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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신혼록 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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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상욱 Mar 17. 2023

신혼록(神魂錄)

02_ PM 20:25 일요일. 기록 4시간 전(1/3)

 ‘파반느’인지 ‘파브르’인지 자세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항상 우리가 부부 관계를 할 때 흘러나오는 음악으로 르네상스 시대에 유럽에서 유행한 춤곡의 이름이란다. 실질적으로 말하자면 부부 관계가 아니라 임신을 위한 피스톤 운동이었다. 임신 전부터 클래식을 들으며 태교를 하면 똑똑한 아이가 들어선다는 아내의 강박적인 고집의 결과였다. 내 나이가 39살이고 아내는 나와 같은 학번이지만 내가 빠른 생일이라 그녀가 한 살 많다. 어젯밤에 그녀의 유혹에 넘어간 것도 그녀는 올해 40살의 불혹이지만 나는 아직 아니었기 때문인 모양이다. 불혹이라 함은 어떠한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는 것 아닌가. 안 그래도 밤마다 위층에서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발 망치 소리 때문에 분위기도 안 잡히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관계 중에 핸드폰을 보다 들킨 것이 사단이었다. 어차피 다음날이면 산부인과에 가서 시험관 시술을 하기로 했기에 부부 관계라고 부르는 이런 행동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던 터였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말다툼으로 이어졌다. 사실 말다툼이라기보다는 서로에 대한 비방전이라 보면 맞을 것이다. 아니, 맞을 것이 아니라 맞았다. 항상 아내의 선공은 내 좁고 꼬인 속을 후벼 파고들어 왔다. 

 “네가 이러니깐 아이가 생기겠어? 삼신 할매가 네 꼴을 보면 배 속에 있던 아이도 데려가겠다!”

 “생물학적으로 여자가 32세 지나면 배란이 잘 안 돼. 그게 왜 내 탓이야?”

 “지금 탓하는 게 아니잖아! 항상 사랑할 때 시늉만 하니깐 그렇지!”

 아내는 항상 부부 관계를 ‘사랑’이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에게는 전혀 와닿지 않는 표현이었다. 본질적이자 근원적인 질문을 해 본다면 사랑은 어떤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Art of Loving)’이라는 책에서도 그런 말이 나온다. 사랑에는 두 가지 종류의 것이 있는데 하나는 아버지의 사랑이고 두 번째는 어머니의 사랑이란다. 전자는 조건적인 사랑이고 후자는 무조건적인 사랑인데 전자는 미성숙하고 후자는 성숙하다고 했다. 아마도 아내는 내 아버지와 비슷했던 것 같다. 곧바로 나의 반격이 시작됐다. 

 “우리가 ‘사랑’을 한 적은 있어? 그래, 네 말대로 우리가 ‘사랑’을 했다 치자. ‘사랑’을 마치고 나서 뭔가 포옹이나 키스라도 한 적 있어? 있냐고! 항상 관계 끝나면 너 발가벗은 그 상태로 침대 위에서 물구나무서기 하느라 바빴지. 저번 달에는 몸에 힘 풀려서 누워 있는 내 얼굴에 니 킥(knee kick)했잖아! 나 그때 이에 금 간 거 아직도 신경 치료 다녀.”

 이때, 아내가 사색이 된 얼굴로 벌벌 떨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내가 너무 화가 나서 그런가 했는데 숨까지 헐떡대는 걸로 보니 내가 너무 심했나 싶었다. 죄책감에 그녀에게 다가갔다. 

 “… 괜, 괜찮아?”

 이때 아내가 천장 구석 어딘가에 손가락질을 해 댔다. 

 “저… 저기…”

 “… 뭐? 뭐가 또?”

 “귀… 귀신!”

 “너는 항상 진지해지면 그런 식으로… 이제 무섭지도 않다….”

 사실, 약간은 무서웠지만 혹시나 해서 아내가 가리키는 곳을 돌아봤다.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뒤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었으니 말이다. 이때 갑자기 아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오금이 저린다며 문을 열어 놓고는 소변을 보는 것이 아닌가. 나는 걱정이 돼서 화장실 앞으로 갔다. 그런데 아내는 이상한 자세로 소변을 보고 있었다. 알고 보니 편의점에서 잔뜩 사놓은 싸구려 임신테스트기를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거 눈뜨자마자 아침에 첫 오줌으로 해야 잘 된다며!”

 “혹시 알아! 삼신 할매가 불쌍해서 왔다 갔는지도!”

 “삼신 할매… 나는 무슨 홍콩 할매라도 본 줄 알았다.”

 이때 인터폰이 울렸다. 아래층에서 층간 소음 때문에 시끄럽다는 연락이었다. 한 달 전에 이사 온 집주인아줌마의 소행이었다. 50대가 가까운 돌싱으로 고3인 딸과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정보이다. 안 그래도 밤마다 고양이 우는 소리 때문에 자기 딸이 공부에 집중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한 번 부딪힌 적이 있었다. 나는 갑자기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다. 신혼으로 들어왔던 여름 때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자기는 인테리어 한답시고 그 더운 여름 한 달 동안을 윙윙거리면서 시끄럽게 해 놓더니 내로남불이구먼! 내가 그때 두통에 불면증 온 거를 생각만 해도!”

 ‘딩동!’

 그런데 현관 벨이 울렸다. 잠시 후, 몇 명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누군가가 주먹으로 문을 두드렸다. 아내가 겁먹은 표정으로 나에게 달려와 안겼다. 

 ‘이렇게 빨리 올라왔나? 혹시… 아래층 아줌마가 사람들을 데려왔으면 어쩌지?’

 나는 긴장한 내색을 숨기느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현관 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아내는 뒤에 있는 벽에 몸을 반쯤 숨기고 속삭이듯 말했다. 

 “여보… 그냥 미안하다고 해….”

 “가만히 있어. 이 집터가 이상해. 어쩐지 집주인이 전셋값을 후려치더라니….”

 ‘띠, 띠, 띠, 띡. 띠리릭.’

 그리고 이때… 전자 도어 록이 풀리면서 현관문이 열렸다. 그리고 중년의 낯선 남자가 익숙하다는 듯이 집 안으로 들어오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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