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키우다보면 얼마나 계절별로 유행병이 많은지를 강제로 알게 된다. 여름은 장염과 수족구의 계절이다. 우리 아이들도 장염에 걸려 2주에 걸쳐 며칠씩 가정보육을 하게 되었다. 하루종일 아이들과 붙어있으면서 먹는 것도 제한하기란 꽤 힘들었다. 아이들도 집 안에만 있다보니 답답했는지 자꾸 싸워댔다. 덩달아 내가 화를 내는 횟수도 늘어갔다. 그렇게 더운 여름에 집 안에서 한 데 엉켜 지지고 볶고 하다가 시댁으로 휴가를 떠났다. 어머님은 그간의 고생을 보상해주시듯 아이들을 돌봐주셨고 자유시간도 주셨다. 아이들과 잠깐씩 떨어져 있는 시간은 정말 꿈같이 지나갔다. 간만에 남편과 맥주도 마시고 코인노래방도 다녀왔다. 이제는 마치 전생같이 느껴지는 과거로 잠시 돌아간 느낌이었다. 그렇게 기대 이상의 휴가까지 보내고 왔는데 내 상태가 이상했다. 아이들이 보채고 떼를 쓰는 걸 견디기가 더 힘들어졌다. 특히 새벽에도 일어나 나를 깨우다 아침 일찍부터 원하는 걸 달라고 보챌 때가 미칠 것 같았다. 잠도 덜 깨서 맨 정신이 아닌 상태로 화가 솟구쳤다. 그런 아침에 그 일이 일어났다. 아이들이 뭔가 부스럭거리길래 또 뭔가 만져선 안될걸 만지나 싶어 힘들게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나갔다. 뭔가 하고 보니 빵봉지를 들고 서 있었다. 순간 스스로를 제어할 틈도 없이 빵봉지를 열어 빵을 떼서 바닥에 내던졌다. 아이들은 그걸 주워먹었다. 그걸 본 남편의 목소리가 들리고나서야 제정신이 들었다.
"당신 지금 빵을 바닥에 던진거야?"
뭐라 변명할 여지도 없는 장면이었다.
"어 던진거야. 이제 안그럴게."
남편은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수치심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곱씹을수록 스스로가 미친 것 같았다. 평소에도 화를 낸 적은 있지만 이번엔 그저 화를 낸 정도가 아니었다. 화에 못 이겨 아이들을 비인격적으로 대한 것이다. 다른 때 같았으면 아이들에게 곧바로 미안하다고 사과했을텐데 이번엔 그럴 엄두조차 나질 않았다. 내가 한 짓에 대해 스스로 소화가 되지 않으니 미안하단 말을 할 여력도 없었다. 마치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아이들을 대했지만 내 마음 속에선 그 장면만 반복재생되고 있었다. 속이 말이 아니었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오는 길에 견딜 수 없어 엄마에게 이야기를 했다. 엄마도 너무 안타까워하셨다.
"그래도 아이들한테 그러면 안돼...너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근데 내가 그런 짓을 하고 있어 엄마..."
그제서야 눈물이 줄줄 나오기 시작했다. 엄마와의 통화가 끝나고도 차에 앉아 엉엉 울었다. 내가 이렇게 못되고 못난 사람이라는게 고통스러워서, 그런 엄마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불쌍해서. 하필 그 날 잡혀있던 약속도 나가지 말까 하다가 혼자 있으면 끝도 없이 땅 속으로 파고들까봐 나갔다. 친구들에게 나는 솔직한 마음을 말했다.
"육아가 하기 싫어. 근데 그렇다고 일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니야. 그냥 쉬고 싶어."
내가 생각해도 대책없는 소리였는데 그 말을 듣더니 친구가 "번아웃이네." 했다.
몇 달 전에 어디선가 돌아다니는 '육아번아웃 테스트'를 했던 기억이 났다. 내 결과는 85점 이상, 확실한 번아웃 상태로 나왔다. 나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번아웃 상태인걸까.
육아 번아웃에 대해 찾아보면 '육아의 만성적인 스트레스로부터 느끼는 육체적, 정신적, 감정적 피로' 라고 나온다. 육아 번아웃이 오게 되면 자녀와의 감정적 거리감을 느끼고 쉽게 짜증이나 화를 낼 수 있다고 한다. 지금의 내 상태와 딱 맞아떨어지는 설명이다. 육아번아웃은 다른 일로 인한 번아웃보다 받아들이기가 더 힘들다. 마치 부모로서의 자질이 부족한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이들에게 감정적 거리감을 느끼니 내가 모성애가 없는 엄마처럼 느껴져 회의감이 들었다. 아이들을 데리러 가는 길이 기대되지 않는 것도 속상했다. 어느 새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내게 미션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누군가가 번아웃이라고 얘기해주니 마음이 한결 나았다. 내 상태가 정상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던져준 것 같아서. 그렇다고 나를 이대로 놔둘 순 없었다. 번아웃이랍시고 아이들에게 계속 상처를 줄 순 없으니까. 급하게 명상을 시작했다. 신앙이 있으니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기도도 했다. 기도보다는 사실 하소연에 가까웠다. 내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하는지 어디서부터 잘못된건지. 우선 아이들에게 사과를 했다. 아침에 엄마가 빵을 던져서 미안해. 화가 난다고 그렇게 하면 안됐는데 미안해. 사과를 하고나서야 마음이 한결 나았다. 아이들의 귀여움이 조금씩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마음을 쉽게 놓지 않기로 했다. 번아웃의 터널은 언제 끝날지, 어디서 다시 시작될지 알 수 없으니까.
생각해보니 나에게는 아직 사과를 하지 않았다. 뜻대로 되지 않을 정도로 힘들어서 그런건데 괴물취급해서 미안해. 항상 그런 것도 아닌데 못된 엄마로 낙인찍어서 미안해. 번아웃이 올 정도로 나를 잘 살펴주지 않아서 정말 미안해.. 앞으로도 나는 번아웃의 늪에서 나왔다 다시 빠졌다를 반복하며 지내게 될 것 같다. 사과를 해야하는 일은 줄여나가야겠지만 아예 없게 할 자신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건 육아가 마라톤이라는 걸 잊지 않는 것. 순간순간 내가 또 페이스 조절을 못하고 있는건 아닌지 봐주는 것 뿐이다. 오늘 넘어져도 내일은 다시 달려야하는, 그런 나를 안쓰러워하고 다독여주는 것도 내 몫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