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란 말이 좋다. 한글로는 '시작'이라고 하면, 대체로 전자를 가리킨다. 동음이어에서 뜻을 구분하려면, 문장의 맥락 파악으로 대략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익숙하지 않은 쓰임새의 말이라면, 한자어가 병행되어야 한다.
<비극의 탄생>에서 '詩作'이라는 말을 발견했을 때, 설레었다. 익숙하게 사용하던 '시작'에 다른 의미가 겹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설렘을 주는 그 느낌은 풀숲 사이에 가려진 어떤 샛길이 보여 가 보지 않은 길을 걷는 느낌을 주었다. 언어에도 현실과 비현실이 겹쳐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은 언어가 무엇인가를 함축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설렘의 그 감정은 발이 가벼워지는 느낌을 준다. 가벼워지는 느낌은 중력에서 벗어나는 순간일 것이다. 그렇게 사람은 가벼워진 상태에서 춤추며 미끄러지듯 중첩된 비현실로 들어간다. 경험이란 바로 그런 것을 의미하는 것일 거다.
시작은 시작처럼 시작되고, 시작처럼 다시 시작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감각은 비실재에서 실재의 감각으로 되살아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