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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아론 Dec 13. 2021

[내담자 치료 일기] 6화 머리가 팝콘같은 나

텀블벅에서 <벼랑 끝, 상담> 오디오북을 펀딩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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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조현정동장애(조현병+조울증) 진단을 받은 내담자가 직접쓴 글입니다.

1화부터 보셔야 내담자의 상황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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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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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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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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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https://brunch.co.kr/@aronsong/517

(5화)



나는 부모님에 대한 원망은 반드시 끊어내야만 했다. 왜냐면 사소한 문제만 생겨도 그게 부모님에 대한 원망으로 직결되기 때문이었다.


과거 괴로웠던 학교 생활, 지금 나의 대인관계, 잃어버린 꿈에 대한 미련, 미래에 대한 걱정, 죽고 싶은 마음, 이 모든 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치솟아올라 머리가 터지고 무기력해져 아무것도 해낼 자신이 없었다.


예를 들어 상대방한테 카톡 답장이 늦을 때, 굉장히 불안했다.

 상대방이 날 싫어하나? 내가 그렇게 형편없나? 란 생각이 잇달았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내가 답장받지 못하는 걸 부모님 탓으로 돌렸다.

부모님이 나를 힘들게 했던 것들이 떠오르고 부모님의 잘못된 양육 방식 때문에 이렇게 형편이 없어진 것이므로 미래도 형편이 없을 거라는 생각에 다다라 불안하고 원통하고 두려웠다.


내 주변에 부모님이 있는 한 난 평생 이렇게 살 거 같았다. 그러면 속은 부글부글 끓고 머릿속은 열이 받아 팝콘 튀듯 튀어올랐다. 카톡 답장 하나에 대해서 부모님에 대한 원망으로 비약하며 불필요한 감정 낭비를 했다.


나는 사소한 문제에도 쉽게 불안하고 화가 나고 흔들렸다. 움직이는 것 자체가 두려웠다.

그래서 내 감정이 부정적으로 가는 걸 최소화하려면 부모님에 대한 원망을 끊어내야 했다.

그래야만 부정적인 감정 때문에 혼란이 오는 걸 방지해서 심리치료를 잘 받을 수 있었다.


천만 다행히도....

우리 부모님은 나에게 적극적으로 사과하셨다.


부모님이 적극적으로 사과해주신 덕분에 나는 불필요한 감정이 새어나가는걸 단단히 봉합할 수 있었고, 심리적인 자원을 쌓아나갈 땅을 확보할 수 있었다.


부모님이 사과해주시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마음이 뻥 뚫린 채 그 구멍으로 감정이 콸콸 새어나갔을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심리적 자원을 쌓더라도 내 감정의 홍수에 쓸려나가 버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심리치료를 받아도 별로 진전이 없었을 것이다.


부모님한테 사과를 받고 나서 심리적 구멍이 봉합되자 나는 적극적인 태도로 심리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내 문제를 한결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내 문제를 객관적으로 보는 것도 내 마음이 충만해야만 가능하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환경치료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과거에 부모님이 자녀에게 잘못된 언행을 한 것이 있으면 사과를 하고 행동에 변화를 가져와야 합니다.


다시 상담을 받았다.

원장님이 도구를 꺼내셨다.


원장님 

자. 이건 나의 자화상을 그려보는 거야. 지금의 내 모습이 어떤지 그려볼래?

      



[나의 자화상]


이미지 

머릿속 생각이 이리 튀고 저리 튀고 팝콘처럼 튀어서 종잡을 수 없다. 고등학교 자퇴하고 나만의 시간이 많아지면서 생긴 생각들이다.


보여지는 모습

아주 무겁고 뜨거운 머리를 지탱하기에는 몸이 너무 마르고 허약해서 힘겹게 고생하고 있는데 장애물은 많다.


내적 능력 

좋은 생각이 가끔은 번뜩인다.


가치관, 생각

나랑 안 맞는다. 너무 처량하고 안타깝고 동정심이 일어난다.


외부 느낌 

어설프다, 한심하다, 안타깝다, 무능해 보인다.



나는 당시에 추운 겨울날에 엄청나게 돌아다니는 증상이 있었다. 매일 일어나서 옷을 입고 도서관에 간다. 도서관은 버스 타고 30분 걸린다. 도서관에서 책을 보는데 책 하나를 5분 이상 보지 못했다. 일어나서 다른 책을 꺼내오고 그 책도 5분 이상 보지 못했다.


이런 식으로 계속 왔다 갔다 하다 보니 도서관 내부에서 3시간을 줄 곧 돌아다닌 적도 있었다. 간신히 마음을 단단히 먹고 읽을 책을 정하고 대출을 해서 카페로 나간다.


카페에서 음료를 시키고 책을 보기 시작한다. 그러면 그 책도 곧 5분 내로 포기해버리고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면서 카톡을 기다린다. 카톡이 오면 나는 엄청 반갑게 바로 폰을 집어 들어 답장을 한다. 그리고 답장이 올 때까지 불안하게 계속 폰을 보며 커피를 마시며 초조해한다.


분명 카페에서 커피를 시켰으니 본전도 뽑아야 하므로 자리에 진득이 앉아서 책을 봐야 하는데, 커피를 20분 동안 다 먹자마자 이제 너무 지루하고 안절부절못해서 결국 카페를 나와버린다.


그리고 빌린 책이 맘에 안 들었어서 다시 도서관으로 들어간다. 또다시 도서관 내부를 1시간 정도 헤맨 다음 간신히 책을 정해서 대출하고 밖에 나간다. 또 카페에 들어가서 커피를 시킨다. 이번에도 길어봐야 30분 이내를 못 버티고 카페를 나와버린다.


그러나 도서관에 또 들어가는 건 창피하다. 아마 사람들도 내가 계속 돌아다니기만 하는 걸 봤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책을 다시 보겠다고 마음먹고 카페로 들어간다. 날씨가 워낙 추워서 빨리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카페에 들어가서 책을 보는데 이번에도 길어봐야 30분? 1시간도 못 버틴다. 이도 저도 안 되는 거 같아서 결국 포기하고 집에 가버린다. 집까지는 버스 타고 30분 걸린다.


즉 하루 만에 카페를 세 군데나 들르면서 커피 값에만 15000원 이상 쓰고, 도서관 내부를 돌아다니는데 4시간 가까이 쓰고 정작 제일 중요한 책은 한쪽도 못 본다. 거의 몇 년 동안 이 생활을 반복했다. 아마 그때 하루에 쓴 커피 값이 2~3만 원은 됐을 것이다.


저 사진으로 있는 자화상이 바로 지금의 행동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다.

저 자화상은 머리가 지나치게 무겁고 생각이 너무나 많고 가끔은 열이 받아 튀어올라 종잡을 수가 없다.

그리고 내 몸은 저 머리를 떠받치기엔 너무 약해서 움직이는 게 너무나도 힘겹다.


게다가 주변엔 장애물 투성이라 자유롭게 움직이지도 못한다. 저때의 나는 정말로 힘들었다.



원장님 

세상에... 이렇게 추운 겨울날 계속 돌아다닌다고?



네... 정말 계속 돌아다녀요. 책에도 좀 집중하고 싶은데... 정말 한쪽도 못 읽겠고 자꾸 딴생각이 너무 나서 아무것도 못하겠어요.



원장님은 다른 도구를 꺼내셨다.



원장님 

이번에는 이 자화상의 한계를 극복한 자화상을 그려봐. 내가 원하는 자화상, 나에게 힘이 되어주고 에너지를 주는 긍정적인 자화상을 그리면 돼.



그래서 나는 생각이 너무 많고 삐딱해서 불안한 나, 몸이 너무 약하고 무기력한 내가 아니라 아주 듬직하고 편안하고 너그러운 나를 그렸다.






[내가 원하는 긍정적인 자화상]



새롭게 그린 나의 긍정적인 자화상은 듬직하고 둥글둥글하고 평온하고 너그럽다.

무게가 있고 아주 안정적으로 서 있다. 여유가 넘친다. 행복해 보인다.

마음도 넓고 온화해서 누군가를 보듬어줄 수 있는 듬직한 자화상이다.


지금의 내 모습과 정반대의 자화상이었다. 

자화상을 이렇게 듬직하게 그리자 나는 벌써 용기가 생겼다. 내가 강해진 거 같고 나에게도 힘이 있을 수 있다는 걸 깨닫는 기분이었다.


아주 아주 낯설고 실제로 살면서도 내가 저런 모습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이번을 계기로 나도 저렇게 강인하고 평온하고 누군가에게 부드럽고 넓은 사람으로 살 수 있을 거 같았다. 꼭 그렇게 살기로 결심했다.


원장님은 저 두 개의 자화상을 가지고 명상을 진행하셨다.


비록 이 허약한 자화상이 나를 힘들게 하고 방해했어도 이것은 분명 나의 일부였다. 분명히 나를 위해서 기여하려고 했던 좋은 의도가 있었으나 실패한 자화상이었다.


나를 도우려고 했던 자화상이었으므로 그것을 비난하는 건 부당했다.

오히려 나를 도와주려고 했던 것에 대해서 깊이 감사하고 긍정적인 의도를 이해해주었다.

그러자 나의 허약한 자화상은 자신이 인정받은 것에 위로를 받았고 미련 없이 나를 위해서 떠나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긍정적인 자화상을 불러들여왔다. 그리고 부탁했다.


'너의 강한 힘을 나에게 줘. 나에게 에너지를 줘. 나를 도와줘.'

긍정적 자화상은 당연히 그렇게 하겠다고 했고 내 신체에 들어갔다.

그리고 에너지를 부어주었다.

*<벼랑 끝, 상담>에서 부정적 분아 내보내기랑 같은 명상최면치료입니다.


명상이 끝나자 나는 내 신체에 자리 잡아서 나에게 강한 에너지를 주는 자화상 덕분에 실제로 힘이 생겼고 내가 뭔가를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원장님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상담소를 나왔다.


실제로도 상담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마음이 가벼워지고 집중도 잘되고 사람들한테 내 주장을 좀 더 자신감 있게 해 나가는 나를 발견하고 있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도 많이 줄었고 사람 관계에 대한 부담도 줄어들었다.

과거의 기억 때문에 힘든 감정도 점점 줄었다. 그래서 나는 과거를 좀 더 가볍게 털어낼 수 있게 되었다.

상담 효과는 계속 나타났다.




텀블벅에서 <벼랑 끝, 상담> 오디오북을 펀딩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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