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사한 생각 no.5]
글 쓰는 마음은 오락가락한다.
솔직하기로 결심했다가도 어느새 머릿속에서 몇 문장씩 슬쩍 건너뛴다.
하지만 글을 다시 읽어보면 어쨌거나 숨긴 티가 난다.
뭔가 중요한 느낌을 말로 정확히 표현하진 못하더라도
그 느낌을 소중하게 여기고 말을 아끼는 태도는 필요하다.
그리고 내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면 안 된다.
내가 딱 질색했던 종류의 대화를 똑같이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답도 없는 하소연과 되풀이되는 이야기.
근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 얘기를 꺼낸 것 같기도 하다.
역시 함부로 뭔가를 질색하는 건 위험하다.
'가치 있는 경험을 함께할 배우자와의 만남을 잘 설계해야 한다'는 말에서 ‘설계’라는 단어가 남았다.
'설계하다.'의 사전 뜻은 계획하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설계와 계획 사이에는 큰 간극이 느껴진다.
왠지 계획은 미래지향적이고 화창하다면 설계는 작위적이고 음흉한 기분이 든다.
만남을 설계한다는 건 마치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적당한 계기를 만드는 건 필요하다.
우리는 로맨스 소설 작가가 만들어낸 캐릭터가 아니니까. 현실에서는 작가와 배우를 겸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운명론을 지지하는 사람으로서는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신은 인간이 기대하는 것만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욕망하고 소망하는 순간, 그것을 거두어가는 듯하다.
하지만 신을 원망할 생각은 없다.
대신 예상치 못한 기쁨과 슬픔을 주기 때문이다.
만약 신이 좋은 것만을 주거나 인간이 예상할 수 있는 것만을 주었다면
우리는 신을 미심쩍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신은 인간이 생각할 수 없는 모든 것을 총칭하는 존재다.
다른 말로 하면, 생각하기 귀찮아서 우연이나 운명으로 미뤄두고 싶은 것들에 책임을 져주는 존재.
이상, 그럴싸하게 괜찮은
근사한 생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