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카 파다 쿤디니 아사나
회사 회의실엔 똑같은 달력이 세 장 걸려있다. 이번 달, 다음 달, 다다음 달, 펼친 면만 다르게. 한두 달 먼저 움직이는 백화점을 십 몇 년 다니니 개인적 시간도 한두 달 먼저 온다. 울긋불긋 물든 단풍은 시리게 하얀 첫눈이고, 바스러지는 낙엽이 흙발자국 엉킨 척척한 눈밭이다.
그래서 이맘때쯤 한 해를 돌아보게 된다. 뭘 이뤘나. 아니 이루기 위해 뭐라도 끌어다 놓았나. 그게 개미집 구멍만큼이라도 봉긋 쌓였나. 매년 정답은 새삼스럽지도 않다.
“없다.”
올해의 시작은 그래도 달랐다. 작년 연말 키르기스스탄에서 보낸 정화의 시간은 다음 한 해를 꾸려 갈 소박한 성실의 에너지가 되었다. 하지만 달력을 넘길수록 방향을 잃은 후회와 경계에 치이는 기복이 깊어졌다. 한껏 부푼 모양으로 텅 빈 속을 감추고, 고소한 냄새로 무미(無味)를 속이는 공갈빵 같은 10개월이었다.
그래도 어깨는 구했다. 늦여름께부터 입맛이 없더니 살도 슬슬 빠졌다. 5킬로그램 증발은 헐렁해진 바지, 눈썰미 좋은 사람들의 인사보다 거의 매일 가는 요가 수련에서 제일 티가 났다. 종종 힘은 달렸지만 접히는 살이 없어진 덕인지 아사나가 한결 가뿐했다. 손이나 팔꿈치만으로 온몸을 들어 올리는 역자세도 한 번씩 감이 잡혔다. 천장으로 포인한 발목을 잡아 주던 선생님이 손을 떼며 “이제 어깨 다 나았네요! 조금만 더 버텨봐요! 하나, 둘, 셋…." 할 때서야 왼쪽 어깨가 흐릿하게 저릿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내 일상과 기분은 왼쪽 어깨 상태에 좌우됐다. 1월에 다친 어깨는 한여름까지 병원 네 군데를 전전할 동안 차도가 없고, 그땐 제발 몸만 건강했음 했다. 의사의 "운동 좀 쉬라"는 권고도 무효한 항생제나 재활 치료와 다를 바 없어 보여 꽤 쉬다 다시 요가를 나갔다. 어깨 앞 관절 숨통을 틔여 줄 어깨 근육을 키우고 전거근을 달랬다. 몇 달이 지나니 통증의 잔상이 간혹 있긴 했지만, 아팠다는 사실마저 잊을 만큼 동작이 자유로워졌다. 비록 몸은 무의식적으로 오른쪽에 살짝 더 체중을 실었지만. (몸이 뇌보다 더 똑똑한 건지, 더 쫄보인 건지.)
이제야 바닥을 향해 바로 선 꼬리뼈, 귀 뒤로 넘겨 천정으로 뻗은 두 팔, 미는 힘만큼 활짝 벌어진 날개뼈가 거울에 보였다. 지리한 부상을 딛고 작년 이맘때보다 단정해진 자세가 기특했다. 제로가 아닌 마이너스에서 끌어올린 건강에 나는 충분히 감사했었나? 오히려 또 다른 부족함을 들춰내 어리석은 불안만 키워오진 않았나?
아직도 가로수는 초록색이다. 늦은 더위에 초록 단풍이란다. 기후 변화 때문이 라니 걱정도 되지만, 한 두 달 먼저 내달리는 시간을 붙잡아주는 것 같아, 그래서 제대로 봐야 할 것을 볼 여유를 주는 것 같아, 그래서 잊을 뻔 한 소중함과 감사함을 챙겨주는 것 같아 푸릇하게 안심된다.
에카 파다 쿤디니 아사나 : 비보이 댄스 배틀에서 봤을 법한 요가 자세로, 양 손바닥으로 바닥을 지탱하고 90도로 굽힌 팔뚝 위에 같은 방향의 다리 하나를 뻗어 허벅지를 얹는다. 다른 발은 뒤로 멀리 뻗는다. 강한 어깨가 필요한 암 밸런스 동작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