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평일 아침에 에스프레소바에 와서 한적함을 즐기는 중이다. 직장인들이 몰리는 시간에는 줄을 서서 기다려야 에스프레소바라고 하던데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한 시간째 나 홀로 카페를 차지하고 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이런 분위기를 좋아하는 걸까? 카페 인테리어는 최신 스타일인데 음악은 80년, 90년대 유행하던 발라드가 나온다. 유재하, 무한궤도, 이적, 신승훈으로 이어지는 추억의 노래들이 나에게도 파랗게 빛나던 청춘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나게 했다. 내가 방문한 지점이 에스프레소 바와 대중음악박물관이 함께 기획한 카페라는데 그래서인지 선곡이 더 특별한 것 같다.
성수동이나 힙지로 골목에 가보면 MZ세대가 좋아하는 장소들 중에 레트로 감성을 가지고 있는 곳들이 꽤 있다. 그곳에 가면 힙한 카페나 레스토랑을 찾아온 20,30대와 이곳에 터를 두고 살아가는 50,60대가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곤 한다. 그래서인지 그런 곳들은 오십 대인나에게도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종로 한복판 허름한 골목 안에 이런 힙한 에스프레소바가 있을 줄이야.
나이가 들었지만 아직은 이런 카페가 좋은데 젊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시간에는 왠지 주눅이 들어 문 앞에서 망설이곤 했다. 나의 흰머리와 초라한 행색이 튀는 것 같기도 하고 왠지 모를 불편함 때문에 주로 테이크아웃을했다.그런데 이렇게 평일 오전에 오니 여유로움과 느긋함을 느낄 수 있어서 너무 좋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정장을 입고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한 때 저런 시절이 있었다는 감상에 젖는다. 은퇴한 지 아직 일 년도 안 됐는데 그 시절이 꽤 오래 지난 것 같이 느껴진다.
간혹 은퇴한 것을 후회하진 않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직까지는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다. 선배들이 일 년은 놀아봐야 진심을 알 수 있다고 하니 연말까지는기다려보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