듯, 명절 대목 재래시장 구경하듯 다닥다닥 늘어선 식물가게들을 한 바퀴 훑고 나면 어느새 초록 잎사귀가 삐죽 나온 까만 비닐 봉다리가 양손 가득. 인스타그램에 저장해 둔 은색 틸란드시아를 마침 봐 버려서, 마트에서 파는 한 팩 200그램 바질보다 더 싸고 신선한 바질이 화분 채 있길래, 집집마다 제일 앞 줄에 꺼내 논 거북이 등껍질 같은 알로카시아도 자꾸 보다 보니 꽤 느낌 있는 것 같아서, 몽우리가 많이 달린 해바라기는 곧 다가 올 여름을 환영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딱 이만 원만 써야지 하고 뽑아 온 현금은 애진작에 다 쓰고 몇 곳에선 계좌 이체까지 해가며 계획에도 없던 식물을 샀다.
그런 날 오후는 집에 돌아와서가 더 바쁘다. 가게 사장님들이 식물 다치지 말라며 돌돌 싸 준 신문지를 차곡차곡 거실 바닥에 펼치고 그 위에 김장 매트보다 더 작은 사이즈, 덜 매콤한 색상의 분갈이 매트를 깐다. 쓰다 남은 분갈이 흙 포대와 빈 화분 몇 개도 베란다에서 챙겨 온다. 새로 온 애들을 얇은 플라스틱 모종컵에서 크기와 분위기가 잘 맞는 화분에 정식으로 입주시킨다. 어지른 김에 터줏대감 녀석들 중에서도 새 잎 소식이 잠잠한 아이, 물세탁으로 줄어든 울니트를 입은 것같이 화분이 작아진 아이, 물 구멍으로 뿌리가 날름 삐져나온 아이들도 큰 집으로 옮겨 심는다. 늘 식물 열 개 정도를 키우는 8년 차 식집사지만 분갈이에 대단한 노하우는 없다. 그냥 화분 물 구멍 크기에 맞춰 거름망을 잘라 깔고 세척 마사토를 적당히 넣은 뒤 네이버 구매 후기가 가장 많은 분갈이 흙을 툭툭 넣는다. 전문회사 제품이니 최적의 흙 배합으로 만들었을 테고, 사시사철 큰 기온 변화 없는 가정집에서 크는 식물이 그리 까탈스럽지도 않을 테니까. 본 화분에서 줄기를 움켜쥐고 뽑을 때의 대범함, 흙을 털다 끊겨 나가는 뿌리에 대한 의연함, 그렇게 키우다 이유 없이 사망한 (그들은 이유가 있었고 내가 몰랐을 뿐이겠지만) 안타까운 애들에 대한 짧은 애도. 이게 노하우라면 노하우. 그래서 나는 식물을 쉽게 사고 쉽게 키웠다.
어린이대공원 뒷골목 서남향 2층집에 살 때 들인 무늬 싱고니움은 2년 내내 이파리가 여섯 장이었다. 더 자라지도, 시들지도 않았다. 해가 부족한가 싶어 주방과 거실 사이 선반장에서 거실 통창 바로 아래로 옮겨주긴 했지만 큰 변화는 없었고 나도 더 애를 쓰진 않았다. 그저 다른 식물들과 똑같이 일주일에 한 번 물을 주고 미세먼지 없는 날 잠깐 창문을 열었다 닫는 정도. 그렇게 만년 교탁 앞자리를 못 벗어나던 한 척 단신 싱고니움이 28층 남향인 지금 집에 오고는 3개월 만에 옆에 세워 둔 A2사이즈 액자 키를 넘어섰다. 얼마 뒤엔 잎 네다섯 개가 달린 새 줄기도 튼실하게 뻗어 냈다. 그동안 '무늬'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비둘기가 찍 싼 흰 똥이 그려진 듯한 연두색 잎도, 잎줄기를 축으로 선명히 흰색, 초록색 나뉘어 반질거렸다. 근사해진 싱고니움을 보는 재미에 평일에도 무려 30분이나 일찍 일어났다. 창문을 열어 바람을 쐬어주고 분무를 하고 있으면 눈길 끝에 새로 난 잎이, 발 끝에 내린 아침 햇살과 토끼 귀 같은 싱고니움 그림자가 개운한 말로 가득한 오늘의 운세처럼 힘이 됐다. 적당히 무심하게 대했던 다른 화분들보단 애착이 도톰해졌다. 그만큼 싱고니움도 눈에 띄게 커갔다. 라푼젤 머리 같은 메인 줄기를 굵은 철사 지지대에 붙여 세우고, 새로 난 줄기는 바로 옆 스탠드형 TV 모서리에 느슨하게 걸쳤다. 그리고 일 년. 말없이 교실 맨 앞에 앉아 있던 친구가 방학 사이 훌쩍 큰 키로 수학여행 버스 뒷자리를 점령한 것처럼, TV에 걸어 둔 싱고니움은 반대쪽까지 줄기가 자라나 55인치 TV와 24시간 어깨동무하는 절친이자, 4년째 우리 집 최장신이던 히메 몬스테라도 내려다보는 수준이 되었다. 내경 15센티미터 하얀 테라코타 화분도 작아 보였다. 지지대도 길이나 힘 모두 역부족이었다. 이젠 미룰 수 없었다. 진짜 분갈이를 해줘야 할 때가 왔다.
하지만 덜컥 겁이 났다. 멋지게 키워 낸 아이를 자칫 상하게 할까 봐. 수십 번을 했던 분갈인데도 엄두가 안 났다. 그동안 나의 쿨한 양육 스타일은 내가 대범해서가 아니라 그냥 식물에 별 기대가 없어서였구나! (처음 식물을 들인 이유도 혼자 사는 집에 귀찮게 굴지 않는 나 아닌 다른 생명체가 있었으면 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더딘 성장 끝에 (팔 생각도 없지만) 식테크(식물+재테크) 시장에서도 꽤나 몸값 나갈 성체가 된 녀석에겐 대치동 치맛바람 엄마처럼 집착적 모성애가 애끓었다. 하지만 생전 경험한 적 없던 감정이라 걱정과 집착을 회피에 버무려 또 차일피일 분갈이를 미뤘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지 이틀 만에 도착한 수태봉과 고정용 벨크로, 바크와 난석은 무겁다는 핑계로 현관문 밖에서 삼일을, 현관문 안에 끌어다 놓고도 또 이주일을 방치했다. 그리고 주말 늦은 오전, 정처 없이 돌리던 TV 화면 위로 누렇게 쳐진 싱고니움 이파리가 거슬렸다. 사실 이미 몇 번 봤다. 그저 새 잎 대신 떨어질 오래된 잎이겠거니, 분갈이 재료도 다 있는데 하면 하지라는 마음으로 며칠을 묵힌 터였다. 식물엔 시급한 문제가 없었지만 오늘 내가 바깥 약속도, 더 이상 볼 OTT 콘텐츠도 없으니 일단 소파에서 일어났다. 마침내 분갈이할 결심과 함께.
싱고니움 녀석, 일 년 내내 어깨동무하느라 겨드랑이가 저릿했겠지? 줄기를 걷으러 TV 가까이 갔더니, 맙소사! 저릿하다니! 뱁새 가랑이처럼 찢어져 있었다. 이미 골든타임을 놓친 건지 끊어진 줄기 끝이 딱지 앉은 사람 상처처럼 말라 있었고 스무 개쯤 되는 잎사귀의 삼분의 일이 누레져 있었다. 서둘러 거실 러그를 말아 주방으로 밀고 분갈이 매트를 폈다. 그 와중에도 줄기 끝을 찢고 나오다 만 5센티미터 새순이 죄책감을 쑤셔댔다. 잘려 나간 줄기를 챙겨 두고, 메인 줄기가 심어진 화분을 기울여 손바닥으로 탕탕 쳤다. 뿌리가 꽉 찼는지 쉽게 빠지지 않았다. 원래 나라면 모종삽으로 화분 내벽을 벅벅 쑤시고 흙 바짝 위로 줄기를 움켜 잡아 무심하게 뽑았을 테지만, 이번엔 유적을 발굴하는 고고학자 손길처럼 흙을 살살 긁어냈다. 마침내 뿌리에 얽힌 흙덩이가 들썩였다 툭 하고 화분에서 분리됐다. 그런데 뿌리랄 게 없었다. 줄기 아래 남자 엄지 손가락만 한 주근(主根) 옆구리로 콘센트 선 굵기 밖에 안 되는 뿌리가 길이만 2미터쯤 자라 있었다. 달려 나오지 못한 설탕 타래 같은 실뿌리가 화분에 그득 남았다. 이렇게나 부실한 뿌리로 이만큼이나 자랐다니. 뿌리를 기특해해야 하는 건지 줄기와 잎을 기특해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뭐든 간에 싱고니움은 고생했고, 뭣도 몰랐던 내가 한심했다.
요가를 하다 보면 '감히 아사나'를 만나게 된다. 특정 자세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고, '내가 감히 이 자세를?"이란 뜻으로 내가 만든 말이다. 내 기준 수많은 '감히 아사나' 중 하나가 '핀차 마유라 아사나'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유지태가 엎드린 채 두 다리를 천장으로 뻗어 올려 허리를 꺾는 장면으로 유명해진 메뚜기 자세(살라바 아사나)와 비슷한데, 차이점은 유지태처럼 턱과 앞가슴, 양팔로 바닥을 지지하는 대신 팔꿈치부터 손바닥까지만 땅에 대고 가슴을 공중 띄운다는 것이다. 유독 날개뼈의 움직임과 손바닥 접지력을 인식시키던 수업 끝에 선생님이 요가 블록 두 개씩 매트 앞 쪽 어깨너비로 두라고 했다. 블록 바로 아래 'ㄴ'자로 만든 팔과 손바닥을 두고 좁은 다운도그(엎드려뻗쳐)를 했다. 그대로 어깨를 앞으로 밀며 상체만 내려가 블록 위에 어깨를 안착. 한 발을 전갈처럼 천장으로, 또 다른 한 발도 바닥을 꾹 누르듯 밀어 마저 올렸다. 세 번째 시도에서 완전하진 않지만 약간의 체공을 느꼈다. 감히! 내가 핀차를 깔딱대다니! '감히 아사나'가 '가능 아사나'가 될 것 같은 기대에 집에 오자마자 샤워 대신 벽 앞에는 매트를, 소파에는 동영상 촬영 모드를 켠 휴대전화를 세팅하고 또 연습을 했다. 2분 남짓 대여섯 개 동영상 중 캡처로만 보면 성공한 것 같은 찰나가 몇 번 있었지만 풀버전 영상 속 자세는 허술하기, 아니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힘 없이 꺾인 허리, 무게 중심 이동이 아닌 반동으로 차올린 다리, 견고함을 잃고 블록에 주저앉은 어깨. 몸에 대한 인식보다 고난도 자세에 대한 집착이 영상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몸과 마음에 모두 해만 되는 수련(?)인 것이 뻔히 보였지만 자세 교정을 위한 연습을 대신, '#핀차성공' 해시태그로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사진을 편집하느라 소파에 기대 거북목으로 휴대전화만 만지작 거렸다.
서른 이후의 연애는 오히려 십 대 때와 닮았다. 학창 시절, 사귄 지 22일이 대단한 시간인듯 '투투' 축하라며 친구들이 이백 원씩 주던 것처럼, 삼십 대의 연애도 그 쯤까지 무탈하면 이만 원씩은 줘야 할 만큼 한두 달을 넘기기는 것이 어려웠다. 나이만큼 쌓인 자체 빅데이터 탓에 상대에 대한 '기다, 아니다'가 빨리 판단돼 버렸고, 나이만큼 조급해진 시간 탓에 관계를 쉽게 정리했다. 그러다 누군가와 한 두 계절을 함께 나면 오히려 부실한 확신이 불안한 집착으로 깊어졌다. 그에게서, 나에게서, 우리 관계에서 뭔가가 자꾸 걸리는데도 지금까지 만나 온 시간이, 어떻게 열게 된 내 마음이, 또 어디서 다른 사랑을 시작하냐는 걱정이 눈과 귀를 닫게 했다. 누렇게 변한 잎자루, 어디에 치여 찢어진 이파리, 제멋대로 뻗친 줄기를 흐린 눈으로 거짓 감상하며 이번 연애의 수형은 근사하다고 그러니 어설픈 가지치기 따위는 필요없다고 자기설득을 했다. 가벼운 바람에도 들썩이는 뿌리를 보고도 못 본채 하며.
사랑했던 싱고니움을 살릴 방법은 이것뿐이었다. 소독 티슈로 전지가위를 닦고, 한숨 한 번 쉬고, 공중뿌리가 나온 생장점 사이사이 줄기를 잘랐다. 잎 하나 자르기도 아까워 벌벌 떨던 손으로 이렇게 난도질을 하게되다니. 인터넷에서 보니 이렇게 자른 삽수의 공중뿌리를 물에 최소 한 달 담가두면 흙에 옮겨 심을 만큼 잔뿌리가 생긴다고 했다. 삽수는 서른두 개가 나왔다. 집에 있는 화병을 다 꺼냈다. 이미 단단히 목화돼버린 공중뿌리도 꽤 됐지만 일단 다 물에 담갔다. 어느 하나 해가 부족하지 않게 거실과 베란다 창 앞에 나눠 뒀다. 파란색 생육 촉진 영양제도 한 두 방울 탔더니 초등학교 과학실에 있던 물고기 표본 실린더처럼 보였다.
분갈이로 시작했다 물꽂이로 끝나버린 거실을 치우고 보니 생각보다 더 휑했다. 거실 한 벽을 종횡무진 뻗어가던 초록색이 모두 물병 속 몽당 식물이 돼버렸으니. 허무했다. 서른 두 개 삽수 중 하나도 못 건지면 싱고니움과의 3년의 시간은 아무 증거없이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수십 번의 가위질이 방치된 집착도 잘라낸 건 지 이내 '그럴수도 있지'하고 거실 러그를 다시 깔았다.
성장촉진제 덕분이었을까. 한 달 넘게 걸린다는 뿌리가 2주 만에 보였다. 뒤틀린 뿌리를 내리거나 잎이 투명하게 마른 아이들은 솎아 내고, 잔뿌리가 풍성해진 아이들만 골라 깨끗한 물에 다시 담궜다. 한 달이 더 지나니 흙으로 옮길 만한 모종이 스무개 쯤 남았다. 이젠 '이거 다 심으면 화분이 몇개야?' 하고 분에 넘치는 걱정을 하는 내가 웃겼다. 단호박만한 미니 화분 여섯개에 두세 개씩 옮겨 심고 안방, 거실, 주방 창가 앞에 놔뒀다. 사람도 해외여행가면 종종 물갈이로 고생하듯 식물도 분갈이를 하면 몸살이 나고 심하면 죽기도 한다. 그래서 여전히 안심할 수 없었는데, 또 그만큼 무던해지려 했다.
몇 주 뒤 자취를 시작한 친구와 점심 약속이 있었다. 여섯개의 화분은 저마다의 속도로 뿌리를 내리고 새 잎을 틔었다. 화려한 수형의 예전보다 지금의 여섯 난쟁이를 볼 때 더 푸근했다. 그 중 가장 모양이 잘 잡힌 하나를 습자지에 싸고 친구를 위한 짧은 편지와 함께 쇼핑백에 담았다. 그리고 가뿐한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핀차 마유라 아사나 : 유영하는 돌고래를 닮아서 '돌고래 자세'라고도 불린다. 중력을 거스르는 숄더 스탠드 자세 중 하나로 어깨와 윗 등 척추를 시원하게 열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