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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cedie Jan 02. 2017

사랑이란 뭘까


8. 사랑이란 뭘까


   사랑이란 건 뭘까? 존재하긴 하는 걸까. 그것은 현존하긴 하는 건가. 이제 프랑스 철학자들이 그것들이 허상임을 니체로부터 폭로했던 것처럼 본질이나 진리 같은 건 아닐까? 결코 절대 올 수 없고 존재할 수도 없는 것이지만 인류가 절대 손에서 놓지 못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 아닐까? 수없는 드라마와 영화, 소설 속에서 사랑만을 말하고 사랑 또다시 사랑만을 말하는데 대체 그 사랑은 무엇이냐는 말이냐. 사랑은 현존하는 것이냐고 그렇게 묻고 싶다. 사랑이 이렇게 치이도록 많이 소비되고, 생산되는 곳에서 나는 오히려 사랑을 더 찾을 수 없게 돼 버렸다. 

  내가 아닌 타인을 이번엔 사랑하리라 그렇게 마음을 먹었는데, 눈을 감았다 뜨니 그는 "부재하는 이"가 되어 있었다. 이제 나는 사랑을 믿지 못하겠다. 더 이상 사랑하고 싶지도 않고, 사랑이 존재할 거라고 믿고 싶지도 않고 믿어지지도 않는다. 그렇게 사랑은 쉽게 말해지고 흔하게 우리 생활 가운데 넘치는데 왜 진실로 사랑은 이토록 어려운가.

  마치 부조리한 세계의 단편을 엿본 느낌이다. 경험해봐서 잘 아는데도 불과하고. 이토록 쉽게 사랑한다고 하는 두 사람이 타인이 될 수 있다는 것. 아무리 그들이 서로 합일되었다고 느끼는 격양된 그러한 감정에 강하게 휩싸여 있다고 하더라도 두 사람에게는 늘 타인이 될, 이별의 가능성이 늘 그 관계 안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 사랑은 너와 내가 만나는 그냥 그런 인간관계랑 다르다는 것도 난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 이별의 가능성이 실현되면 그렇게 서로가 가깝다고 느꼈던 서로는 어떤 관계보다도 쉽게 무너지고 사라진다. 잘 모르겠다.


  사랑은 왜 상호 주관 이어야 하나. 아니 사랑은 상호 주관인가? 내가 그를 사랑해도 그가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으면 사랑하는 것이 아니게 된다. 그것은 그리움, 미련, 집착이라는 연애라는 과정에서 나쁘다고 여기는 그런 파편이 된다. 전체가 아닌 부분, 완전이 아닌 불완전. 이제 와서 불완전과 부분을 인정하자고 하는 철학의 방향에도 불구하고 사랑에서만은 늘 완전이 아닌 것은 핍박받는다. 사랑받지 못한다. 그것은 치졸한 것, 어서 없애서 치워야 하는 것, 계속 이어지면 안 되는 것. 아무도 추구하지 않는 것... 모든 것이 불완전하고 부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서도 왜 사람들은 사랑에서는 완전을 찾으려고 하는가. 대체 그곳에 무엇을 숨겨 놓아길래? 아니 무엇이 있다고 믿길래.


  레비나스의 타자성은 실로 옳다. 나는 그렇다. 나는 그러니까 상처받고 매를 받고 고문당해도 당신을 사랑할 용기가 없는 사람인 거다. 당신이 언제는 나를 떠날 수 있고,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서도 당신을 사랑하기가 겁이 나는 거다. 무서운 거다. 그런 불완전함을, 불안함을 받아낸다는 것은 결국 내 존재를 흔들어 버리는 것을 나를 무너지게 하는 것을 허용한다는 것이니까. 그건 대체로 쉽게 허락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퐁네프의 연인들" 속 거리의 연인을 사랑했던 거다. 그 다리 위에선 서로가 서로에게 모든 것이 될 수밖에 없는 그런 절대적이고 필연적인 상황이 도래하니까. 하지만 그 다리 밖으로 다른 것이 침투해오면 그 사랑은 쉽게 무너진다. 서로에게 사랑 아닌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아야 사랑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비우고 우리는 사랑할 수 없다. 이 사회에선, 이곳에선.


나는 타인을 사랑하지 못한다. 하지만 사랑하고 싶다. 늘 사랑하고 싶고 사랑하고 싶고 또 사랑하고 싶은데, 나는 타인을 사랑하지 못한다. 언젠가 다시 그 사랑을 할 수 있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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