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탄생/ 자기비판의 시도 2장
이러한 니체 사유적 토대를 바탕으로 하나의 책이 나왔는데, 전혀 젊은이답지 않은 과제로부터 나와야 했던 불가능한 책이었다. 이 책은 온통 너무 때 이르고 조숙한 자기 체험들, 한결 같이 거의 전달 가능성의 한계에 놓여 있는 체험들로부터 건립되었으며, 예술의 토대 위에 세워졌다. 왜냐하면 학문의 문제는 학문의 토대 위에서는 인식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어쩌면 분석적이고 회고적인 능력을 겸비한 예술가(사람들이 찾아다녀야 하지만 전혀 찾아다니려 하지 않는 예외적 종류의 예술가)를 위한 것”일 수도 있는데, 심리학적으로 새로운 내용과 예술가의 비밀들로 가득 차 있으며, 그 배경에 ‘예술가-형이상학’을 깔고 있다.
청년의 용기와 우수가 가득한 책이며, 권위를 인정하고 그에 대한 존경심을 표명하는 것처럼 보이는 대목에서도 독립적이며 반항적이라고 할 정도로 자립적인 청년기의 작품이다. 노인다운 문제를 다루면서도 청년기의 결점에 묶여 있는 ‘장황함’과 ‘질풍노도Sturm und Drang'를 지닌 처녀작이다(처녀작이라는 낱말이 가진 모든 나쁜 의미에서의 처녀작).
다른 한편으로는, 마치 대화에 초청하듯이 관심을 표현했던 위대한 예술가 ‘리하르트 바그너’에게서 거둔 성공을 고려한다면, 이 책은 그 가치가 입증된 책이다. 아무튼 ‘당대의 최고 인물’을 만족시킨 책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이 책은 그것만으로도 약간의 배려와 묵인 아래 취급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니체는 《비극의 탄생》이 출간된 지 16년이 지난 그때에 서문을 새롭게 쓰고 있을 때, 그 자신에게 얼마간의 불만족과 얼마간의 낯섦이 그 자신 앞에 서 있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반면에 니체는 그 자신의 변하지 않는 시선도 고백하고 있다. 그 자신이 《비극의 탄생》을 쓰던 그때의 관점이 틀리지 않았음을 재차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눈은 예전보다 늙고 수백 배 제멋대로이지만 결코 냉담해지지 않았으며, 이 대담한 책이 처음으로 도전한 저 과제에 대해서도 낯설어지지 않았다. 학문은 예술가의 광학으로 바라보지만, 예술은 삶의 광학으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