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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cedie May 01. 2017

"행복하게, 같이"

춘광사설: 구름 사이로 잠깐 비치는 봄 햇살



7. 춘광사설구름 사이로 잠깐 비치는 봄 햇살



  영화는 이구아수 폭포 램프에서 흑백으로, 과거의 회상 장면으로 시작한다. 보영과 아휘가 이구아수 폭포를 찾아 여행을 떠났던 때이다. 그들은 지도를 보고 있지만 제대로 보지 못한다. 자꾸 헤맨다. 보영은 자꾸 짜증이 나고 차는 고장이고 모든 것들이 도와주지를 않는다. 결국 보영과 아휘는 그곳에서 헤어졌다, 그들이 가고자 한 이구아수 폭포를 가지 못한 채. 이구아수 폭포를 가는 건, 사실 그들에게 중대한, 꼭 해야만 하는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그냥 아르헨티나에 살면서 언젠가는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떠나서 여행을 가자고 서로 말했고 그 여행을 가고자 한 곳이 어쩌다 보니 이구아수 폭포였을 뿐이다.-그들에겐 이구아수 폭포 램프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결국 그곳에 같이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 사실은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그들은 너무 늦게 깨달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사는 두 남자 보영과 아휘는 한 때 헤어졌지만, 지금은 같은 방에서 함께 하고 있다. 헤어졌던 연인인 보영은 어느 날 다시 아휘 앞에 나타난다. 다시 시작하자는 보영의 말을 아휘는 끝내 거절할 수 없다. 서로를 그리워해서 다시 그들은 만나지만 그 끝은 좋지 못하다. 보영은 아휘가 지겨워지고, 아휘는 보영이 의심스럽다. 이 위태한 사랑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파국을 맞는다. 보영은 사라지고 아휘는 결국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떠난다. 그들은 엇갈리기만 했고, 결국 만나지 못했다. 아휘가 사랑의 기억이 있는 그곳에서 떠나 왔기에, 이제 보영은 아휘를 찾을 수 없을 것이고 아휘도 보영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건 아휘가 대만에서 장의 흔적을 발견한 것과는 다른 것이다. 장이 어디 있는지 아니까 언제든지 만나러 올 수 있다. 그러나 아휘는 보영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으며 보영이 알고 있던 아휘가 있는 그곳에는 이제 아휘가 없다. 사랑하는 이를 찾아 돌아갈 곳을 아휘도 보영도 잃어버렸다. 아휘가 다시 결국 그 방으로 돌아왔을 때, 그 방에서 보영이 다시 오길 기다렸던 아휘는 이제 없다. 보영은 늘 돌아올 곳이었던 그 방에 자신이 살기 시작한다. 그 방에 돌아올 이를 기다리며. 그러나 그 장소가 아휘에게도 보영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장소가 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이구아수 폭포는 사실 사랑의 이상향과 같은 것이다. 사랑에도 목적지가 있다면, 어떤 이상향이 있다면 그들에게 그건 이구아수 폭포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늘 이구아수 폭포를 가기 위해 계획했었지만 그 여행을 끝내 이루지 못한다. 이구아수 폭포에 가서 눈물을 흘리듯 퍼붓는, 쏟아져 내리는 비를 온몸으로 흠뻑 맞은 것은 아휘 만이다.   


  그들의 사랑을 기억하듯 이구아수 폭포의 모습을 닮은 램프는 그 방에 여전히 있었지만, 그들은 그곳에 같이 가지 못한다. 지도가 있어도 길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처럼 그들은 서로에게 애정은 있었지만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몰랐던 거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 그 반짝이며 부서지는 그 폭포에 이르지 못했다. 그들은 서로를 제대로 듣지 못하고, 보지 못했던 것이다. 매일 서로를 들으면서도, 보면서도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엔딩에 이르며 흘러나오는 "happy together"와 아휘의 표정은 노래의 곡조와 가사와는 다르게도 사무치게 슬퍼 보인다. 그건 결국 사랑하는 이와 “행복하게, 같이” 함께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신은 내가 그리도 사랑했던 유일한 사람이건만 우리는 결국 함께해서 행복해질 수 없었다. 그 사실만으로 이 노래를 슬프게 만든다. 그러나 그 기억들은 아휘에게도 보영에게도 나에게도, 그리고 당신에게도 구름 낀 나날들만의 연속인 삶에 한 줄기 햇살과 같던 그런 것이다. 그 기억들이 서 있는 푸른 하늘 아래는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보영을 잃고 상실을 겪는 아휘에게 장은 녹음기를 건넨다. 나도 누군가에게 우수아이아라는 곳을 말해 준 적이 있었다. 세계의 끝이라고 여겨지던 그곳, 실연을 당한, 상실을 겪은 사람들이 그 상처를 놓아두고 오는 곳이라고 했다. 창이 건네 준 녹음기에 아휘는 아무 말도 담지 못한다. 단지 참아내는 울음만이 그곳에 담겼다. 나는 이 영화를 생각하면 그 장면이 잊히지가 않고, 나에게 지금 세상의 끝의 그 등대가 필요하다. 당신을 마음의 끝으로 내 몰아, 나는 세상 끝을 밝히는 곳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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