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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적 총체성 그리고 '광기'

비극의 탄생/ 자기비판의 시도 4장

by 아란도

4장(책세상/p14:11~16:9)



* 이 장은 온통 질문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질문을 쪼개어 보았다. 그러다 보니 대략적으로 스무 개로 나뉜다. 이 질문들은 모두 앞으로 니체가 전개할 글의 소스들이자 골격이다. 제2부에서 더 세부적인 설명들이 이어질 것이므로, 이 글에서는 몇 개의 질문들에만 내 생각(자료정리 + 내생각 첨언)을 달아보았다.

* 니체의 질문을 여러 개로 내가 쪼갰지만, 원래는 다다닥 다 붙어 있다. 니체의 글은 낭독으로 읽는 것이 속도감을 느끼기에 좋다고 생각한다. 말 달리는 것 같은 그 속도감이 주는 경쾌함과 긴박함, 그리고 황야에서 홀로 고독하게 사유하는 것 같은, 고대 그 너머의 고대를 기억하는 것, 이러한 것들을 목소리를 통하여 자기 귀로 듣는 느낌은, 어쩌면 고대 서사시를 듣고 있는 바로 그것과 같은 것일지도. 듣는다는 것은 생경한 경험이다. 음악처럼 말이다. 나는 일부러 쪼갰지만, 온 글 그대로 읽어보는 것은 훨씬 생생한 신체적 체험이 될 것이다.





1) 무엇이 디오니소스적인가? 5장 전체가 ‘디오니소스적인 것’에 대해 니체가 대략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2)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어떻게 그리스인들에게 비극의 근원이 된 것인가? 이것은 심리학적 질문이다. 니체는 이 질문이 ‘어려운 질문’이라고 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 좀 더 신중하고 간략하게 말하고 있다.

3) 근본적 물음은 고통과 그리스인의 관계, 그의 감수성 정도다. 그렇다면 이 관계는 여전히 똑같은가? 아니면 전도되었는가?

4) 점점 더 강해지는 그리스인의 미에 대한 욕망, 즉 축제, 오락, 새로운 의식에 대한 욕망이 결핍, 궁핍, 침울 고통에서 자랐는가?


5) 이 점이 ‘참’이라고 전제하는 것은, 페리클레스(투키디데스)가 거대한 장례식 연설에서 그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니체가 하고자 하는 말의 요지는, 바로 이거다.


-> 페리클레스는 BC495~429년에 살았던 인물이다. ‘페리클래스의 장례식 추도 연설문’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제2권 6장에 나와 있다. 아테네가 델로스 동맹을 주도하자 스파르타는 위협을 느꼈고, 그 결과는 전쟁으로 치달았다. 이 전쟁에서 아테네가 패하고 수 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아테네는 아테네 제국 시대를 스파르타에게 넘겨주어야 했다. 페리클래스는 아테네 시민 수 천 명의 장례식에서 추도사를 하였다. 니체가 가리키고 있는 것은 바로 그 추도사의 내용이다.


페리클래스의 추도사의 내용은 이러하다.


“ 이들은 부(富)보다도 적에게 복수하길 희구하고, 이것이 생명을 내던질 만큼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믿었으며, 퇴각해 생명을 보존하기보다는 대항해 싸우다가 죽기를 선택했습니다. 여러분이 깨닫기를 바라는 것은, 이들 용사가 아테네에 준 무상의 보물은 설사 시도하다가 실패하더라도 아테네를 위해 최선을 다하려 한 마음가짐이었다는 것입니다. 긍지 있는 사람은 겁을 내고 살면서 수치를 당하기보다 조국을 위해 힘을 다하고 희망에 불타면서 홀연히 죽어가는 것을 바람직하게 여깁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모인 전몰자의 부모가 되는 여러분께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 전사자들처럼 최상의 영광으로 가득 찬 최후를 맞이하고, 여러분이 바치는 애도를 받으며, 풍요로운 생애의 종말조차도 충실했던 사람들이야말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끝으로 오늘 이후 미망인이 되는 분들의 부덕(婦德)에 대해 한마디 하자면, 여성의 본분에서 벗어나지 말며, 좋든 나쁘든 남자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는 것을 무엇보다 긍지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페리클레스의 장례식 추도 연설 - Daum 백과


“이 점이 ‘참’이라고 전제하는 것”이 가리키는 의미는, 바로 그 위의 질문들이다. 즉, 1)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어떻게 그리스인들에게 비극의 근원이 된 것인가? 2) 근본적 물음은 고통과 그리스인의 관계, 그의 감수성 정도다. 그렇다면 이 관계는 여전히 똑같은가? 아니면 전도되었는가? 3) 점점 더 강해지는 그리스인의 미에 대한 욕망, 즉 축제, 오락, 새로운 의식에 대한 욕망이 결핍, 궁핍, 침울 고통에서 자랐는가? 답은 ‘그렇다’이다. 페리클래스의 추도문에는 강한 비통이 담겨 있다. 그리고 현세에 대한 강한 의지도 담겨 있다.


이 비통함은 그대로 ‘디오니소스적인 것’에 통합된다. 그리스인들의 감수성은 ‘죽음’에 민감하다. 이 민감성은 호메로스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쩌면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야말로 니체에게는 또 하나의 ‘회고’ 방식이기도 할 것이다.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호메로스의 신격화>(L'Apothéose d'Homère)




니체는 그리스인들의 삶의 방식이 ‘호메로스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근거가 되는 내용은 ‘나무 위키’에서 부분 발췌하였다.


호메로스의 인간들은 죽음 뒤의 본질적인 삶을 재는 어떤 도덕적인 잣대도 알고 있지 않다. 그들 삶의 의미는 여기 지상에서 다한다. 죽음과 함께 인간 자신은 "개떼와 새떼"한테로 돌아가나, 꼭 영혼이라고 할 수만은 없는 그의 혼은 하계에서 무가치한 무의 실존을 영위하기에, 아킬레우스는 그러한 실존이라면 차라리 극빈한 날품팔이의 현존과 맞바꾸길 원했다.

이렇게 이승에 국한시킴에 걸맞게, 좋은 일에는 흔연히 기뻐하고 나쁜 일에는 서슴없이 슬퍼한다. 호메로스의 인간은 그것이 가능했다. 무슨 일을 당하든 무슨 일을 행하든, 저승의 현실을 고려하느라 그 어떤 일도 상대화되지는 않았다. 관습과 명예가 요구하는 일을 존엄과 위엄으로 행하거나 감수한다. 그래서 아킬레우스는 싸움터에서 자신에게 생명을 애걸하는 혈기왕성한 트로이아인에게 말한다(제21권, 104행).

허나 벗이여, 그대 또한 죽게나. 무에 그리 헛되이 애걸하는가?
자, 파트로클로스도 죽었잖는가, 그대보다 훨씬 나은 자였는데도.
그대 보고 있잖는가, 나 역시 얼마나 멋지고 위풍당당한가를,
위대한 아버지의 자식이요, 여신이 날 낳으신 어머니라네:
그러하나 나에게도 죽음과 거센 운명이 닥치기 마련이라.
어느 한 때가 올 것이네, 아침, 저녁, 아니면 한낮이,
어느 누군가가 싸움터에서 내 목숨마저도 앗아갈 때가,
어쩌면 창을 던지어, 어쩌면 시위를 떠난 살로.

호메로스가 '일리아스'에서 그리고 있는 것은 완결된 우주와 그 안에서 영위되는 총체적인 삶이다. 일리아스는 불가피성에 직면한 인간의 모습을 그린다. 전쟁은 특히 아킬레스(아킬레우스)에게 ‘인간 비극의 근원’으로서 ‘불굴의 전사 정신’을 이끌어낸다.


'오디세이아'는 일리아스보다 새로울 뿐 아니라 인류의 성취 가운데서도 두드러지는 업적, 즉 바다를 어떻게 장악했느냐를 이야기한다. 오디세이아에서 전쟁은 “자기 향상의 기회”다. 또 오디세이아의 세계는 전쟁보다는 협상의 세계다. 주인공 오디세우스는 귀향을 미루고 끊임없이 새로운 장소, 새로운 삶의 유혹에 이끌린다.


‘일리아스’에서 총체적인 삶의 형태는 편집된 형태로 드러난다. 그러니까 삶의 전체성이 아니라, 삶의 총체성을 호메로스는 서사시로 표현한 것이다. 일리아스에서 드러난 삶의 총체성은 오디세이아에서 주인공 오디세우스가 귀향을 미루고 새로운 장소와 새로운 삶의 유혹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과 연결된다. 무엇인가? 오디세우스의 삶의 여정이 펼쳐지는 각 공간들은 하나의 훈련 장소이기도 하다. 이러한 ‘자기 향상의’ 장소는 바로 총체적으로 종합된다. 그러니까 호메로스가 편집한 서사시 구성 방식 그 자체가 나는 총체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하나의 훈련 장소, 즉 각각의 장소에 대한 경험이 한 줄에 꿰어져 일의성을 드러내는 그것이 바로 총체적인 것의 종합이라고 본다는 의미이다. 일직선으로 드러난 방향은 ‘자기 향상의 기회’라는 의미를 드러내고 있다. 바로 이러한 지점이 그리스인의 근간을 이루게 된 것이다. 비극은 그리스인들에게 하나의 삶을 추동하는 ‘동력’과 같은 것이었다고 보인다.







6) 시간상으로 그 이전에 나타났던 정반대의 욕망, 즉 추한 것에 대한 욕망, 염세주의, 비극적 신화, 실존의 밑바탕에 놓여 있는 모든 무서운 것, 악한 것, 불가사의한 것, 파괴적인 것, 운명적인 것의 표상에 대한 고대 그리스인의 엄격한 의지는 도대체 어디에서 유래하는 것인가?


7) 그렇다면 비극은 도대체 어디에서 유래했단 말인가?

8) 어쩌면 쾌락으로부터, 힘으로부터, 넘쳐나는 과도한 풍요로부터?

9) 생리학적으로 묻는다면, 희극 예술뿐만 아니라 비극 예술을 만들어낸 저 광기, 즉 디오니소스적 광기는 도대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10) 뭐라고? 광기라는 것이 반드시 퇴화, 몰락, 노쇠한 징후는 아니지 않은가? 건강의 노이로제가 있지 않은가? 민족의 청년기와 청년성에서 오는 노이로제가 있지 않은가?





사티로스/ 나무위키


11) 사티로스의 몸 안에 신과 산양이 함께 있는 저 종합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리스인은 어떤 자기 체험에서, 그리고 어떤 충동으로 인해 디오니소스적 열광자와 인간의 원형을 사티로스로 생각해야만 했을까?


-> 사티로스는 디오니소스의 시종이다. 상체는 인간이지만 하반신은 염소의 것이며 머리에는 뿔이 나 있다. 사티로스의 캐릭터는 장난을 좋아하고 색을 밝힌다. 결국 ‘인간의 원초적 본능’과 연계된다. 사티로스의 신체구성은 인간과 염소(짐승)의 것이 합쳐진 형태이다. 이러한 종합으로 드러난 사티로스는 인간 안에 내재된 또 다른 일면을 내포하고 있다. 니체는 그리스인이 ‘디오니소스적 열광자와 인간의 원형’으로 사티로스를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어떤 자기 체험과 어떤 충동’의 의미는 바로 ‘광기’ 일 것이다. 인간 안의 원초성을 자극하는 것은 ‘광기’적인 것이며, 이러한 광기는 하나의 힘의 분출로 보아야 할 것이다.


충동이란 무엇인가? 충동은 바로 그때 불현듯, 갑자기 뭔가를 하고 싶은 욕구이다. 즉흥적인 욕구는 그 순간에 어떤 의욕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힘은 순간적이며 지속적이지는 않다. 의지는 의욕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대체로 인간은 '충동적 행동이나 말'이 불편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현대인들은 '충동'에 대하여 어떤 억압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반면 그 충동을 잘 통제하고 관리하면서 왔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충동'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본다면, 아마도 '다음 행동'을 불러 일으키는 힘이 아닐까 싶다. 충동이 없다면 우리의 그다음 행동은 지시되지 못할 것이다. 하고자 하는 의욕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면 그다음은 어떤 것과도 연결되지 못한다. 어떤 이는 충동적인 것으로 인간이 뭔가를 이룰 수는 없다고 말한다. 딴은 맞는 말이지만, 이 충동이 일으키는 순간적인 열정이 없이는 우리는 어떤 아이디어도 성취할 수 없다. 충동을 보완하고 그 충동을 갈무리하는 힘 역이 우리 안에는 있기 때문이다. 직관도 이를테면 충동적이며 몰입도 충동적이다. 이것은 모두 순간에 분출되며 순간에 깊게 파고드는 힘이다. 그러므로 이것 역시 반복적인 실행으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일 거다.




세마의식에서는 세마젠(Semazen)이라고 불리는 원형무/ 수피즘의 세마춤




12) 비극 합창단의 근원에 관해 말해보자. 그리스인의 몸이 꽃피고 그리스인의 영혼이 생명으로 가득 차고 넘쳤던 그 수세기 동안에 혹 ‘풍토성의 무아경’이 있었던가? 전체 공동체와 의식을 위해 몰려든 군중 전체에 번져나간 ‘환영과 환각’이 있었는가?


-> ‘무아지경無我之境’이란 무엇인가? 자기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자기를 잊어버린다는 것은 현재의 그 자신의 상태를 잊어버리는 것이며, 어딘가에 ‘몰입’한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몰입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우리가 어떤 것에 심취하거나 그것에 빠져들 때 우리는 ‘현재의 시간’을 망각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현재의 시간을 망각하고 어느 시간에 몰입하게 된단 말인가? 아마도 그것은 ‘시간이 없는’ 상태의 시간을 의미하는 것일 것이다. 어떤 것에 빠져 있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다. 비근 예로 옛날이야기에서 ‘도낏자루 썩는 바로 그 시간’의 형태일 것이다.


보통 무아경은 황홀경恍惚境과 같이 일어날 때가 많다고 보인다. 자기를 잊어버려야 특별한 체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황홀경은 어떤 체험에 그 자신의 정신이 온통 사로잡히며 도취陶醉 상태에 머물게 한다. 그러나 그러한 시간은 순간적으로 짧으며, 지속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러한 강렬한 체험을 오래도록 느낌적으로 기억하게 되는데 이것은 신체에 각인되는 느낌인 것이다. 그것은 기억처럼 다시 불러올 수 있는 형태는 아니다. 항상 ‘일회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체험은 항상 ‘여운’을 남긴다. 그 여운에 의해서 그 상태를 다시 회복하려는 형태로 나아가게 된다.

문제는 이 도취 상태는 일종의 환각 상태와 같다. 우리는 다양한 예술적 체험에서 환각 상태를 경험한다. 그러나 그것은 일종의 환희감과 같은 것이고, 우리의 정신을 리셋시키는 효과를 준다. 도취의 강도가 강렬할수록 인간은 더 깊은 환각 상태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강렬한 효과를 노린 것이 바로 ‘마약류’ 일 것이다. 우리의 일상에서는 이 마약류가 우리의 일상의 삶을 흩트리지만, 반면에 분자생물학 쪽의 연구에서는 인간의 환각 상태를 통하여 인간의 정신 활동을 연구하는 사례들이 많다고 한다. 결국 이러한 연구에 소용되는 약품들이 마약으로 제조되게 된 것이고 보면, 절절한 쓸모와 과용은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인간의 신체가 어떤 활동으로 호르몬을 분비하여 감정을 조절하지만, 인간 신체에 호르몬 분비를 약물로 과다하게 조절한다면, 그 역시 약물 남용이 될 것이다. 약으로 사용하는 것과 쾌락으로 사용하는 것 역시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디오니소스 축제의 광기적 본질에 대해 접근하려면, 현재 남아 있는 상태에서 비근한 예시를 찾아보아도 될 것이다. 그래서 수피즘의 창시자 수피즘의 창시자 ‘메블라나 루미(Mevlana Rumî)’, ‘수피즘(Sufism)’과 ‘메블라나(Mevlâna)교단’ 그리고 ‘세마젠(Semazen)’에 대해서 알아볼 것이다.


‘잘랄 앗딘 루미(Jalāl ad-Dīn Rūmī/ 1207~1273)’는 13세기에 활동했던 호라즘 제국의 대도시이자 페르시아권 문화의 중심지였던 ‘발흐’에서 출생했다. 그의 아버지는 이슬람 율법 학자이자 신비주의자였던 ‘바라 앗딘 왈라드’였다. 1219년 몽고 침입으로 루미의 아버지는 친족과 제자들을 거느리고 호라즘 제국을 제국을 떠나서 서쪽으로 향했다. 니샤푸를 거쳐 바그다드, 메카를 순례한 후 카라만에 정착하였다. 그 후 다시 룸 술탄국의 케이쿠바트 1세의 요청으로 수도인 아나톨리아의 ‘콘야’에 정착하였다. 루미 역시 여생의 대부분을 이 ‘룸 술탄국’에서 보내게 된다.


1231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당시 25세였던 루미가 그 뒤를 이어 콘야에서 몰비이자 율법학자로 활동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제자인 ‘부르한 우딘’으로부터 ‘수피즘’의 가르침을 전수받았다. 이때 루미는 명성 놓은 신학자가 되어 있었다.


1244년 루미는 ‘샴스 타브리지’라는 늙은 떠돌이 수피즘 철학자를 만나게 되었다. 루미는 그에게 감화를 받았고 남은 평생 동안 그를 영적 스승으로 받아들였다. ‘신의 완전한 사랑’에 대한 샴스 타브리지의 가르침은 루미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루미는 이제 신학자에서 신비주의 시인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루미는 샴스 타브리지에게서 받은 영감을 토대로 페르시아 시의 일종인 ‘가잘’을 창작하기 시작했다. 그의 시는 대체로 섬세한 서정시의 성격을 띠고 있었으며, 인간과 사랑과 신의 합일이라는 종교적 사상을 노래했다. 대표적인 6권 분량의 시집 《정신적 마스나비》를 완성하였다. 종교를 초월한 신의 근본적 사랑 자체를 강조했던 그의 가르침 덕분에 수피즘 사상가, 이슬람교도, 기독교도, 조로아스터교, 유대교도 등으로부터 폭 넓은 지지와 존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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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피즘은 이슬람교의 신비주의적 분파이다. 수피즘은 다른 이슬람교 종파와는 다르게 전통적인 교리 학습이나 율법이 아니라, 현실적인 방법을 통해 신과 합일되는 것을 최상의 가치로 여긴다. 수피즘의 유일한 목적은 신과 하나가 되는 것으로 이를 위해 춤과 노래로 구성된 독자적인 의식을 갖고 있었다.

수피는 아랍어의 양모를 뜻하는 어근 수프(아랍어: صوف ṣūf[*])에서 파생된 말이다. 수피즘의 초기 행동대원들은 금욕과 청빈을 상징하는 하얀 양모로 짠 옷을 입었기 때문에 수피라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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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피즘에서는 독특한 의식을 치르는데,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내쉬는 반복적 리듬에 맞추어 쉬는 동안 정신력을 집중하는 법을 배운다. 그들은 금식하고 철야하며 신의 여러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고 찬양한다. 그리고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는 이러한 과정을 세마의식이라고 하며 이 과정에서 수피들은 때때로 황홀경에 빠져들기도 한다.

세마의식에서는 세마젠(Semazen)이라고 불리는 원형무를 춘다. 춤은 추는 자는 스스로 반복적으로 몸을 회전한다. 이때 '네이'라고 부르는 갈대피리의 반주에 맞춰서 춤을 춘다. 음악을 부정적으로 여겼던 이슬람교와는 다른 일면을 가지고 있었다. 수피즘에서는 음악의 초월성과 서로 다른 음들의 조화가 수피즘의 사상에 걸맞았기 때문에 음악과 춤을 장려했다. 또한 노래를 자주 불렀는데, 이는 아마도 루미가 수피즘의 교리를 발전시키면서 시적 영감을 도입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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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란은 아랍어로만 쓰여 있기 때문이 아랍인이 아닌 일반 무슬림들에게는 매우 어려운 경전이었다. 그래서 명상과 노래, 수도생활 등을 통해 신과 만나는 다양한 방식이 창안되었다. 루미의 세마춤은 대표적이다. 빙글빙글 도는 춤을 추다가 무아지경 상태에서 신과 하나가 될 수 있다고 하니 말이다. 어려운 경전 공부를 통해 만날 수 있는 절대자가 아니라 우리 마음과 삶 가까이에 있는 창조주의 개념을 제시했다는 평가이다. 아랍어 경전을 읽기 힘들었던 투르크족은 루미의 가르침을 적극 받아들였다.


‘메블라나 교단’의 창시는 이슬람 역사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다준 사건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루미는 단순히 신비주의에 빠져 있던 종교 지도자는 아니었다. 공존과 상생의 지혜를 설파한 사상가이면서 토착 종교와 관습을 존중했다. 비 무슬림 이교도들이나 무신론자에게도 구원의 손길을 펼쳐야 한다고 했다. 모든 사람은 다 형제이며 신으로부터 받은 인간의 영혼은 영원하므로, 모든 사람들은 사랑 가운데 미덕과 선행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가르침이었다. 유네스코는 지난 2007년 루미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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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에서 ‘세마젠(Semazen)이라고 불리는 원형무’의 기원에 관해서 생각해보고자 하였다. 수피즘은 이슬람교로부터 박해도 많이 받았다. 온건한 이슬람에 해당한다고 보이는 수피즘은 같은 이슬람교에서도 이슬람교가 아니라고 배척하기도 한다.

딴은 그도 그럴 것이, 세마젠의 그 기원은 페르시아로 거슬러 올라갈 것이고, 로마로 거슬러 올라갈 것이며, 다시 페르시아로 거슬로 올라갈 것이며, 마케도니아,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그 무아지경의 춤의 기원은 어디서로부터 비롯된 것일까? '광기'에서 무아지경과 황홀경은 분화된 것일 것이다. 그리고 광기는 몰입으로부터이다. 이는 무엇인가? 점차로 광기를 사람들이 활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며, 통제할 수 있게 되었고, 필요에 따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세마젠의 기원을 '디오니소스적인 것'으로 보며, 더 본질적으로는 '광기'에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것은 합일하는 '힘'적인 것이며, 인간은 본래 신과의 합일을 통하여 생성된 존재이며, 그것은 디오니소스가 신 제우스와 인간 세멜레 사이에서 생성된 존재라는 것도 그러하다. 광기는 '신의 힘'을 인간이 그때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전히 광기는 통제가 안 되는 무서운 힘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인간 안에는 여전히 광기적인 것이 잠재되어 있다. 하지만 인간은 그 자신의 힘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법을 오랜 시간에 걸쳐 배워왔다. 그리고 보편적 인간이 되었다. 그런데 간혹 어떤 분출되는 힘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무기력을 벗어나거나 또는 어떤 작업을 수행해야 할 때, 인간은 의식적으로 몰입해야만 한다. 이 역시 반복적 실행과 그것이 그 자신 안에 축적되고 훈련된 상태로 신체가 움직여야만 한다. 이러할 때 우리는 그 자신을 넘어선다. 특수한 상황에 그 자신을 가둔 것이다. 이 상황에서 그 자신은 시간이 없는 시간을 경험한다. 그 시간은 현실의 시간이 아니다. 오직 그 자신만의 시간이다. 그때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그저 공간과 나만 존재할 뿐이다. 예술의 형태는 모두 이러한 구조적 공간을 드러낸다. 니체가 ‘광기’와 ‘무아경’ 그리고 ‘환영과 환각’을 이야기할 때 그것은 모두 시적이고 음악적인 것이다. 예술적인 특성은 우리가 문득문득 체험하는 것들에서도 이미 희미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보인다.









13) 어떠한가? 그리스인들이, 바로 자신들의 청년기의 풍요로움 속에서도 비극적인 것에의 의지를 가졌으며 염세주의자였다면?

14) 플라톤의 말 한마디를 빌리자면, 그리스 땅에 가장 큰 축복을 가져다준 것이 바로 그 광기였다면?

15) 그리고 한편으로 거꾸로 말한다면, 그리스인들이 바로 자신들의 해체와 약화의 시기에 훨씬 더 낙천적이고, 피상적이고, 배우 같고, 논리와 세계의 논리화에 더욱 열성적이고, 그러므로 “더 명랑하고” 동시에 “더 학문적”이 되었다고 한다면?



16) 어떠한가? 민주주의적 취향의 모든 “현대적 이념들”과 편견들에 대항하여, 낙천주의의 승리, 우세해진 합리성, 실천적이고 이론적인 공리주의, 그리고 공리주의와 함께 동시에 나타난 민주주의 자체가 어쩌면, 약화되는 힘, 다가오는 노쇠, 생리적 피로의 징후인 것은 아닌가?


->낙천주의적 소크라테스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이 부분은 제2부 음악의 정신으로부터의 비극의 탄생에서 자세하게 다루어지므로 여기서 설명은 패스한다.



17) 그리고 염세주의 자체가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18) 에피쿠로스가 바로 고통당하는 자로서 낙천주의자였다면?


19) 사람들은 이 책이 지고 있는 짐이 온통 ‘어려운 문제들의 다발’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 그렇다. 이 '어려운 문제들의 다발'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어려운 문제이다.


20) 우리는 여기에다 이 책의 가장 어려운 문제를 덧붙이기로 하자! “삶의 광학으로 본다”면 도덕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도덕이야말로 반도덕이라는 것. 왜냐하면? 세상을 거꾸로 다시 보면 그러하다.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생각이 비정상일 때가 많다. 삶은 비도덕인 형태로 구성된다. 그러므로 삶의 광학으로 볼 때, 즉 비도덕에서 도덕을 보면, 그 도덕은 반도덕이 된다. 여기에서 도덕은 기독교적인 것이며, 따라서 반도덕은 기독교적인 것이 되며, 억압이 된다. 그렇다면 도덕은 비도덕성을 회복하는 바로 그것이 새로운 도덕이 될 것이다. 새로운 도덕은 명랑적 낙천주의보다는 비극적 염세주의에 더 깊은 뿌리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일 것이다. 인간이 슬픔을 인식한다는 것만큼 더 생의 빛남을 추동하는 것이 있기나 할까. ‘애도’에서 인간은 새로운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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