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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라야니 Sep 17. 2021

나의 더러워진 신발을 씻겨준 이

세탁명상


일요일 아침 8시 두시간 아사나 수련을 했다.

수련후 도반님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 선생님이 내려주시는 뜨거운 차를 몇 사발쯤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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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도 차의 기운이 올라와 명상하기 딱 좋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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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신차려 보니 집에 돌아온 나는 운동화 세켤레를 뜨거운 물에 담궈 빡빡 문지르며 씻고 있었다. 오래 묵은 때는 쉬이 지워지지 않았다. 세제를 써가며 구석구석 솔을 문질러 정성스레 운동화를 씻는 행위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했다. 씻어도 씻어도 더러운 물은 계속 나왔다. 밑창을 들어내고 운동화 끈을 다 풀고 다시 한번 정성껏 더 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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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화가 깨끗해져갈수록 내 마음도 조금씩 깨끗해져갔다. 부끄러운 마음도 씻겨져 내려갔다. 낡은 운동화는 점점 새것처럼 변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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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적 나의 더러우진 신발을 씻겨준 이는 누구이던가. 인내심과 집중력을 필요로 하지만, 대수롭지 않은 집안일 정도로 치부되는 운동화 세탁.  그리고 그 밖에 수많은 집안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한번도 생색내지 않고 자신을 겸허히 낮추며 나를 높이 떠받들여주던 이는 누구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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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같았으면 그 분은 나의 엄마라고 생각하며 그리움 솟구쳤을 터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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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더러운 신발을 씻어준 이는 바로 당신이다.  한 아이의 어머니인 당신이며, 그 아이의 아버지인 당신이며, 어머니의 딸인 당신이며, 아버지의 아들인 당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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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고 잠재된 분노를 끓어오르게 만든 당신이기도 하고, 나를 끝없이 안아주고 사랑을 주었던 당신이기도 하다. 나를 비난하고 내게 상처를 주었던 당신, 또한 나를 진심으로 존중해주고 내게 박수를 쳐주었던 당신이기도 하다. 나의 귀한 스승이 되어주었던 당신, 동시에 나의 욕받이가 되어 거친 모함 속에 내가 밀쳐버렸던 당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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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노애락의 감정으로만 모든 것을 받아들인 어리석은 나는 왜 당신들을 "신"이 아니라 "타인"으로 여기며 은밀히 저항해왔던가. 왜 세상에 "내 편"은 없을까 이 외로움은 대체 어디서 왔을까 숨죽이며 괴로워해왔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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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를 하고 차를 마시며 나는 더러워진 운동화를 씻듯 마음의 때를 벗겨낸다. 그런 행위를 통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내 앞에 놓여있는 이 모든 상황이, 오롯이 나를 위해 존재함에 대해 무한히 감사한다. 무지한 내게 베풀어진 이 모든 사랑을 어떻게 다시 베풀 수 있을까, 가없이 감사한 느낌 속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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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합니다 #용서해주세요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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