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안부
나는요, 완전히 붕괴되었어요.
입 속의 혀가 곪을 만큼 침묵했다. 잠을 못 잔 지 한참이 되었고 잠들지 못하는 침묵의 시간을 버티느라 밥 대신 취하지도 않는 술을 마셨다. 그러다 술이 차면 줄줄 그것은 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흘러내린 물이 흥건한 베개를 베고 그저 눈을 감았다. 밤도 낮도 없는 시간들이었다. 밤도 낮도 나에게는 그저 암흑이었으므로.
감은 눈은 염증이 되고 염증은 다시 내 온몸을 공격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술 마저 마실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젠장.
어떻게 견딜 수가 있을까. 이 긴 침묵의 시간을. 이 긴 어둠의 시간을. 이 긴 허기진 시간을.
의료진 다섯 명이 붙들고 내 눈동자에 주사를 놓는 것보다 무서운 건 이대로 두면 시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공포는 더한 공포로 혹은, 절박함과 진실로 극복되었다.
하지만 그 긴 침묵과 어둠과 허기의 시간들은 무엇으로 이길 수 있을까.
엉망으로 헤집어진 영혼은 무엇으로 치유할 수 있을까.
잘 잤어요? 일찍 잤어요?
오늘은 뭐 할 거예요?
잘 자지 못했어도 잘 잤다고 대답했다.
밤을 꼴딱 새웠어도 적당히 잤다고 했다.
할 일이 없었어도 할 일을 만들어 답을 했다. 도서관에 다녀오려구요.
밥은 먹었어요? 뭐 먹었어요?
나는 제육볶음 먹었어요.
주말에는 대체로 뭐해요?
어디 카페 자주 가요?
뭐 좋아해요?
어느 날은 나의 밥을 궁금해하고 어느 날은 나의 주말을, 또 어느 날은 나의 취향을 궁금해했다.
뭐 하냐고 묻고, 어디냐고 물었다. 뭐를 했느냐고도 묻고, 어디로 가느냐고도 물었다.
언제 들어가는지, 언제 자는지, 언제 먹는지. 누구와 있는지, 무엇을 읽는지,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궁금해하며 나의 사람과 이상과 감정을 물었다.
그러다 나는 오늘 늦게 일어났다고 했고 오후에는 차를 고치러 갈 거라고 했다.
지금은 세차를 하러 왔다고 했고 끝나면 미용실에서 머리를 할까 한다고 했다.
요리하는 걸 좋아한다고 했고 그림을 그린다고도 했다.
머리를 말고 있는 모습이나 출장길 서울역 안의 풍경, 또 직접 만든 요리나 그린 그림을 보여주기도 했다.
밥을 너무 안 먹는 거 아니에요?
커피를 대체 얼마나 마시는 거야.
술 마시지 말아요. 아무 도움이 안돼.
밥 안 먹어요? 밥. 쌀이요.
흰 밥, 국, 나물, 반찬 그런 거.
오늘은 밥 먹어요. 밥. 꼭. 약속해.
그 사람이 전하는 안부와 관심과 염려와 당부는 천천히 나를 일으켰다. 그 사람이 들려주는 별거 없는 일상과 생각도 나를 움직이게 했다. 그의 질문이 곧 나의 질문이 되었다.
사라졌던 나의 오전은 그 사람의 인사가 건네질 즈음이면 이미 깨어 시작되고 있었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전하고 나면 무언가를, 아니 무엇이든 해야만 했다. 책을 읽거나 청소를 하거나 카페에 가거나 쇼핑을 하거나 공부를 하거나 사람을 만나거나 그리고... 글을 쓰거나...
아침밥은 여전히 먹을 수 없었지만 늦은 점심이라도 먹기 위해 밥을 데웠고 술을 참고 차를 끓이는 날들이 늘어났다. 겨우 잠에 들던 시간은 아침 여섯 시에서 새벽 네 시로, 네 시에서 다시 두 시 그리고 한 시로... 차츰 정상의 궤도로 들어오고 있었다.
엄마... 잘 지내? 엄마 천국 갔어?
천국은 어때? 여기보단 나아?
엄마 나는... 엄마, 나는...
엄마, 나는 잘 못 지내.
아무도 내 안부를 묻지 않아.
너를 궁금해하고, 나를 보여주고 싶은 시간들은 결국,
세상에서 멀어지고 있는 당신을 누군가 세상 쪽으로 살짝 밀어주는 순간 일 수 있다.
그건 정말이지 신이 당신 곁에 조용히... 머물다 가는 시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