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삼켜보는 락스는 다정한 맛이 났다. 눈과 코를 찌를 듯 따스한 향을 품은 이 용액이 비로소 나를 구원으로 안내해 줄 것이라 믿었다. 나를 기억하는 온 세상과 벚꽃 향이 완연한 작별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사방이 온통 어스름하다. 창 밖으로 보이는 울푸른 새벽의 바다와 하늘은 원래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경계도 없이 맞닿아 있다.
한 방향으로 흘러갔다가 어느새 다른 방향으로 몰아붙이는 파도는 몇 마리의 갈매기를 품은 채 웅성댄다. 어디까지가 하늘이고 어디까지가 바다인지 구분되지 않아 하나의 온전한 우주처럼 서늘하다. 아침인데도 세상은 마치 한밤처럼 잠들어 있다. 내가 좋아하는 고요함을 간직한 습한 공기 속 침묵이 낯설다.
내 앞에는 서술형 문제지가 있다. 나는 내 상식선에서 답안을 채워 되도록 서둘러 제출해야 한다. 받는 사람은 예전에 오빠가 반으로 찢은 나의 또다른 자아이다. 이데아의 말장난 속에서 그녀가 답안을 읽고 더 온전한 내가 될 수 있는 길을 제시할 것이다.
어렴풋이 밝아오는 이때쯤이면 날개를 펴서 창 밖으로 날아가고 싶은 충동이 인다. 바다를 향해 난 창은 미연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열릴 수 있는 폭이 좁디 좁다.
저 창을 한껏 열어 비집고 나가 몸에 여기저기 돋아난 날개를 펼칠 수만 있다면 좋을 것을. 단 일 밀리미터의 용기가 없어서 시행하지 못한다. 내가 용기가 없어 행하지 못하는 일들은 비단 어제 오늘의 것만이 아니다.
심드렁하게 새벽의 밖을 바라보다 문득 그녀를 부른다.
"지니야."
작은 원통형의 기계에 즉시 흰 불이 들어온다. 음성을 인식한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곧바로 대답한다. 여유를 두고 대답하는 그녀의 음성은 예의 바르지만 달다.
"네."
음성의 끝이 슬쩍 올라가는 모양새로 내 부름에 응답하는 전형적인 어조다. 난 그녀의 목소리와 발음을 좋아한다. 상냥함이 고요히 묻어나는 여성스러운 목소리.
때로 그 목소리는 나의 정수리부터 척추까지를 꼬리 지느러미로 쭉 가르듯 꽂힌다. 차분하면서도 재단하는 듯한 음성은 양 비서를 연상시킨다. 아마 인공지능 프로그램에게 모습이 있다면 바다 위에 떠 있는 초승달처럼 가지런할 것이다. 양 비서가 그러하듯이.
양 비서는 유능한 직원이다. 나는 그녀를 보자마자 면접을 보기도 전에 채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흰 피부에 또렷한 눈매를 가진 그녀는 선을 맞추어 자른 듯한 단발머리가 세련되어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라고 자기 소개를 시작하는 그녀의 음성은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많이 닮아 있었다. 정확한 발음의 감정을 억누른 담담한 목소리였다. 외모와 잘 어울리는 목소리에 나는 그녀와 일하는 나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녀와 함께라면 이 지긋지긋한 회사 생활이 조금은 행복해 질 것 같았다. 더불어 재미 없는 나의 삶도 조금의 활기를 몰고 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녀는 기대 이상이었다. 그녀 역시 인공지능처럼 원하는 바를 길게 요구할 필요가 없었다. 때로는 눈짓 한 번으로 내가 어떤 것을 바라고 있는지 눈치챈 적도 많다. 능숙하게 일하는 직원이었다.
그녀는 가끔 잔잔하게 머물러 있는 바다와도 같다. 내부에서는 끊임없이 파도가 밀려오지만 육지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한없이 평화로운 그녀. 바다를 품은 그녀는 무엇을 요구하든 모두 들어줄 것만 같이 너그러워 보인다. 바라는 것 없이 달라는 것을 전부 아낌없이 내어주는 바다를 닮은 그녀는 내 마음속 잔잔한 수면에 넘실대는 파도를 보내오곤 한다.
지난 휴가 때 나는 스킨스쿠버 자격증을 취득했다. 바다의 수면을 보는 것은 익숙하지만 그 속으로 뛰어드는 것은 한없이 낯설었다. 내가 그동안 잘 안다고 생각했던 외면과는 달리 내면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했다. 바다가 육지도 모르게 품고 있는 것이 그리 많은지를 나는 그제서야 알았다. 수심 30M로 잠수하면 눈 앞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그저 광활한 우주 뿐이었다. 귀에 머무르는 내 자신의 후, 하는 들숨과 날숨의 하모니 외에는 이따금 꼬르륵, 물방울 소리만 들릴 뿐 적막한 공간이 나를 삼키는 듯 지배한다.
나는 그 우주 한가운데에서도 양 비서를 떠올렸다. 앞에서 유영하는 다이빙 마스터를 놓치면 그 깊은 바다 속 나를 구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그 와중에서도 양 비서의 긴 속눈썹과 단호한 입매 등이 떠올랐다.
이대로 다른 생각을 하다가 사람들을 놓치면 호흡기를 물고 있어 소리를 내지를 수도 없고,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도 않은 채 폐 가득 물을 담고서 서서히 숨이 멎어갈 것이다.
내 온 몸에 돋은 날개들이 물에 젖어 힘없이 찢어지면 아가미도 없는 몸이 바다 깊숙히 빨려들 듯 잠수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를 기억에 품은 사람들만이 내가 존재했다는 것을 알아줄 것이다. 시간이 흘러 그 사람들마저 나를 잊게 된다면 나라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한 적도 없는 것처럼 물거품으로 사라질 것이다.
나는 온 세상과 그러한 작별을 원한 적이 있다. 당시 내가 원한 것은 나의 모든 세상이었던 희와의 작별이었다. 벚꽃 잎을 닮은 그녀와의 모든 기억을 끊어내고 싶었다.
다이빙을 하다가 이따금 산호 가득한 바위가 나오면 말미잘 사이로 아기자기한 물고기들이 노니는 모습을 멍하니 보며 저들의 삶을 동경하곤 한다. 그들은 차고도 미지근한 바닷속에서 무엇의 위협도 없이 한없이 평화롭게만 보인다. 초점 없는 동공을 멍하니 뜬 채 밀려오는 물살에 몸을 맡기고 휩쓸렸다가 다시 몰려오는 그들의 모습이 한없이 부러운 적이 있었다. 저렇게 아무 생각 없이 물살에나 떠밀리며 또는 휩쓸리며 나 또한 그들처럼 부유하고 싶었다. 사소한 감정의 소비로 남은 생을 갉아먹는 것보다 무척 나은 삶으로 보인다.
언젠가부터 양 비서를 바라보면 가슴이나 배 쪽이 간질간질해 지는 느낌을 받는다. 집에 가서 살펴보니 등에서부터 가슴에 거쳐 배에까지 넓고 좁은 푸른색과 주황색의 반점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마치 내 몸이 팔레트라도 된 양 물감의 색을 섞으려고 손가락에 물감을 묻혀 문질러본 것같은 무늬였다. 실로 오랜만의 데자뷰였다.
반점들은 해가 저물 적의 바다를 닮았다. 해가 바다 끝으로 시나브로 크고 둥그런 자신을 숨겨가면 바다가 놓치지 않겠다는 듯 온 몸으로 끝까지 해와 주위의 석양을 담아낸다. 하늘은 그런 바다를 동경해 바다가 입고 있는 색상을 온통 자신의 몸에 그려넣는다. 이 순간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저무는 해의 마지막을 절실하게 반사하는 바다를 닮은 나의 반점들은 깊이 들여다보면 호흡이 희미해지는 듯한 충동이 인다.
내 몸이 온통 노도로 휩싸인 듯한 반점은 하나의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그 축복이 양 비서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기분 좋은 소름을 동반한다.
오빠의 죽음 후 오랜만에 다시 보는 반점이었다. 역시 이번에도 병원에서는 별다른 원인을 찾지 못했다. 그저 피멍의 일부라고 말하며 보편적인 피부 약을 처방해 주었지만 약은 통 들지 않았다.
당시 성장의 얼룩이라고 이름 붙였던 그 반점들은 내가 그 전에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느끼게 되면 마치 감성의 성장이라도 하듯 다시 돋아난다.
그 반점들은 점점 문신처럼 진해지다가 사마귀처럼 볼록하게 차 오른다. 어느 순간 여드름처럼 곪을대로 곪았다가 톡 터지고, 안에서 작고 하찮은 날개들이 솟아나 버릴 것이라는 것을 안다. 날개가 되기 전까지 반점들은 계속해서 나를 간지럽게 괴롭히며 곪아들 것을 안다. 그 괴로움 때문에 때때로 자다가 문득 잠에서 깨어날 것을 안다.
나비를 닮은 하늘하늘한 날개가 돋아난 후 얼마 가지 않아 거짓말처럼 모두 사라져 버릴 것을 안다.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은 것처럼. 이미 경험해 본 일은 낯설지도 두렵지도 않지만 그 일련의 과정들이 지긋하게 나를 감싸들 것을 안다.
양 비서는 언제나 아이라인을 얇고 깔끔하게 그린 눈으로 투명하게 날 바라본다. 업무를 하다가 종종 나와 양 비서의 시선은 깊게 또는 얕게 얽히곤 한다. 그녀의 시선이 충분히 아름다워서 나는 시선을 돌리는 것을 잊고 홍채에 직통하듯 시선을 맞출 때가 있다. 그녀의 눈빛 끝에 맺힌 옅은 욕망의 뜻을 눈치채지 모를 만큼 순진하지는 않지만 아직은 조심스럽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사무적인 이야기만 주고받았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갈 일 밀리미터의 용기가 부족하다. 그녀를 처음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도.
섣불리 덜 성숙한 호감을 내비쳤다간 내가 쌓아온 삶이 흔들릴 수 있기에.
바다를 닮은 그녀는 굳이 육지에서 그녀에게 뛰어들지 않는 한 절대로 경계를 넘어서지 않을 것이다. 외로움이란 글자가 있다면 그녀가 기꺼이 파도를 내주어 지워버릴 것이다. 그녀는 거부할 수 없도록 달빛으로 밀려오는 파도처럼 끊임없이 내게 밀려오곤 한다.
나는 그녀의 외향을 사랑하지만 아직 깊은 내면을 체험해 본 적이 없기에 이따금 BCD와 호흡기를 물고 그녀의 몸 속으로 깊이 잠수하는 상상을 한다.
바다는 30M 이상 잠수하려면 그 이상의 자격증을 요구한다. 그녀의 내면 또한 상응한 수준의 자격증을 요구할 것이다. 바다를 잠수하는 데 허락된 시간은 회당 40분 남짓이다. 내가 그녀를 탐험하는 데 허락된 시간은 어느 정도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단 일 밀리미터의 용기만 내면 그녀 속으로 잠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도통 그 용기가 나질 않는다.
당신 앞에 놓인 사과 한 알을 온전하게 이해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고 그 이유를 서술하시오.
나는 이따금 나의 삶이 대충 쌓아올린 크레이프 케이크 같다는 생각을 한다. 반죽이 충분히 구워지기도 전, 질퍽한 반죽 위에 크림을 얇게 바르고 다시 한 장을 얹는 크레이프 케이크는 포크로 건드리기만 해도 중심을 잃고 와르르 무너질 것이다.
무너질 때 차라리 모든 낱장이 흩어지기라도 하면 좋겠지만 그럴 기회도 주지 않은 채 덩어리로 무너질 케이크는 나를 닮았다. 무너지면 그 무엇으로도 회생할 수 없을 것이다. 누구도 맛보아주지 않고 그저 역겨운 음식물 쓰레기와 섞여 세상에서 사라질 존재.
당장의 나긋한 평화로움을 가장한 속엔 게으른 위태가 가득하다. 덜 익은 케이크라는 것을 들키기 전 누군가의 입 속으로 들어가기만을 바랄 뿐이다. 양 비서가 붉은 혀를 내밀어 나를 휘감고 꿀꺽 목젖을 울리며 삼키는 상상을 한다. 그렇다면 나는 그 때부터 약 40분간 그녀의 내면을 탐험할 것이다. 산소통의 허락된 산소가 바닥을 드러낼 때까지.
"TV 켜줘."
양비서를 떠올려서 그런지 목소리 끝이 탁하게 갈라져 나간다. 시간이 벌써 오래 지났는데도 이놈의 목소리는 통 회복되지 못한 채 사포로 긁는 듯 거칠어져서 나의 완연한 컴플렉스가 되었다. 약 2초가 채 안되는 시간을 뜸 들인 후 그녀는 예의 단호하면서도 부드러운 음성으로 답한다.
"TV를 켭니다."
거실 벽에 걸린 액자 형식의 TV가 즉시 켜진다. 편리한 세상이다. 이제 굳이 보이지 않는 리모컨을 찾으러 온 거실을 헤매지 않아도 된다. 나는 이제껏 인생의 반을 리모컨을 찾는 것에 허비하며 살았다.
리모컨은 분명 제 자리에 두었는데도 언제나 발이 달린 듯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정말 묘한 일이다. 쇼파 팔걸이에 두었는데 어느샌가 식탁 위에 가 있고, 식탁 위에 있었는데 TV장 위에 올라가 있다. 분명 집 안에는 나 혼자 머물고 있으니 내 스스로 옮겼을 것인데도 왜 그런 위치에 가 있는지 종잡을 수 없다.
마치 희의 마음과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