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노스적 고통’은 인간의 예술성과 연관이 깊다
요즘, 카톡에 '인간은 모두 크로노스적 고통에 직면해 있다'라고 써 놨다. 내 생각은 이러하다. 크로노스가 삼키거나 혹은 독립시키지 않는 것은 예언과 자기 두려움 때문이다. 자기로부터 비롯된 것이 자기를 죽일지 모른다는 불안이 엄습하는 것이다. 인간이 느끼는 불안 중에서 가장 순수한 불안이어서 원초적이다. 이 원초성에 노출되면 인간은 불안해진다. 그러나 불안을 불안 그 자체로 분리해 보면 저 불안이 과연 나의 일인가? 싶어 진다. 어떤 자기 안에서 응집된 고통의 산물을 밖으로 끄집어내어야 할 이들은 모두 ‘크로노스의 고통’을 겪게 된다. 꺼내거나 꺼내지 않을지라도 이 부산물의 미래를 알 수는 없다. 이 불확실성에서 오는 불안은 자기 배신의 감정을 지니고 있다. 꺼내지 않아도 답답하다. 이미 자기 안에서 용솟음치는 것들은 밖으로 독립시켜야 하는데, 내보내지 못하면 그 역시 안에서 필연적으로 전쟁이다. 이 모순적인 양가감정에서 그 무엇이든 밖으로 절로 독립하게 될 수밖에 없다. 툭 치기만 해도 툭툭 터져 나오는 봉숭아 씨앗들처럼. 안에서 배를 가르고서라도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 생각들처럼, 예술성도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는 것이리라.
어젯밤 나의 상념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크로노스적 고통은 인간의 예술성과 연관이 깊다. 원초적인 고통이기 때문이다.
* ‘크로노스적 고통’은 인간의 이러한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내가 만든 용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