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신혼록 01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상욱 Mar 17. 2023

신혼록(神魂錄)

01_ AM 00:24 월요일. 기록 1분 전

 아내가 귀신에 들린 것 같다. 아니… 귀신에 들린 것이 확실하다. 먹은 것도 다 토해 내고 눈빛도 마치 마약을 한 사람처럼 이상하다. 물론 지금까지 나는 마약을 한 사람을 직접 눈으로 본 적은 없다. 하지만 흔들리는 초점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내의 눈빛은 차갑다 못해 오싹했다. 하여튼 그렇다. 내가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를 보거나 듣고 믿지 않아도 상관없다. 왜냐하면 나조차도 지금 내 앞에 펼쳐지고 있는 이 상황들이 믿기지가 않기 때문이다. 뭐든지 자신이 직접 겪지 않으면 믿기 힘들다는 말이 있듯이…. 가까운 사람이 귀신에게 빙의가 된 모습을 눈앞에서 볼 줄이야 누가 상상을 했겠는가. 게다가 그 가까운 사람이 바로 내 아내라는 것도 말이다. 이런 일들은 영화나 드라마, 혹은 다큐멘터리에서나 있는 줄 알았다. 


 그럼에도 이렇게 펜을 잡은 손이 벌벌 떨림을 무릅쓰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믿기지 않는 사건을 기록으로 남기려는 이유는 내게, 아니 우리에게는 아직 희망이 남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일단 지금은 귀신을 볼 수 있는 그리고 퇴마를 할 수 있는 주변 지인에게 급하게 도움을 요청해 놓은 상황이다. 퇴마를 하는 과정을 이렇게라도 남겨서 아내가 나중에 정상으로 돌아왔을 때 이 글을 꼭 보여 주고 싶다. 이는 내가 그녀의 남편으로서 아내를 위한 조치를 취했다거나 의무감 때문에 최소한의 행동이라도 했다는 사실을 증명받으려는 노력이 절대 아님을 명시한다. 다만 오늘까지도 아내에게 그동안 내가 하지 않았던 일들에 대한 결백을 인정받지 못했더라도, 부부싸움의 원인이자 서류상 이혼 사유 칸에 성격 차이라 적힐 서로 간의 오해를 조금이나마 풀고 싶은 시도라고 볼 수 있겠다. 아니, 결혼생활 만 1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이혼 직전 미래의 전남편이 보여 주는 마지막 예의로 정정해 본다. 


 (* 지금 시간은 새벽 12시 25분. 월요일로 넘어갔으니 어제 요일인 일요일부터 정리를 하겠다. 참고로 내가 현재 충격으로 인해 청심환 두 알을 피로 회복제와 함께 섞어 먹는 등 상태가 그리 좋지 않기에 기억이 왜곡될 수도 있음을 주의해서 이 글을 읽어 주길 바란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