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결혼 일주년을 앞둔 팔월 오일 새벽에
작년 여름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다 주춤하던 팔월의 끝 무렵, 딸아이가 결혼식을 마치고 서울의 한 귀퉁이에 살림을 차렸다. 단출한 신혼살림은 꾸밀 것도, 꾸밀 여분의 공간도 없지만 둘이서 마음 맞추어 재미있게 사는 듯했다. 둘 다 일을 하고 있어도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살기엔 빠듯할 것이 틀림없다.
오래전 나의 신혼 시절이 떠올랐다. 첫 월급봉투를 남편에게 받아 든 그 느낌은 감격스러웠다. 며칠 못가 없어질 액수였지만 남편이 가져다주는 월급봉투를 받는 즐거움에 매월 기다려졌다. 그때는 혼자 벌어 살림 사는 집이 많았고 내가 살았던 동네에는 집마다 남편 출근시키고 남은 아내들이 이 집 저 집 모여 놀다가 점심때가 되면 여럿이 밥을 해 먹기도 하고 아이 이야기, 남편 이야기며 더러는 부업거리를 찾는 이야기로 하루를 보냈다.
나는 딸의 서울살이를 못마땅해했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해 십여 년 넘게 집을 떠나 있던 딸아이는 이미 적응해 서울 사람이 되었고 어쩌다 집에 내려오면 불편해하는 눈치였다.
언젠가 딸이 말했다. 친구들끼리 모여 하는 말 중에 '취집'이라는 단어가 있다고. 직장 다니다 힘들고 귀찮아질 때쯤 안전한 직장으로 결혼을 선택하는 것을 취집이라 한다고 했다.
말수가 적은 딸에게 나는 가끔 물어본다. 결혼하니 어떠냐고. 그러면 이렇게 말한다.
"집에 오면 기다려주는 사람, 기다려야 하는 사람이 있어 좋고 혼자가 아닌 둘이어서 좋고 가끔 싸우기도 하지만 함께라서 좋아."
돌잔치에는 으레 돌잡이 순서가 있다. 주인공인 어린아이가 무엇을 집어 들 것인지가 가족에게 큰 관심거리다. 내 딸이 취집을 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결혼해서 돌을 맞는 딸이 무엇을 집어 올릴지 알 수 없지만 제 마음에 좋은 것을 선택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