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말랭 Sep 28. 2024

우리는 왜 안 헤어졌을까?


우리의 신혼은 정말 치열했다.


남들은 신혼에 알콩달콩 깨 볶느라 바쁘다던데, 우리는 거의 신혼 극 초기부터, 삐거덕거리고 있었다.


(알콩달콩? 깨 볶는다고? 그게 진짜 신혼에 가능한 일이긴 합니까?)


아니, 연애할 땐 그렇게 다정하고 마음 넓고 젠틀하던 사람이 결혼하자마자 이렇게 속 좁고, 잘 삐치고, 가부장적인 사람이었을 줄이야!! 


연애와 결혼은 다르다는 걸 많이 듣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었다. 결혼하는 순간, 연애 때의 그 사람은 어디 갔는지 없더라.


덕분에 정말 많이 싸웠다. 나도 마냥 참는 성격이 아니고 남편은 고집이 대단한 사람이라 정말, 저어어어엉말 많이 싸웠다.



결혼 후에는 인생 그래프의 폭이 달라져버렸다.



대략 결혼하고 4년 차까지 싸운 것 같다. 다시 생각해도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살면서 ‘절망’이란 단어가 피부에 와닿은 적도 그때였던 것 같다.


(오죽하면 절대 빈말은 안 하는 내 입에서 이혼 얘기가 나왔을까…….)


그랬던 우리가…… 벌써 결혼 11년 차가 되었다. 11년 차…… 무려 함께 산 지 두 자릿수가 넘어버린 것이다. (말도 안 돼;;)








대체 우리는 왜, 신혼 때 그 지옥을 겪으면서도 헤어지지 않았을까.



1. 결혼이 무서운 점이 이거였다, 이별이 쉽지 않다는 거. 


연애 때야 그냥 헤어지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결혼은 아니었다. ‘그냥’ 헤어지는 게 없었다.


‘이혼’이라는 절차를 밟아야 하고, 가족과 친척, 친구들에게 보란 듯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내 자존심도 무참히 박살 나야 했다. 


내가 사람을 잘못 봤다는 자괴감과 아무리 흠이 아니라고 해도 ‘이혼녀’라는 꼬리표까지 평생 나를 괴롭힐지도 모를 일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무서웠다. 그래서 견딜 수 있는 만큼, 아니 그 이상을 넘어서도 죽지 않을 정도면 견뎌버렸다. 


그때 나의 인내심 한계가 이렇게까지 넓었던가 싶어 매 순간 놀랐던 기억이 있다.


2. 정도를 지키며 싸웠다.


그렇게 싸우면서도 우리는 나름의 정도를 지켰던 거 같다. 서로 상스러운 욕을 내뱉거나, 원색적으로 비난하거나, 폭력을 쓰는 등의 선을 넘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화해를 한 뒤에는 덧나지 않고 비교적 흔적 없이, 서로 잘 붙을 수 있었던 것 같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원래 아니다 싶으면 칼같이 돌아서는 사람이었다. 만약 그 당시 남편이 정말 ‘아니다’라고 판단됐다면, 그 누가 뭐래도 나는 이혼을 강행했을 거다. (손절에는 누구보다 자신있는 사람 나야 나.)


그런데 내가 이런저런 이유로 망설이고 고민했던 이유는, 뭔가 그 상황이 개선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정말 아프고, 혼란스러운 그 와중에도 내 마음 어딘가에서는 계속, 그 너머가 보였다.


이 시기만 잘 넘기면 내가 알던 그 사람이 다시 돌아올 거란, 그런 예감? 믿음? 그 근거 없는 가느다란 한 줄기 희망이, 자꾸만 돌아서려던 나를 붙잡아 세웠었다.


그리고 그런 내 감은 적중했다. 약 4년 정도 지나자 우리에겐 평화기가 찾아왔고, 연애 때 알던 그 멋진 남자가 다시 돌아왔다.


우리의 진짜 행복한 결혼생활은 사실상 그때부터였다.


이후의 결혼생활은 정말 또 다른 세상이었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결혼을 하는구나 싶을 정도로 내겐 신세계였다.


세상 가장 친한 친구이자, 연인이자, 보호자인 언제나 내 편, 내 사람. 영혼의 단짝이란 게 이런 걸까.


이후에도 안 싸운 건 아니었다. 중간중간 싸움이 일어났지만 이전처럼 심하지 않았다. 


오래가지 않았고 화해도 곧잘 했다. 무엇보다 싸움 자체가 신혼 때만큼 자주 일어나지도 않았다.








그렇게 어느덧 결혼 11년 차……. 거짓말 같겠지만 우리는 연애할 때보다도 지금이 더 좋다.


사랑에도 단계가 있다면, 뭔가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단계에 들어선 느낌이다.


앞으로 20년, 30년 차가 되면 또 어떻게 될까 기대가 되기도 한다. (앞일은 어떻게 될 지 모르는 거지만 그때도 우린 계속 함께겠지? ...아마도?)


내가 정말 ‘사랑해’라는 말을 참 못하는데…… (심지어 우리 가족에게도 말이지!)


지금 나는 정말 남편을 사랑한다. 


우리는 진짜 사랑하고 있다.


이전 10화 신혼 전쟁_투명인간(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