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카페인 등대

뉴욕 모닝사이드 하이츠의 오렌스 커피 (Oren's Coffee)

by 다정

한 나라의 말을 할 줄 안다고 해서 그 나라의 문화를 잘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분명 영어를 할 줄 알았지만, 미국의 문화를 발화할 줄 몰랐다. 당연했다. 나는 한국에서 영어를 배웠으니까. 언어는 사회적 계약이라고 하지 않는가. 처음 뉴욕에서 커피를 테이크 아웃해서 마실 때 나는 바리스타에게 팁을 줘야 하는지 아닌지 몰랐다. (물론 이에 대해서 한 두 해 전까지도 뉴욕에서 의견이 분분했던 것으로 안다. 특히 앉아서 ‘서빙'을 받지 않는 형태의 카페인 경우, 꼭 바리스타에게 팁을 줘야 하는지 아닌지에 대해 이견이 있었다.) 식료품점처럼 무언가를 사서 나오는 것이니 팁을 안 줘도 될까? 아니면 식당처럼 일종의 ‘조리'를 거쳐서 내게 전달되니 팁을 줘야 하는 것일까? 아마 나는 잔돈이 있는 것이 아니면 처음엔 바리스타에게 아무런 팁을 주지 않았던 것 같다. 학생의 신분이니 꼬오오오오오오옥 써야 하는 돈이 아니라면 안 쓰겠다는 인색함이 더해졌던 결정이었다.


더불어 돈을 벌지 않는 학생 신분이니 커피를 밖에서 사 마시는 경우를 최대한 줄이려고 했다. 나는 여직까지도 커피를 많이 마시기로 악명 높다. 19세기 프랑스의 소설가 오노레 드 발자크는 하루에 커피를 50잔 마셨다고 하던데, 그것이 나의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래도 나는 그 정도로 폭음하는 것은 아니니까. 더 이상 어리다고 할 수 없는 나이인 지금, 나는 대학원 시절에 비해 커피 소비량을 절반으로 줄였다. 그게 하루에 다섯 잔 정도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건강검진에서 심각한 위장 건강상의 문제를 지적받은 적은 없다. 대학원에서 수학 하는 동안 하루에 커피 열 잔을 마시려면 아침에 내가 아무리 큰 텀블러에 커피를 싸서 등교해도 모자랐다. 그래도 매일 아침 나의 최대의 호사는 스텀프타운 커피에서 사 온 헤어 벤더라는 원두로 프렌치 프레스를 내려서 커피를 마시는 것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재일 먼저 헤어 벤더 원두가 담긴 봉투를 열고 코를 그 안에 박았다. 수면이 부족해도 절로 정신이 들었다. 카페인이 내 코를 통해 ‘직빵으로' 뇌로 가는 듯했다. 아침을 정말 행복하게 하는 습관이었다. 피보다 붉은 레드 와인과 캐러멜이 오묘하게 어우러진 원두의 향이 내 뇌를 간질였다. 내가 아마존에서 주문할 수 있는 프렌치 프레스 중 가장 큰 크기로 커피를 내리고, 무겁고 커다란 텀블러에 커피를 담아서 학교로 향했다.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오후가 다가오면 자연스레 혈중 카페인 수치가 고공 하락했다. 그렇다고 해서 집으로 향하기에는 스케줄이 애매할 때도 있었다. 그렇다면 최고의 대안은? 오렌스 커피였다. 오렌스 커피는 사실 전혀 안 유명하고, 유명하기로 치면 그 바로 옆에 있는 다이너가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데 한몫했다. 사인펠드라는 (나는 본 적 없는) 시트콤에도 나왔고, 전 미국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가 학창 시절 자주 들렸던 곳이라고 한다. 나는 매일 지나치는 곳에서 관광객들은 열심히 기념 촬영을 했다. 하지만 그곳의 음식이나 커피의 맛은… 지금은 가기가 힘드니 일종의 향수를 일으키지만, 그 당시에는 관광객들이 그리도 사랑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 맛과 가격이었다. 학창 시절에 아마 두어 번 남짓 가보았던 것 같고, 그 마저도 내 의지에 따라서가 아니라 미팅 장소가 애매해서였다. 그 다이너는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심야에도 운영했기에, 늦은 시간까지 공부하는 연극인들에게 그리고 버락 오바마처럼 로스쿨을 다니는 학생들이 안 가볼래야 안 가볼 수가 없는 곳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 다이너가 그토록 맛있었다면 왜 버락 오바마자 뉴욕에 올 때마다 그곳을 들리지 않았겠는가.


오렌스 커피.jpeg

아마 오렌스 커피 앞의 입간판으로 기억한다.

'커피가 없으면 어떻다고?' '디프레소.' (우울증을 뜻하는 영어 단어 depression과 에스프레소를 합친 언어유희)


다시 오렌스 커피 예찬으로 돌아가서, 오렌스 커피는 체인점이지만 별다방과 같은 체인보다 커피가 훨씬 맛있었다. 나는 흔히들 일컫는 ‘얼죽아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파였는데, 오렌스 커피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지금 생각해도 내가 마셔본 아이스 아메리카노 중에 손에 꼽힐 정도로 내 입맛에 맞았다. 사실 커피를 많이 마신다 뿐이지, 커피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는 없다. 다만 오렌스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내가 맛있다고 생각하는 커피의 기준점이 되었다. 물론 팔이 안으로 굽은 것일 수도 있고. 그대의 입맛에도 맞을 것이라는 약속은 하지 않겠다. 뿐만인가, 오렌스의 오트 밀크를 넣은 플랫 화이트도 감칠맛 나고 고소하였다. 나는 우유 특유의 비릿함을 좋아하지 않아서 오트 밀크를 넣은 것이 아니면 커피는 무조건 블랙으로 마시는데, 2010년대 중반에만 해도 오렌스 커피처럼 오트 밀크를 넣은 커피를 취급하는 커피점이 뉴욕에서도 아주 흔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은 좌석이 매우 협소하다는 점이었다. 창가에 세 명 정도가 앉을 수 있을 뿐, 다른 테이블은 없었다. 따라서 미팅에는 매우 부적절한 카페였고, 순전히 커피를 위한 공간이었다. 그러니 길 건너편의 별다방과 달리 더더욱 커피의 맛으로 승부를 볼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또, 오렌스 커피의 글루텐 프리 솔티드 피넛 버터 쿠키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인생' 쿠키라 부르는 쿠키다. 사람마다 쿠키 질감에 대한 취향이 다를 텐데, 오렌스의 솔티드 피넛 버터 쿠키는 쫀득한 편에 속했다. 여담이지만 내 남편은 쿠키라 함은 무조건 바삭바삭해야 하며, 쿠키가 얼마나 맛있나 측정하는 그 척도 역시 바삭함이라고 생각한다. 부부 사이가 콩 한 알도 반쪽으로 나눠 먹어야 하는 사이인지는 모르겠지만, 남편이 나와 쿠키를 절대 나눠 먹을 수 없는 운명인 것은 확실하다. 다만 식당이나 카페에서 간혹 서비스로 받게 되는 쿠키는 질감에 따라서 당첨자가 갈린다 하겠다. 오렌스에서 이 쿠키를 서비스로 받아본 적이 없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무조건 남편의 몫까지 내 차지가 될 테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이 쿠키는 마치 아이스크림 스쿱으로 퍼낸 듯한 봉긋한 형태였다. 그 위에 굵은소금이 몇 알 올라가 있었다. 맛은 ‘단짠단짠'에서 온다고 하지 않는가. 설탕의 달콤함, 피넛 버터의 고소함, 그리고 굵은소금의 짭조름함. 거기다 오렌스 커피의 아이스 아메리카노 혹은 플랫 화이트라면 나는 졸업 작품이나 논문 쓰기의 고단함을 단박에 잊을 수 있었다. 세상 그 어느 것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맛. 내 졸업 작품과 논문도 마법같이 술술 풀릴 것 같은 맛. 당은 이렇게 인간성을 개선한다. 그런데 내 기억이 맞다면 오렌스 커피에서 직접 구워서 파는 쿠키는 아니었던 것 같다. 언제 다시 뉴욕에 가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다음에 뉴욕에 가게 되면 꼭 오렌스 커피에서 추억의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솔티드 피넛 버터 쿠키를 맛보고 싶다. 그때까지 부디 계속 팔아주길.


첫 문단에서 다뤘던 팁 이야기로 돌아가서, 오렌스 특유의 매력 포인트 중 하나는 팁 용기 (tip jar)였다. 상표가 제거된 통조림 캔처럼 생긴 팁 용기가 매일같이 두 개 놓여 있었다. 매일마다 팁 용기에 붙여진 포스트잇이 바뀌었다. 하나는 ‘개’ 다른 하나는 ‘고양이.’ 하나는 ‘로미오와 줄리엣’ 다른 하나는 ‘맥베스.’ ‘스타 워즈'와 ‘스타 트랙.’ 이처럼 모두가 확실한 선호도를 가질 수밖에 없는 두 가지 옵션을 줌으로써 고객에게 팁을 아니 줄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오렌스로 향하고 있노라면 오늘은 내가 어느 팀을 금전적을 응원해주게 될지 궁금했다. 굳이 카페인 보충 수혈이 필요하지 않더라도 도서관에서 엉덩이를 붙이고 있기 힘든 순간이 찾아오면 몇 블록을 걸어 오렌스 커피를 향해 마실을 다녀왔다. 당연히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 수는 없는 법. 간 김에 커피를 한 잔 주문하고 내가 응원할 팀을 선택하여 팁을 냈다. 그러고 나면 기분도 좋아지고, 능률도 오르고. 도랑 치고 가재도 잡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바리스타님 좋고 나도 좋고. 이러니 별다방이나 다른 대형 프랜차이즈에서는 열리지 않던 나의 궁색한 지갑이 오렌스에서는 술술 열렸다. 오렌스는 내 마음의 문에 대한 ‘열려라 참깨'를 뻔히 알고 있었다.


매일까지는 아니어도, 하루 걸러 정도는 오렌스 커피에서 커피를 사 마셨다. 내 대학원 시절의 등대와도 같은 공간이었다. 단순히 카페인을 수혈해주는 공간이 아니었다. 해가 뜨나, 비가 오나 오렌스는 그 자리에 있었다. 한여름의 태양이 맨해튼의 콘크리트를 달궈 체감 40도가 넘는 날에도, 폭설로 스노우 부츠를 신지 않고서는 집 밖을 나설 수 없는 날에도. 하루에 리허설이 여덟 시간 이상 잡혀서 머리가 지끈한 날에도. 오래간만에 과제나 리허설이 적어서 여유로운 주말에도. 오렌스는 우리 동네를 빛이 아니라 카페인과 당으로 비춰주었다. 내게 항상성을 준 감사한 곳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일하던 바리스타들과 통성명을 하고 친근하게 대화를 하지 못한 것은 후회한다. 지금의 나라면 분명 바리스타들과 통성명하고 간단히 안부 인사를 주고받으며 때로는 시시껄렁한 농담도 나눴을 테다. 그때의 나는 시간적, 심적 여유가 없었다는 핑계 아닌 핑계를 대본다. 이 글이 그들에게 가 닿지 않겠지만, 이는 내가 무사히 대학원 생활을 살아남게 해 준 이들에게 감사와 용서를 비는 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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