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용성 Jun 05. 2021

미술가의 자질

최근 독일 내 다른 도시에 사는 지인이 자신의 학교 과제를 위해 인터뷰를 요청했다. 디자인 석사과정 중에 있는 이 분은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들의 예술과 삶을 소개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했다. 나는 먼저 기본적인 인터뷰 질문들을 보내주면 거기에 답을 달고, 이를 토대로 살을 붙여 화상이나 전화통화로 추가로 인터뷰를 진행하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나와 몇 차례 문자와 두세 번의 이메일을 주고받은 후 나에게 이런 피드백이 왔다. 왜 이렇게 형식적이냐고. 나는 그분의 피드백을 곰곰이 생각했고 거기서 일종의 편견을 감지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직업에 대한 편견이 있다. 심지어 특정 직업군에 대해서는 기대감을 내비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나는 이런 말을 종종 쓴다. "저 공무원은 왜 이렇게 불친절해." 그러나 모든 공무원이 친절할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가끔은 친절하기만 하고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이들에 대해 불만을 가지기도 하니까. 예술가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조금 더 전형적이다. 어떤 사람은 반 고흐와 같은 삶을 상상한다. 예술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유형. 어떤 사람은 앤디 워홀을 떠올리기도 한다. 작품으로 유명인이 되어 연예인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 그러나 내 주변의 예술가들 중 작품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의 삶은 생각보다 일반 회사원이나 사업가, 혹은 활동가에 가깝다. 


(지금은 교수님이 된) 한 선생님은 그런 환상 속에 젖어 있던 미대 2학년 학생들에게 말해주었다. "졸업하면 자유롭게 그림 그리고 삶을 즐기면서 살 수 있을 것 같지요? 그런데 생각보다 그렇지 않아요. 어쩌다 전시 기회가 생기면 정말 기계처럼 작품을 끝내야 해요." 한국만 그런 것은 아니다. 석사를 지도해준 독일 선생님도 자신의 이전 학생 중 그림을 잘 파는 작가가 된 사람 이야기를 해주었다. "얘는 학교를 다닐 때 이미 갤러리 전속 작가가 되었어. 그런데 졸업하고 몇 년 지난 후 만났더니 많이 후회하고 있더라. 회사원처럼 갤러리가 원하는 그림만 그리고 있다고." 


어쩌면 대중의 눈에 비치는 미술작가의 모습은 전시장이나 잡지 사진, 혹은 온라인 매체에서 보이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잠시 반짝이는 순간으로 그 삶 전체를 바라보게 되는 것일 게다. 그러나 예술가들의 나머지 삶의 모습은 관람객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만약 자신을 관리해주는 갤러리가 없다면 작품을 홍보하고 광고하는 세일즈맨, 세금이나 행정 업무를 담당해야 하는 사무직원의 역할까지 감당해야 한다. 거기에 새로운 작품까지 계속해서 생산해야 하니 어떤 면에서는 생산직 노동자의 모습도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편견만은 아니다. 그나마 제대로 보이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적어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이라는 것. 그러므로 굳이 미술가의 자질을 말하라면, 자신이 좋아해서 시작한 일을 끝까지 좋아할 수 있는 끈기인 것 같다. 학부 때 스튜디오 교수님이 "미술 하려면 정신연령이 10살을 넘어가면 안 돼"라고 하셨던 말씀은 아마도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이전 15화 바보의 유학생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