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장 앞의 능소화와 감나무
택시의 색도 그렇지만 서울의 색을 꼽아보라면 나는 주황을 떠올릴 수 밖에 없다. 어째 내가 서울을 떠난 이후부터 일을 목적으로 서울을 한두 달간 방문하게 되면 어김없이 가을이었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날짜상으로는 분명 금방 초가을일 것 같아서 선선한 날씨에 대비하여 옷을 싸가면, 꼭 늦여름이어서 당황하곤 했다. 그래도 주거지가 홍콩이었을 때는 서울의 늦여름이 아무리 덥고 습하다 한들 홍콩만 하지 않았으니 참을만했다. 그래도 동시에 시원한 가을바람은 언제 오나 기다리게 되었다. 해외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휴대용 미니 선풍기 같은 ‘신문물'을 몰라서 손바닥을 부채처럼 부채질하며 일터로 향했다. 더위에 얼굴을 붉히며 공연장 근처 지하철역 출구 계단을 오르면, 나처럼 붉게 물든 능소화가 담벼락에서 나를 내려다보며 따스히 맞이해주었다. 화장품을 좋아하는 분들은 금방 알아들을 것 같은데, 웜톤에게 찰떡인 코랄빛의 정석이라는 모 브랜드의 car car 틴트가 떠오르는 색이었다. 다소 현란해 보여 내가 좋아하는 색은 아니었다. 하지만 발그레하게 나를 맞이해주고 있는 얼굴이니 어찌 예뻐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와 눈을 마주치기가 무섭게 금방 져버리는 다른 꽃들과 달리, 능소화는 개화기 동안 피고 지기를 반복하면서 매일 담벼락을 지나가는 나로 하여금 능소화는 지지 않는다는 착각을 자아냈다. 공연장으로 출근하는 내내 내 하루의 시작을 밝혀주었다. 언제 보아도 명랑하게 인사해주는 일터의 동료가 된 셈이다.
어느 일이나 그렇듯, 힘든 날도 있었다. 작정하고 내 가슴팍에 커다란 바위를 콱 던지는 듯한 콜라보레이터도 있었다. 매일 일터에서 얼굴을 보는 것이 고역이었고, 내가 정말 공동 작업을 업으로 삼는 것이 맞나 하는 의문에 휩싸여 출근길 발걸음이 무거웠다. 그런 날에도 능소화의 주황이 나를 반겨주었다.
정말 힘든 날엔 공연장 분수대 앞에 앉아서 누룽지를 와그작와그작 씹어먹었다. 태생적으로 치아가 약해서 칫솔도 항상 미세모로 고르고, 치아를 연하디 연한 진주처럼 다루라는 치과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칫솔질도 항상 신경 쓰면서 최대한 손에 힘을 빼고 하는 편이다. 하지만 치아 건강보다는 정신 건강을 택해야만 하는 날도 있었다. 그렇게 분수대 앞에서 누룽지를 거칠게 씹어 먹는 것만큼 스트레스 풀이로 좋은 것이 없었다. 이렇게 비기를 다 풀었으니, 만약 내년이라도 공연장으로 돌아가서 일하면 나는 누룽지 씹어 먹기 대신 다른 스트레스 풀이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다.
한참 누룽지를 먹다가 위를 올려다보면 초록빛의 아직 설익은 감이 보였다. 감나무 이파리와 완벽하게 같은 색으로 위장을 하고 있어서 처음에는 내 옆의 나무가 감나무인 줄도 몰랐다. 자세히 들여다 보니, 드문드문 주황빛이 보일랑 말랑하는 감도 있었다. 아직 제 몫을 다 하지 못한 올리브 빛깔의 감을 보며 저 감들이 주황이 될 때까지만 참으면 된다며 나 자신을 다독였다.
하지만 나는 역마살이라는 석류알을 한 알 집어삼킨 페르세포네이니, 감이 얼른 주황이 되고 작업이 끝났으면 하는 마음과, 하루라도 더 가족과 친구들과 서울에 함께 있고 싶어서 감이 영영 연두이길 바라는 마음이 공존했다. 줄다리기처럼 팽팽하게 오가는 내 마음을 아랑곳하지 않고, 감은 기어이 주황이 되었다.
공연이 시작할, 그러니까 내 일이 일단락될 무렵이면 능소화고 감이고 할 것 없이 하강했다. 위가 아니라 아래가 주황이 되었다. 조선 시대 양반들은 능소화가 한 잎, 한 잎 지저분하게 지지 않고 지조 있게 통째로 툭, 떨어져 좋아했다던데 진정 능소화는 온전히, 단호하게 땅으로 내려앉았다. 그 주황을 보지 못하고 짓밟고 가는 이들도 있었다. 주황이 짓밟히는 것을 보고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일터로 가는 나도 있었다. 그래도 누군가가 그 주황을 보아준 것으로 꽃에게 자그마한 위안이 되길 바라면서.
분수대 앞의 감도 땅과 볼을 맞대고 있었다. 거, 뭐가 좋다고 둘이 그러고 있는지. 사람들은 떨어진 주황을 모른 채 할지 몰라도, 주변의 까치들은 그 좋은 먹잇감을 놓칠 새라 인간들이 가까이하지 않는 틈을 타고 주황의 달콤함을 맛보고 있었다. 사실 까치처럼 인간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는 생명체들만 그 주황을 탐내는 것은 아니었다. 달콤하니 당연히 파리 같은 곤충도 꼬였다. 그러니 공연장의 환경 미화를 담당하고 있는 분들은 대지에 주황 물감이 톡톡 떨어질세라, 바로바로 감을 치우시곤 했다. 어떤 작품이든 별로라며 진절머리를 치는 관객도 있었고 그래도 자세히 보면 사랑스러운 구석이 있다며 예뻐해 주는 관객도 있었다. 누군가에겐 잘 익은 감이었고, 누군가에겐 한 입만 맛보면 될 땡감이었다. 그건 작업자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두고두고 어여삐 여기게 될 작업도 있었고, 얼른 기억의 서랍 한 구석에 밀봉해서 정리해두고 싶은 작품도 있었다. 어찌 되었든 열매를 주황으로 맺지 못한 적은 없었다. 분수대 앞의 감나무가 매해 주황을 맺듯, 모든 작품을 무대 위에 올릴 때까지 함께했다.
그리고 나면 곧 짐을 정리해서 내가 거주 중인 국가로 떠나야 했다. 한 번 무대 위에 올라가고 나면 언제 그 자리에 있었냐는 듯 휘발되어 버리는 공연처럼, 공연이 올라가고 나면 나도 그 자리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떠나게 되었다. 공연 끝날 무렵이 후덥지근한 여름이라면 어떤 기분일까 모르겠다. 그래도 온갖 감상에 잠기게 될까? 얼른 에어콘이 켜져 있는 지하철 열차 안에 도달하고 싶어서 별 생각 없이 종종 걸음으로 귀가길을 향할 수 있지 않을까? 아직 한번도 한여름에 공연을 마쳐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공연이 끝나면 언제나 가을의 한가운데였다. 살갗을 에는 가을바람이 내 마음속 구멍 하나를 기필코 찾아내어 휙 하고 불어 들어오곤 했다. 한 번도 공연이 끝나고 운 적은 없지만, 작업이 끝나고 나면 언제나 울고 싶었다. 첫 공연이 끝나고 사람들과의 인사가 끝나야 마지막 퇴근을 하게 되니 퇴근 시간이 꽤나 늦었다. 차가 끊기기 전에 집에 가야 한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느려졌다.
올해엔 가을에 공연 작업을 하러 한국에 방문하지 않았다. 이번 가을엔 주황을 보지 못했다. 그래도 어디에서든 바깥공기가 서늘해질 무렵에는 내 가슴이 주황으로 물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