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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비판의 시도'는 서문이 아니라 '서곡'이지 않을까

비극의 탄생/자기비판의 시도 1장

by 아란도 Nov 2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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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탄생     

1. 자기비판의 시도          

    1(책세상/p9~11:10)     


* 이 책은 1870~1871년 프랑스 - 프로이센 전쟁이 일어난 어수선한 시기였다. 뵈르트 전투의 포성이 유럽을 휩쓸던 1871년 말 알프스 산맥 바젤에서 쓰여졌다. 

니체는 “알프스의 어느 구석에서 난해한 질문을 골똘히 생각하며 앉아 있었다.” <- 사색에 잠긴 니체는 전황이 궁금하기도 하고 동시에 무관심하기도 하였다. 이 양가감정은 사색하는 인간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무엇이 더 중요한가? 는 따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자기 문제 해결이 더 시급하다. 더구나 사색에 잠기면 그때 인간은 수동적이 된다. 생각만 활동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며, 그 생각은 그 자신을 더 붙들면 붙들었지 놓아주질 않는다.


이때의 사색을 통한 니체의 글쓰기는 바로 ‘비극의 탄생’의 핵심이 되었다. 그가 여전히 어떤 물음표를 가지고 있었을 때, 전쟁 상황은 마침내 베르사유에서 평화협상이 이루어졌다. “몹시 긴장된 그달에 그는 마침내 평화를 얻었고, 전장에서 얻은 병을 서서히 치유하면서 《음악의 정신으로부터의 비극의 탄생》을 최종적으로 완성”하였다.     


1) 비극의 탄생에서 니체가 말하는 가장 중요하고 매력적인 질문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니체 자신의 개인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메스의 성벽아래에서 니체는 “그리스인들이 가진 소위 ‘명랑성’과 ‘그리스적 예술’에 대해 자신이 붙였던 물음표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먼저 니체는 그리스인들이 왜 비극을 필요로 하였는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음악과 비극’은 얼핏 서로 어울리지 않는 관계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데 현재의 우리는 ‘슬픈 음악’을 많이 듣는다. 아니 기분에 따라서 음악을 선곡한다. 현재에서 음악은 기호와 취향에 따라서 취사선택된다.  니체 당시에는 음악의 선택적 영역이 그리 넓지 않았다. 그러니 그 당시의 음악적 시대 상황을 떠올리며 니체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리스인들과 비극음악 역시 쉽게 이퀄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그리스인들과 염세주의 예술작품을 니체는 나란히 놓는다. 정리하자면, 음악/비극, 그리스인들/비극음악, 그리스인들/염세주의 예술작품은, 모두 고대그리스인들이 향유했던 가치들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비극적 요소들을 수용했으며, 이 비극적 가치를 예술작품으로 승화했으며, 이 전반적인 풍조는 ‘염세주의’였다.     


니체는 “이제까지 존재한 모든 사람들 중에서 가장 성공하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많은 부러움을 샀으며, 우리를 삶으로 가장 강하게 유혹하는 유형의 사람들이 그리스인들인데, 이들에게 ‘비극’이 필요했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예술에서도 ‘그리스 예술’이 바로 ‘비극’을 필요로 했었다는 사실에 대하여 니체 자신의 격양된 어조를 통해 강조하고 있다.     


니체가 이러한 사실을 토대로 밝히려고 한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의 ‘실존상태’였다.

“사람들은 이로써 실존의 가치에 관한 커다란 물음표가 어디에 찍히게 되는지 미루어 헤아릴 것이다.”

“염세주의는 필연적으로 몰락, 퇴폐, 변질, 지치고 허약한 본능의 기호인가? 인도인들, 현대인과 유럽인이 그렇듯이?”

“강함의 염세주의는 있는가? 행복과 넘쳐나는 건강함 그리고 삶의 풍요에서 유래하는 실존의 가혹함, 두려움, 사악함과 문제점들에 대한 지적인 편향은 있는가?”

“혹시 지나친 풍요 자체에 대한 고통은 없는가? 자신의 힘을 견주어볼 수 있는 상대인 적敵, 즉 ‘가치 있는 적’으로서 무서운 것을 갈망하는 몹시 날카로운 눈초리의 실험적 용기는?”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고자 하는 적은 있는가?”

“가장 훌륭하고 가장 강하고 가장 용기 있는 시대의 그리스인들에게 비극적 신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디오니소스적인 무시무시한 현상은?”

그것으로부터 탄생한 비극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다시금, 비극을 죽인 도덕의 소크라테스주의, 변증법, ‘이론적 인간의 명랑성을 보자.”   

   

2) 소크라테스적 변증법(소크라테스적 명랑성)이란 무엇인가?

여기에서 니체가 하고자 하는 말은 바로 이것이다.

소크라테스주의가 몰락, 피곤, 병듦, 무정부적으로 해결하는 본능의 기호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스 문화에서 후기 그리스 문화의 ‘그리스적 명랑성’은 단지 황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염세주의에 대항하는 에피쿠로스의 의지는 단지 고통을 당하는 자의 조심성에 불과하다는 것. 학문 자체와 우리의 학문은 어쩌면 염세주의에 대한 공포와 도피에 불과한 것, 그것은 진리에 대한 정당방위일 뿐이라는 것, 도덕적으로 말한다면 그것은 비겁함이고 거짓과 같다는 것, 반도덕적으로 말한다면 그것은 교활함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적 명랑성은 오히려 ‘아이러니’ 그 자체라고 니체는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비판의 시도 1장 끝-   



       



브런치 글 이미지 1


비극의 탄생에서 자기비판의 시도는 책의 도입부에 해당한다. 보통은 ‘서문’ 형식이다. 그런데 문득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니체는 과연 여기서 ‘자기비판의 시도’를 서문으로 썼는가?이다. 나는 아마도 니체라면 조금은 다른 방식을 도입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음악’이었다. 《비극의 탄생》에서 니체가 중심에 놓고 있는 소재는 ‘음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도입부는 서문이 아니라 ‘서곡’에 해당할 것이었다.


니체는 그 자신이 왜 비극의 탄생을 저술하였는지에 대한 배경과 경위를 요약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자신의 심정을 드러내고 있다. 처음에는 니체가 그때 다소 조금은 격양되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했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니체는 음악적으로 ‘자기비판의 시도’를 재구성하였다고 보이며, 서곡의 곡조에 맞게, ‘빠르게 느리게’를 반복하며 클라이맥스climax까지 단숨에 치고 올라간 후 강렬하게 딱! 끊고 마무리하고 있다.


한편으론 니체의 ‘자기비판의 시도’의 클라이맥스에서는 ‘합창’을 할 때, 각각의 목소리가 서로의 목소리에 묻히지 않고 각각 힘차게 뻗어가듯이, 니체의 각각의 질문들은 그 자체로 합창의 형태를 구성하며 최고조를 향하여 질주하고 있다. 그러나 보통 서곡은 악기만으로 구성된 기악 연주이므로, 니체는 클라이맥스 부분을 악기들의 대립이 만들어내는 광풍과도 같은 웅장함을 그 자신의 질문들의 대립으로 대체하여 표현한 듯하다.


또한 ‘자기비판의 시도’ 전체를 지루하게 끌고 가지 않도록 빠른 속도감의 ‘알레그로 카발레타’의 리듬을 부여하여 니체 자신이 ‘아리아’를 부르는 것처럼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했다. 니체는 오페라와 교향곡 이 두 개의 형식의 도입부인 ‘오버추어’와 ‘심포니’를 결합한 방식으로 ‘자기비판의 시도’를 썼다고 보인다. 적어도 나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 역시 니체가 독자에게 풀도록 강요하고 있는 하나의 ‘수수께끼’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자기비판의 시도’가 훨씬 더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글은 일단 올리고, 차후에 수정 및 보완을 할 수도 있습니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 네우마 악보/ 서양 중세 시대 때 악보, 즉 현재 사용되고 있는 오선보보다 오래전에 있었던 악보이다. 성가대가 성가를 부르기 위해 사용한 것으로, 선율의 움직임을 시각적으로 구체화한 첫 사례다. _나무 위키_










아래는 위키백과에서 '서곡의 의미'를 요약 발췌한 것이다.


서곡은 본래 프랑스어로 시작을 의미하는 "우베르튀르ouverture"의 번역어이다. 영어로는 ‘오버추어’이다.

서곡序曲은 발레, 오페라, 연극 부수 음악, 고전 모음곡 등의 개시부에 놓여 도입적인 역할을 하는 음악이다.      


극음악의 서곡

원래 극음악의 서곡은 청중이 아직도 웅성거리는 가운데 청중의 주의를 끌 목적을 갖고 연주되었다. 대체로 극 전체의 성격이나 줄거리를 예고하듯 작곡되었다. 오페라 등 성악을 수반하는 극음악에서도 서곡은 기악(오케스트라)으로만 연주되기 때문에 기악의 형식으로 구성된다. 바로크 시기에는 프랑스풍 서곡 형식, 고전주의 시기 이후 소나타 형식이 확립된 이후에는 소나타 형식이나 그 간략한 형식인 서곡 형식으로 쓰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서곡은 교향곡의 첫 악장과 동등한 악식과 이야기성을 겸비하게 된다.

     

베토벤 이후 오페라나 극 부수 음악의 서곡은 극 전체의 줄거리나 분위기를 정리해 미리 전달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스토리성을 가지게 되었고, 나중에는 교향시 등의 ‘표제 음악’으로 발전해 갔다. 또한, 서곡만을 연주회에서 독립적으로 연주하는 경우가 생기게 되면서, 오직 서곡만을 연주회용 서곡으로 작곡하게 되었다.     

오페라의 서곡에 있어서는, 낭만파 중기부터 극이 시작되기 전에 장황하고 극의 개시 자체와는 관계없는 종명적인 서곡이 연주되는 것에 비해, 더 짧고 속임수가 없으며 극의 개시와 일체화된 곡이 작곡되게 되었는데, 이것은 "전주곡(prelude)이라고 명명되었다.     


현재는 서곡이 오로지 연주회용으로 작곡되고 있지만, 모음곡 등에서는 본래의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서곡은 본 음악이 사라진 곡에서도 서곡만은 남아서 독립적으로 연주되고 있다.     

      

칸타빌레cantabile는 음악 용어 중 하나로, '노래하듯이'(singable, songlike)라는 뜻이다.

음악에서 칸타빌레(cantabile)는 이탈리아어로 문자 그대로 "노래할 수 있는" 또는 "노래 같은"을 의미한다. 기악에서는 인간의 목소리를 모방하도록 고안된 특정한 연주 스타일이다.     

18세기 작곡가에게 칸타빌레는 종종 "cantando"(노래)와 동의어였으며 측정된 템포와 유연한 레가토 연주를 나타낸다. 후기 작곡가들, 특히 피아노 음악에서 칸타빌레는 반주에 대항하여 하나의 특정 음악 라인을 끌어내는 것이다.     


칸타빌레 무브먼트 또는 간단히 "칸타빌레"는 더블 아리아의 전반부 다음에 “카발레타”가 뒤따르는 것이다. 칸타빌레 악장은 구조화되고 일반적으로 ‘더 빠른 카발레타’와 대조하기 위해 더 느리고 더 자유로운 형식이 된다. 루이 슈포어는 자신의 바이올린 협주곡 8번 "in moda d'una scena cantata", "in the way of a song [operatic] scene"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오페라 아리아는 현악기를 위한 낭만주의 작문에서 "노래할 수 있는" 칸타빌레 선율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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