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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IN Mar 16. 2023

TMI가 무섭나요?

그게 그렇게 나쁩니까?



이미 오래된 용어지만 오늘은 이 'TMI'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봤다. 


TMI

'너무 과한 정보(Too Much Information)'의 첫 글자만 딴 줄임말로, 일반적으로 달갑지 않은 정보,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을 과하게 듣게 되는 경우에 사용된다.


우선, [네이버 지식 백과]에서 'TMI'를 검색하면


의도치 않게 타인의 정보를 너무 많이 알게 되었거나 사소한 것까지 알게 되는 경우 사용하는 'Too Much Information(너무 과한 정보)'의 줄임말이다.

TMI는 보통 자신이 전혀 관심 없는 내용이거나, 달갑지 않은 정보,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경우 사용한다. 예컨대 누군가가 자신의 화장실 습관에 대한 얘기를 구구절절 늘어놓을 때, 그만하라는 의미에서 'TMI'라고 말하는 것이다.


라고 되어있다.


실제로 현대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도 너무 많은 정보에 노출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미디어 매체의 엄청난 확장과 발전에 기인한 것인데 가장 아날로그적인 tv로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현재 tv 채널의 수는 셀 수가 없다. 각종 케이블 방송과 종편 채널, 거기다 넷플릭스는 기본이요, 티빙, 웨이브, 디즈니, 애플 등 전 세계에서 만들어지는 프로그램을 원하는 때에 골라 볼 수 있는 수준이니 더 말해 무엇하겠나. 

라떼는... 이라고 하겠지만 나는 sbs도 나오지 않던 유년기를 보냈다. sbs가 개국한 이후에도 초창기에는 오직 서울과 수도권으로만 송출되었기에 나는 MBC와 KBS1, KBS2 채널만 있는 줄 알고 그것만 보고 자랐다. 뭐 간간히 EBS도 봤을라나. 아무튼 그 서너 개의 채널과 그 방송국에서 송출하는 라디오만이 내 시각적, 청각적 즐거움의 원천이었고 정보의 창구였다. 그걸 보고 자라면서 다큐멘터리 PD를 꿈꿨고 운 좋게 진짜 PD가 되어 그 방송국들에 송출되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이야기가 약간 TMI로 흘러간 것 같지만... 그래서, 그랬는데 지금은 tv 말고도 유튜브에 쏟아지는 채널들과 인스타그램, 지금은 한물갔지만 카카오스토리 또 페북이나 트위터, 그 외에도 넘치는 인터넷 카페와 커뮤니티들...

거기다 신문이나 잡지는 차치하더라도 여러 작가들의 신간과 유행하는 음악, 신작 영화, 신상품, 리미티드 에디션, MZ용어, MZ문화, 연예계 이슈, 정치적 이슈... 놓치면 시대에 도태될 거 같고, 따라가자니 넘치는 정보의 속도가 버겁고, 정말 이제 그만!!! 이라고 외치고 싶을 때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피로하다. 피로해.

생산은 또 다른 생산을 낳고 재생산은 또 다른 파생을 낳고... 나 이만큼 알면 이제 된 거 같은데 더 모르고 싶은데 알아야 할 것들은 하루 자고 나면 두 개씩 생겨난다. 젠장. 


TMI설명충, 안물안궁, 투머치토커 같은 새로운 말들을 순풍순풍 만들어내었다. 이런 말들은 일상에서 그대로 적용되어 누가 조금만 친절한 설명을 덧붙이고자 하면 "아. 그거 TMI야""안물안궁~" 하고 뚝 잘라 버리게 되었고 상대방은 그것을 민망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시대에 살고 있다 보니, 누구나 느끼는 피로감이 있고 그렇다는 것에 대다수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한다.

이런 공감은 내 얘기를 할 때도 눈치를 보게 되는 현상을 낳는데,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이 TMI 아닐까?', '이런 말하면 상대방이 싫어하지 않을까?', '이런 말 해도 되나?', '안 궁금해할 거 같은데...'

이것은 다시 '아... 민폐 싫어', '피해 주기 싫어...'가 되었다가 어쩔 땐 '이런 말하면 그것이 나의 약점이 되진 않을까...', '에이... 그래, 뭘 그런 것까지 얘기해.' 같은 닫힌 마음으로 변하여 결국 입까지 닫게 만든다. 그것이 직장이나 사회적 관계라면 더욱.



찰떡같이 들어맞는 경우는 아니지만 그래도 뭐 대략 비슷한 나의 경험을 이야기해 보자면, 나는 가끔 방어적이라거나 자기 보호가 강하다는 얘기를 듣는데 대체로 그건 상대방의 질문에 대답을 반토막만 할 때 돌아오는 반응이다. 그럼 어떨 때 반토막만 하느냐. 그건 또 두 가지로 나눌 수가 있는데 첫 째, 상대의 질문에 대한 답을 하자면... 내가 여차저차한 이유를 쭉 설명해야만 이해가 되는 구간이 있는데, 그러자니 그건 너무 TMI 아닌가? 싶은 거다. 설명충은 되기 싫은데 설명은 해야 납득이 될 것 같고, 그런데 그걸 설명할 시간이나 장소 혹은 정서적인 제약은 있고 그럼 그 TMI를 그 시간에 그곳에서 남발하는 게 너무 무의미하다고 느껴지는 거다. 그렇다고 거짓말로 둘러대긴 싫으니 그냥 뭉뚱그려서 대답을 하는데 그럴 때 보통 함축적이고 암시적인 용어를 사용한다. 나중에 다시 궁금해하고 설명할 여건이 되면 그때 다시 얘기해 줘야지. 하고서. 그런데 그럴 때에 보통은 공통의 전제가 없는 경우가 많으니 나의 언어를 이해하거나 내포한 뜻을 수용하는 이는 극히 드물다. 반응은 대체로 응? 혼란하다...? 이다. 그래서 직접 보지 않고 글자로 혹은 잘 알지 못하는 사이에서 나눈 대화는 종종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그 오해를 해소할 기회가 매번 있지는 않다는 게 문제다. 또르르... 

(TMI : 가끔 아주 가까운 이 조차도 내 말의 의도를 혼자 해석해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뭐... 나의 또 다른 문제라 해야겠지. 훌쩍)


대답을 반토막만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약간 다른 의미일 순 있지만 아주 다르지도 않은 것이 바로 약점이라는 관점이다. 내 정보, 내 생각을 순수하게 오픈할 만큼 과연 상대방이 믿을 만한 사람인가? 나와 계속 관계를 유지할 사람인가? 혹은 지금의 이 말이 나중에 나에게 화살로 돌아오진 않을까? 라는 의문 때문이다. 결과론적으로 한 두 번의 관계로 끝이 난 인연이면 그때 뿌려댄 나의 TMI들이 너무 신경 쓰인다는 거다. 뭐 상대방은 관심도 없겠지만 어딘가에 나의 배설물을 흘리고 온 기분이랄까... 그리고 또 실제로 너무 궁금해해서 말하기 싫은 걸 다 말해줬더니 나중에 그게 그 사람의 무기가 된 적도 있었다. 그 이후 나를 오픈하는 것이 더 조심스러워졌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이렇게 나는 TMI를 남발하지 않으려는 나름의 노력으로 오히려 피해자가 되고 있다. 아니 스스로를 가두고 있다고나 해야 할까.



사실, 영미권에서 사용되던 'TMI'는 원래 어떤 사람이 매우 부정적이고 역겹거나, 더럽고 괴상한 말(과한 성적 농담 등)을 했을 때 보이는 반응으로 "왜 그딴 역겨운 얘길 하니? 난 그딴 거 듣고 싶지 않았다" "네가 말한 걸 들으니 기분이 역겹고, 불쾌하다"라는 표현이다.

예를 들어 친구가 같이 밥을 먹다가 화장실에 가는 경우 "나 잠깐 화장실 다녀올게" 정도로 얘기해도 될 걸 "나 똥 큰 거 싸고 올게."라고 한다면 그때, "그건 TMI야"라고 핀잔을 주는 정도이다. 정보의 양의 문제가 아니라 불쾌한 세부 정보를 쓸데없이 들려줄 때 사용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지금의 영미권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고.



어찌 됐든 콩글리쉬도 한국말이니까 한국에서 통용되는 의미의 TMI로 이야기를 이어가 보자면, 여기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사실 인생의 많은 부분에서 인간이 인간에게 감동을 느끼는 지점은 바로 그 약점, 이라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약점을 스스로 낱낱이 발가벗겼을 때 그 감동은 배가 된다. 어쩌면 그것은 아무도 묻지 않은 TMI일 수 있지만 아무도 그것을 쓸데없는 TMI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sbs도 없던 어린 시절부터 보아왔던 수많은 다큐멘터리나 그 이후 KBS 인간극장을 보면서 꼭 다큐멘터리 PD가 되고 싶다고 소망했던데는 그런 이유가 컸다. 인간의 본질에 가장 근접했을 때 느껴지는 울림이 예술이나 문화 혹은 물질이나 사상보다 앞섰기 때문이다. 희로애락을 겪은 인간의 아름다움은 여타의 것들이 주는 위안과 위로 그 이상이었다.


실제로 현재의 TV방송은 포맷이 확연히 달라졌다. 예전의 방송은 정극이든 예능이든 모든 것이 정제된 상태로 녹화되고 편집되고 방영되는 것이 정석이었다. 제작진이든 출연자든 주변인이든 오디오가 조금이라도 물리면 모조리 다시 촬영해야 했고, 카메라 앵글이나 색감이 조금만 무너져도 쓸 수 없는 화면으로 폐기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제작진이 프로그램 안에 자연스레 등장하고 심지어 말도 하며 출연자와 같이 화면에 나오기도 한다. 차고 넘치는 관찰 예능은 우리가 그 배우나 가수의 예쁘기만 한 모습이 아니라 그들의 실제 모습, 일상의 모습, 인간 본연의 모습을 궁금해하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TV속 그들은 자고 일어나 머리에 까치집을 짓고 먹는 것에 집착한다. 하루 종일 멍을 때리거나 오토바이를 타다 하릴없이 넘어지기도 한다. 자격증 시험에서 여러 번 낙방하기도 하고 만날 사람이 없어 쓸쓸해하기도 한다. (물론 관찰 예능이 백 프로 실제라고는 할 수 없지만) 또 정제된 모습의 정석인 패션모델은 어떠한가. 우리는 그들의 백스테이지가 더 궁금하다. 그들의 한 번의 성공보다 좌절과 도전과 노력을 지독히 사랑하고 존경한다. 인기 아이돌 그룹의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은 화면 뒤에 숨겨진 비하인드 짤로 더 강한 팬덤을 만들기도 한다. 연예인이 아니어도 무수한 유명인들을 더 유명하고 사랑받게 만드는 건 바로 그들의 약점, 역경, 그리고 나와 다르지 않은 인간 그대로의 모습이다.


작년 연말에 방송인 전현무MBC방송 연예대상에서 대상을 받으면서 그가 남긴 말과 눈물은 많은 이에게 울림을 주었다. 그는 어릴 적 외동으로 자란 외로움과 방송인이 된 이유를 말했다. 그때의 초심을 얘기하며 그 유명한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을 이야기하였다. 중간중간 말이 끊기고 울음이 목을 뚫고 나왔다. 그 눈물 사이에는 지난 시절의 그의 역사와 좌절이 있을 것이다. 최정상의 MC였지만 그간 그는 많은 실수와 논란과 구설이 있었다. 그 고난은 굳이 일일이 말하지 않겠다. 오랜 결점을 극복하고 시청자들에게 다시 사랑을 받은 데에는 예능에서 보여준 날 것 그대로의 모습, 유행에 따라가고는 싶은데 매번 뒤처지는 안쓰럽고 측은한 노총각 아저씨의 모습이 있었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통했을 때 울컥하는 위안과 위로. 그는 눈물을 닦았지만 시청자는 눈물을 흘렸다. 


또 한 예로 미국에 래퍼 NF라는 사람이 있다. 91 생인 그를 아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그를 제2의 에미넴, 혹은 에미넴의 후계자쯤으로 부른다. 랩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모든 가사는 그가 쓰는 말들로 되어있는데 그것이 또 랩이다 보니 모든 가사가 직설적이다. 직설적인데 아주 솔직하기까지 하다. 그의 어린 시절 외로움부터 부모님과의 단절, 아들과의 유대, 나약하고 병들었던 마음, 꿈꾸었던 미래, 신념 하는 가치관까지... 욕 한마디 없이 강하게 뱉어내는 그의 랩은 흡입력이 굉장하다. 비트나 멜로디도 그렇지만 그의 표정이 오롯이 들어간 뮤직 비디오 또한 한 편의 영화이다. 그의 음악은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반듯이 눈으로도 보아야 하는 예술이라고 생각하는데 대중이 가장 열광하는 부분은 바로 그의 인생과 약점을 과감하게 드러낸 가사이다. 어찌 보면 그것도 굉장한 TMI인 것이다.



우리는 나를 조금 더 보여도 된다.

우리는 너를 조금 더 물어도 된다.

우리는 서로를 조금 더 알아도 된다.

우리는 서로가 조금 더 솔직해도 된다. 


TMI면 뭐 어떠냐. 그게 뭐 대수냐.

TMI가 그렇게 무서운가? 그게 그렇게 나쁜 건가?

좀 더 알면 좀 더 보인다. 좀 더 보이면 좀 더 이해하게 된다. 좀 더 이해하면 더 많은 것들에 관대해질 수 있다. 그러니 TMI=민폐라는 공식으로 스스로를 가두지 말고, 또 그 공식으로 타인에게 올가미를 치지도 말고 너도 나도 모두 나와도 된다. 벗어도 된다. 그럼 한결 가볍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


살면서 모든 말들에 의미를 담고 살건가? 그게 더 피곤하지 않은가?

가벼이 말하고 가벼이 넘길 수 있는 이야기들로 가벼이 살 수 있는 하루, 그게 더 투명하지 않은가?

사소한 이야기들을 눈치 보지 않으면서 할 수 있을 때, 그 이야기들을 눈치 주지 않고 들을 수 있을 때.

그때에 우리는 더 가볍고 자유로워질 것이다.



< GRAY_TMI [M/V]_AOMGOFFICIAL >






< 참고 _ 나무위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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