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탄생/ 음악의 정신으로부터의 비극의 탄생 1장
“그리스 세계에서 아폴론적 조각가의 예술과 디오니소스적 비非조형적 음악 예술 사이에는 그 기원과 목표에 따라 커다란 대립이 존재”한다는 우리의 인식은, 그들의 두 예술의 신 ‘아폴론’과 ‘디오니소스’와 결부되어 있다.
루크레티우스의 생각에 의하면, 장엄한 신들의 형상은 꿈속에서 처음으로 인간의 영혼 앞에 나타났으며, 위대한 조각가는 ‘꿈’속에서 초인적 존재의 매혹적인 신체구조를 보았다. 그렇게 자신이 본 그 신체구조를 조각한 것이다.
나의 친구여
자신의 꿈을 해석하고 기억해 두는 것
바로 그것이 시인의 일이다
나를 믿어라
인간의 가장 진정한 환상은 꿈속에서 나타난다는 것을
모든 시 예술과 시작詩作은 다름 아닌 예언적 꿈의 해석이다
꿈의 세계의 아름다운 가상은, 모든 조형예술의 전제 조건이다. 꿈의 세계의 아름다운 가상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모든 인간은 완전한 예술가다. 그것은 시문학의 절반을 차지하는 것의 ‘전제 조건’이기도 하다.
우리는 형상을 직접적으로 이해하면서 즐기고, 모든 형식들은 우리에게 말을 건다. 중요하지 않은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이러한 꿈 현실이 전개되는 최고의 삶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그것이 “가상”이라고 어렴풋이 느낀다.
적어도 나의 경험은 그렇다. 이것이 자주 일어나고 정상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하여 나는 많은 증거와 시인들의 잠언을 제시할 수도 있다.
철학적 인간은, 우리가 그 안에서 살고 존재하는 이 현실의 밑에는 전혀 다른 하나의 현실이 놓여 있고, 그 현실도 또한 ‘하나의 가상’이라고 ‘예감’하기도 한다.
“철학자가 실존의 현실을 대하는 것처럼, 예술적으로 민감한 인간은 꿈의 현실을 그렇게 대한다. 왜냐하면 그는 이러한 형상들에서 삶을 해석하고, 이러한 과정들에서 그는 삶을 위해 연습하기 때문”이다.
“세대가 지속적으로 투쟁하면서, 단지 주기적으로 화합하는 남성과 여성의 이중성에 의존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그리스인들도 꿈 경험의 이러한 즐거운 필연성을 그들의 아폴론 속에 표현했다. 모든 ‘조형력’의 신 아폴론은 동시에 예언하는 신이다. 그 뿌리에 따라 “빛나는 자”, 즉 빛의 신인 그는 내면적 환상 세계의 아름다운 가상까지도 지배한다.
불완전하게 이해되는 대낮 현실과 대립하는 이러한 상태의 보다 높은 진리와 완전성, 나아가 잠과 꿈속에서 치유하고 도와주는 자연에 관한 심오한 의식은 동시에 예언하는 능력의 상징적 유사물이다. 또한 삶을 가능하게 하고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들어주는 예술 일반에 대한 상징적 유사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꿈의 형상이 병리적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넘지 말아야 할 저 민감한 경계선도 아폴론의 모습에서 없어서는 안 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가상”은 졸렬한 현실로서 우리를 기만하게 될 것이다. 적절한 한계 설정, 광폭한 격정으로부터의 자유, 조형의 신의 지혜로운 평정이 그것이다.
그의 눈은, 그 근원에 맞게, “태양다워야” 한다. 그가 화를 내고 불쾌하게 바라볼 때에도 아름다운 가상의 성스러움은 그에게 서려 있다.
“사방으로 끝없이 펼쳐진 채 포효하며 산과 같은 파도를 올랐다 내렸다 하는 광란의 바다 위에서, 한 뱃사람이 조각배 위에, 그 허약한 배를 신뢰하며 앉아 있는 것처럼, 고통의 세게 한가운데서 ‘개별적인 인간’은 ‘개별화의 원리’를 의지하고 믿으며 고요하게 앉아 있다.”
그 원리에 대한 확고부동한 신뢰와 그 안에 사로잡혀 있는 자의 ‘고요한 정좌’가 아폴론의 형상 속에 가장 ‘숭고’하게 표현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아폴론 자체를 “개별화의 원리 principii individuationis"의 장려한 신상神像아라고 부르고 싶을 것이다. 그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가상“의 쾌락과 지혜 전체가 그의 태도와 눈길을 통해 우리에게 말을 건넬 것이다.
같은 곳에서 쇼펜하우어는 무시무시한 “전율”을 묘사하고 있는데, 이 전율은 근거에 대한 원리, 즉 ‘근거율根據律’이 ‘자신의 여러 형태들 중 어느 하나에서 예외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임으로써 인간이 ‘현상의 인식 형식들’에서 ‘갑자기 혼란스러워할 때’ 그를 ‘장악’한다.
만약 개별화의 원리가 깨졌을 때, 인간의 가장 깊은 근저로부터, 즉 자연으로부터 솟구쳐 나오는 환희에 찬 황홀을 이 전율과 함께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본질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