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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kerJ Jun 16. 2022

심리상담사도 정신과에 갑니다 2



이것은 지난 번 신경정신과 방문기에 이어 두 번째 이야기이다.


https://brunch.co.kr/@askerj/23


한 달에 한 번씩 감질맛 나게, 그러나 확실히 힘과 위로를 받으며 다니던 신경정신과가 있는 동네에서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병원을 새로 찾아야만 했다. 새로운 동네에서는 가까운 곳에 두 군데의 신경정신과가 있었다. 나는 늘 그렇듯 리뷰를 찾아보았고 좋은 리뷰와 나쁜 리뷰가 섞인 걸 보면서 결국 직접 경험해보는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그 중 한 군데를 찾아갔다. 어쩔 수 없이 이  전동네의 친절하고 공감력이 충만했던 의사와 비교될 수 밖에 없었고, 그에 비해서는 훨씬 형식적이고 간단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공감이나 위로따위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녀에게 있어 나는 수 많은 환자들 중 한 명일뿐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지만 그걸 더욱 확실히 느끼게 해주는 진료였다.


당시의 내 상태는 우울보다 불안이 큰 상태여서 일상에서도 대부분의 일들이 버겁고 불안하고 무섭게 느껴졌다. 이를 테면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하원시키면서 하는 운전부터가 무서웠다. 아무리 조심한다해도 순간적인 부주의로 얼마든지 사고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이 자꾸만 날 위축되게 만들었다. 그 즈음에 일어났던 접촉사고의 후유증이었다. 백프로 내 과실이었던 접촉사고는 다행히 아파트 내에서 일어나 나도 상대차도 속도가 빠르지 않아 큰 충돌은 아니었지만 순간적으로 네비를 보다가 앞을 보지 못해 무고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혔다는 사실은 충격과 죄책감으로 고통스럽기에 충분했다. 등하원이 두려우니 그 사이에 있는 시간들도 편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올 시간이 될 수록 두려움이 더욱 커졌고, 이 두려움이 번져 아이들을 육아하는 것에도 위축되어 뭐든 자신이 없어졌다. 이 상태를 이야기 하니 의사는 불안할 때마다 먹는 약을 줄테니 힘들 땐 복용하라고 했다. 먹고 있던 우울약은 우울이 나아졌다고 바로 끊으면 안되니 용량을 줄여서 서서히 끊자고 했다. 의사와의 진료는 크게 도움될 것이 없었지만 의사가 처방해준 불안약은 나에게 하나의 붙잡을 수 있는 동아줄처럼 느껴졌다. 플라시보 효과인지 정말 약의 효과인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그 작디작은 알약 하나를 입에 넣고 삼키면 한껏 물렁해져 있던 내 마음이 조금은 단단해지고 진정되는 느낌이 들었다.


불안약은 도움이 되었지만 우울약을 다 먹고 나서도 그 병원을 다시 가 볼 마음은 들지 않았다. 대놓고는 아니었지만 나에게는 분명히 느껴진 그녀의 심드렁함이 자꾸만 떠올라서였다. 그러고나니 나는 다시 내 마음대로 약을 끊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가지 않고 버티며 내가 조금 더 의지를 낸다면 괜찮아질거라는 합리화를 시작했다. 그런 나를 보고 같은 상담사인 동료이자 친구는 내게 말했다.

"의지로 우울을 일으키는 신경전달물질을 통제할 수는 없어. 의지만으로 우울증이 나아질 수 있다면 내 내담자는 죽지 않았을거야. 그 누구보다 우울증을 이겨내려고 애를 쓴 사람이니까."

그녀의 아픔이 녹아 있는 조언이었다. 나 역시도 스스로 이겨내기 힘든 고통을 인정하지 못하고 이겨내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는 내담자를 속상해하며 걱정했던 기억이 났다. 그래놓고도 귀차니즘과 무기력으로 몇 주간을 병원에 가지 않았다. 그러다 또 다시 병원에 갈 계기가 생겼다.

다시 우울감으로 무거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들 두 돌을 기점으로 상태가 마구 곤두박칠치기 시작했다. 내 눈에 회색필터를 끼운 것처럼 어딜 봐도 채도가 확 떨어져 칙칙하게 보이고 뭘 봐도 큰 감흥이 없는 상태가 되었다. 일상의 대부분의 것들이 더 버거워지고 무기력해져 할 수 있다면 하루 종일 누워있고만 싶었다. 어머님이 와 계셔서 버틸 수 있었지만 동시에 어머님이 계셔서 원하는만큼 누워있을 수 없었다. 어머님이 가시고 난 다음 주에 나는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저번에 가지 않았던 병원을 가보기로 했다. 첫 진료의 실망감은 생각보다 이 후 치료에 대한 영향이 크다는 걸 실감한만큼 나도 상담 첫 회기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다. 새로운 동네에서의 두번째 병원 방문은 나름 성공이었다. 이 곳에서도 첫 번째 진료에서는 이런 저런 척도 체크를 많이 했다. 수면에 대한 것, 불안과 우울에 대한 것, 스트레스에 대한 것 등등.. 이렇게 체크한 내용을 그래프화 해서 첫 진료 때 보여주었다. 나는 우울과 절망감, 스트레스가 높다고 나왔다. 우울과 스트레스보다 절망이라는 단어가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나는 지금 절망하고 있구나. 그리고나서는 내 상태에 대해 구체적으로 물었다. 막상 내 얘기를 하려니 어딘가 목이 메어왔다. 그래도 울지 않고 최대한 침착하게 이야기했다. 차마 울지도 못하고 있는 나를 한편으로 안쓰러워하면서. 선생님은 잘 들어주셨고 그냥 넘어갈 법한 이야기도 질문하며 내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이 전 동네 병원에서와 같은 종류, 용량의 우울약을 처방받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 약의 효과는 내 상태가 안좋았던만큼 드라마틱했다. 상태가 바닥으로 떨어지며 한없이 가라앉는 증상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우울한 생각들로 나를 더 괴롭히는 일들도 많이 줄어들었다. 무엇보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던 상태에서 벗어나 차근히 워낙 좋아했던 글과 그림을 다시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일이주일만에 많이 호전되다보니 스스로도 놀라워서 나는 이 전보다 약의 효과를 전적으로 믿기 시작했다. 이후로도 안정되게 상태가 유지되니 어떤 날에는 약먹는걸 까먹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날들은 꼬박꼬박 챙겨먹고 있다. 이제는 약을 빨리 끊어야지 하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 조바심조차도 나를 갉아먹기 때문이다. 그냥 이 약을 하나의 영양제로 생각하기로 했다. 마음을 잡아주는 영양제로.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신경정신과 약을 복용하는 것에 너무 큰 두려움을 느끼기보다는 내 뜻대로 되지 않아 고통스러운 마음을 잡아주는 영양제를 먹는거라 생각하고 자신을 돌보기 위한 도움 받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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