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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페지오 Nov 17. 2022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사람

어느 자리에 있든 자기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

나는 항상 자신의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을 소망했고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그 경지에 다다르지는 못하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 것이 아닌 것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글을 쓰고 있다.

언제쯤이면 쓸데없는 것에 흔들리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길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온전한 마음의 평온을 얻을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힘들 때마다 꺼내보는 영화를 다시 보았다.


마음의 평온을 찾고 싶을 때마다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https://www.youtube.com/watch?v=3vAXB1lZW-0&t=16s)라는 영화를 다. 배우이자 감독인 에단 호크가 제작한 영화로 피아니스트 세이모어 번스타인의 삶을 잔잔하게 그려낸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에단 호크는 무대 공포증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던 중 우연히 세이모어를 만나게 되었고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평생 배웠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깨닫게 된 후 영화를 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세이모어 번스타인은 피아니스트로서 정상에 섰던 어느 날, 피아니스트를 그만두고 피아노를 가르치는 교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일은 박수갈채를 받으며 연주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세이모어의 일상을 따라가면서 그가 음악으로부터 배운 인생철학을 하나씩 해준다.


은퇴를 결심했던 즈음 지인의 추천으로 이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나의 처지와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인지 돌려보기 버튼을 수십 번 누르면서 같은 대사를 듣고 듣느라 끝까지 보는데  시간이 넘게 걸렸다. 내가 은퇴를 결심했던 때와 비슷한 나이에 세이모어 번스타인이 제2의 인생(피아노 교사)을 살기로 결심하였고 그의 인생 2막을 보여주고 있어서  몰입했던 것 같다.


세이모어는 뉴욕 한복판의 방 한 칸짜리 아파트에서 57년째 피아노를 가르치며 살고 있다. 피아니스트로 살았더라면 가질 수 있었던 돈과 명예를 뒤로하소박하게 살고 있는 그의 삶은 세상의 잣대로 보면 답답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일상은 평온과 아름다움에 가득 차 있었다. 영화는 세이모어 번스타인의 일상을 잔잔하게 보여주는데 대부분의 장면은 학생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장면이다. 세이모어는 학생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면서 보석 같은 인생철학들을 하나씩 려준다. 세이모어가 건네는 조언들은 그가 평생 함께 한 음악에서 배운 것이지만 우리의 인생에 그대로 용되는 것들이다.

세이모어의 다정목소리와 행복한 표정 때문인지 영상을 보고 있으면 위로가 되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가 치밀 때 그의 온화한 미소를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가 건네는 따스한 조언을 들으면 마음 한편에서 종이 울렸다. 마치 그의 품성과 같은 따뜻한 피아노 연주가 내 안의 분노를 잠재워주었다.


"삶이란 원래 갈등과 즐거움이 함께 있고, 조화가 부조화가 공존하죠. 그게 삶이에요. 벗어날 수 없어요. 음악도 마찬가지예요. 음악에도 화음과 불협화음이 있지요. 불협화음 후에 들리는 화음은 더욱 아름답게 느껴져요. 불협화음이 없다면 어떨까요? 화음의 아름다움을 모르게 되겠죠"

"사람들은 답을 찾고 싶어 해요. 안정적이고 행복한 삶의 비밀을 원하고 있어요. 성경처럼 마음속의 신이 과연 우리를 도울까요? 당신 내면에 있는 영적 저장소를 들여다보세요. 난 답이 우리에게 있다고 굳게 믿어요."

 -세이모어 번스타인-


우연히 회사의 조직 개편 소식을 듣고 나서 싱숭생숭해진 마음을 달래느라 뉴욕 소네트를 다시 보았다. 이미 퇴사했으니 나와는 상관없는 소식인데 조금만 더 버텼더라면 그 자리가 내 것이 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며칠 동안 나를 괴롭혔다.


영화를 본 후 겨우 마음의 평온을 찾고 커피 한 잔을 마시다가 경비 아저씨가 차 한잔을 즐기고 계신 모습을 보게 되었다.

    

갑질 시비에 가끔씩 오르내리는 걸 보면 경비라는 직업도 쉬운 직업은 아닌 것 같다. 낙엽이 떨어지면 부지런히 쓸어야 하고, 눈이 쌓이면 빨리빨리 치워야 하고, 비좁은 경비실에서 식사도 하고 휴식도 해야 하는 것은 꽤 고된 일이라 짐작이 된다. 그 수고로움과 노고를 알고 있기에 경비 아저씨를 보면 항상 먼저 인사를 드리곤 한다. 그런데 우리 동네 경비 아저씨들 중에 웃으면서 항상 먼저 인사를 건네시는 분이 계시다. 기분이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도 웃음 지으며 인사를 건네시는 아저씨를 보면 나도 같이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새벽에 커피를 내리며 창 밖을 바라보다가 아저씨가 경비실 뒤쪽 벤치에 앉아서 커피를 드시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처음 그 모습을 발견했을 때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아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마침 첫눈이 내려서 온통 세상이 하얗게 덮여 있었고 창 밖의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출근 시간 전에 쌓인 눈을 모두 치워야 하는 경비 아저씨에게는 고된 하루를 예고하는 새벽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저씨는 경비실 밖 벤치에 앉아서 멋진 풍경을 지긋이 바라보면서 커피 한잔을 하고 계셨다. 단 오분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먼발치에서도 아저씨가 흰 눈이 쌓인 멋진 풍경을 즐기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후로 새벽에 커피를 마실 때마다 경비실 뒤쪽 벤치를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는데 가끔씩 차 한잔을 하시거나 풍경을 즐기고 계신 아저씨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오늘처럼 단풍이 아름답게 든 날에도, 눈이 내려서 온 세상이 하얗게 덮인 날에도, 벚꽃이 찬란하게 핀 날에도 낙엽을 쓸기 전에, 눈을 치우기 전에, 흐드러진 벚꽃 잎을 쓸기 전에 차 한잔을 하시는 아저씨의 얼굴과 세이모어의 얼굴이 겹쳐져 보였다.


새벽부터 시작되는 고된 하루를 불평하면서 마주하기보다 멋진 풍경을 감상하면서 차 한잔을 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분이라면 진정 인생을 멋지게 즐길 줄 아는 분이 아닐까.


순간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닌데 쓸데없는 생각으로 소중한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인데 쓸데없는 잡념으로 나 자신을 흔들고 있었던 을 반성하였다.

나도 세이모어처럼, 우리 동네 경비 아저씨처럼 내 자리에서 나의 인생을 즐겨야겠다. 내 것이 아닌 것에 동요하지 말고 지금의 내 인생에 집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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