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언어를 알고 싶었다. 그러니까 그것은 '메커니즘'에 관한 것이다. 나의 언어에 대한 오랜 열망이기도 하였다. 미학에 대해 우리는 말로 이야기하곤 하지만, 그 언어는 항상 갈증을 일으키곤 하였다. 그런데 '비극의 탄생'을 읽으면서 어떤 희열이 내 안에서 솟아났다. 그런데 그것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라고나 할까? 나는 분명 니체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것 같은데, 그 언어는 상당히 낯설었다.
나는 이 언어에 익숙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자면 자주 접해야 한다. 나는 내 방식대로 옮겨 쓰기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 옮겨 쓰기는 많은 시간 투여를 필요로 한다. 어찌 보면 하다 말다 하게 되는 상황의 반복을 부를 수도 있는 위험한 방식이기도 하다.
내가 이 방식을 선택하고, 게다가 연재까지 하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비극의 탄생'이 알려주는 이 언어의 혼잡을 걷어 내고, 결국은 내 언어로 만들기 위함이다. 이 방식 또한 나에게는 '신체사유'이기도 하다. 또 한편으로는 내가 이해하는 방식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통용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매주 월/수에 니체 책 읽기 '낭독회'를 진행하고 있다. 고정된 멤버들과 같이 읽기로 진행되는데, 읽는 속도에 비해서 책 내용 정리는 항상 뒤처지거나 다음을 기약하게 된다. 정신으로는 감응이 되는데, 언어로는 덜 숙련된 그리고 정리에 있어서도 계속 밀리는 현상을 어느 정도는 만회하고 싶기도 하다. 더구나 니체는 그 자신이 해야 할 말을 은유적으로 돌려서 표현하거나,!,?로 확정적이지는 않고 잠정적인 방식을 사용하여, 독자에게 유추하도록 한다. 그러자면 맥락을 통해서 언어를 간추려야만 한다. 이왕지사 그리 된 거, 옮겨 쓰기도 할 겸, 글쓰기도 할 겸, 사유도 같이 진행할 겸, 직관도 사용할 겸, 겸사겸사로 연재하기로 통 크게 마음먹은 것이다.
연재 날짜를 지키지 못할까 봐 미리 겁이 나기도 한다. 그러니 "나도 몰라! 그냥 지르는 거야!" 심정으로 연재를 하기로 버튼을 클릭했다. 니체식으로 따지면 '충동'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연재로 진행하다 보면, 시간에 쫓길 수도 있고 여러 사정들에 탄력적으로 대응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리되면 충분히 숙고하거나 사유할 시간이 부족하여 깊이가 확보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피상적인 것의 깊이'를 존중한다. 보이는 그것에서 단숨에 깊이를 낚아챌 수 있다고 믿는다. 또한 혼자 진행하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강제성의 약속을 담보로 진행하면, '비극의 탄생' 재정리하는 작업을 완수할 수 있을 것이다. 니체의 '비극의 탄생'은 '책세상'에서 펴낸 니체전집이다. 낭독회에서 읽고 있는 책도 '책세상' 본本이다.
2023년은 정말 하는 것 없이(타인들 눈에는 그렇게 보일지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뭔지 모르게 정말 바쁘고(몸도 마음도 정신도 바빴던 듯) 다소 해야 할 것이 많아서 벅찬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앞으로도 밀린 글 작업만으로도 나는 지금보다 더 바빠질 것이다. 하지만 낭독회에서 읽고 있는 니체 책 정리도 나에게는 중요하다. 나의 생각과 니체의 언어와 사유가 만나서 연결시키는 것들은 문득문득 직관으로 튀어나온다. 그 정리도 나에겐 중요하다. 어쩌면 나에겐 이것이 나의 새로운 샛길인지도 모르겠다. 그 길을 유쾌하게 걸어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