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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na Apr 08. 2021

완성, 그 깊이의 책임

 단순히 애호박볶음이나 시래기 된장국, 멸치볶음이나 꽈리고추 조림을 못 먹는 그런 식성이 아니라요. 단순히 햄버거를 더 좋아한다, 이런 식성이 아니라요.

제가 당신의 비밀을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전 당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집착이 심하니까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알아낸 당신의 소중한 비밀이죠.


옛날 문둥병 환자들이 갓난아이를 집어 삼키면 병이 낫는다고 착각했듯이, 당신 역시 누군가의 신체를 먹으면 발가락이 언젠가 자라날 것이라고 믿었겠지요.

전 당신의 모든 것을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앞서 몇 번이나 언급했듯, 전 당신을 깊이 사랑하니까요.


당신은 실종 여부가 발각될 리 없는 사람들, 부모가 포기한 가출 청소년이나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는 업소 여성들을 중심으로 죽이고 먹어왔습니다.

처음엔 불법으로 낙태한 태아를 여기저기서 어렵게 구해다 먹었지요. 태아가 신체가 채 완성되지 않아 먹어도 발가락이 자라지 않는다고 믿었던 당신은 점점 온전한 신체의 사람을 구해 먹을 결심을 했겠지요. 당신의 지위를 앞세워 버림받은 여성들을 취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방송국의 PD이니, 연예계에 데뷔시켜주겠다는 달콤한 제안으로 그녀들을 쉽게 얻었겠지요.


처음부터 당신 어머니가 타인에게 씻을 수 없는 큰 상처를 주었기에 하늘이 잘라간 발가락이라, 다른 사람의 신체를 먹는다고 해서 쉽게 자라날 수 있는 발가락이 아닌데 말입니다.

그런데 당신, 차라리 절 먹어볼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었나 봅니다. 제 눈의 실핏줄이 터져 나가도록 제 목을 졸랐음에도 절 죽이지 않았으니 말이죠.

그래서 당신은 홍을 건드렸던 걸까요. 당신은 저와 홍의 관계를 언제부터 알았던 것일까요.


오랫동안 연락이 닿지 않았던 홍의 얼굴은 생각지도 못하게 지하의 쓰지 않는 김치냉장고 속에서 나왔고, 잔뜩 얼어 붙은 채로 저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 빠져들 듯 새카만 홍의 눈동자라니, 붉은 입술이 벌어진 채 다물지도 못한 얼굴로 그렇게 저의 홍은 정말로 오랜만에 제 앞에 나타났습니다.

머리만 나왔으니 목 밑 부분은 아마도 당신의 몸 안에 있겠지요. 당신의 몸 안에서 새파란 잎사귀를 틔우며 자라나고 있겠지요.

그래서 당신을 제가 이렇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저의 전부나 다름없었던 홍을 그렇게 쉽게 삼켜버릴 수 있다니, 이제 제가 제 신체의 일부를 당신에게 심어 온전히 당신과 당신의 안에 담긴 홍을 소유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얼음물에 담긴 발가락이 어느 정도 피가 빠진 것 같습니다.

얼음을 가득 채운 유리병에 담아, 드라이아이스 포장을 해서 택배로 보낼 예정입니다.

택배의 수신처는 당신이 진행하는 방송사 한 시사 프로그램입니다. 유리병에 담긴 발가락만 달랑 보내면 너무 이상할 테니 냉장고 속에서 나온 당신이 홍을 내리칠 때 사용한 듯한 홍의 피가 묻은 망치도 함께 포장할 예정입니다. 그럼 내가 보냈다는 것을 당신이 알게 되겠지요. 당신이 뜯은 택배를 다른 사람들도 발견하겠지요.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나의 발가락을 기꺼이 삼켜 줄까요?


당신이 이제껏 쌓아온 알량한 사회적 지위와 인맥, 한 순간에 모두 사라지게 만들고 싶습니다.

처음부터 당신의 식인 사실을 빌미로 당신을 협박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이기지 못할 상대였는데 말입니다.

당신이 홍을 건드릴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당신이 제가 당신의 그녀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고 생각했듯이, 저 또한 당신이 홍의 존재를 모를 거라 생각했지요.

당신의 그녀가 직접 제게 연락했듯이, 저 또한 홍이 당신에게 그렇게 당돌하게 연락할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나의 가엾은 홍, 나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을 용감하고 가냘픈 그녀.

하지만 제가 당신의 그녀를 죽이지는 않았는데 말입니다. 그녀가 당신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고 있으니까요.

요즘엔 심부름 센터가 잘 되어 있어서, 돈만 넉넉히 주면 어떤 일이든 쉽게 해주지요. 상용되는 것보다 좀 더 많은 돈을 주면 법에 위촉되는 범주의 행위도 충분히 부탁할 수 있지요.


당신의 그녀를 남은 생 동안 임신할 수 없는 몸으로 만든 것은 제게 당돌하게 맞선 것에 대한 울분과, 감히 제 것을 넘보았다는 소유욕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사랑하는 당신이, 제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의지가 되어주는 홍을 먹어버리면 이제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아 이렇게 극단적인 방법을 생각해냈습니다.


TV 대신 올려놓은 홍의 얼굴이 묵묵히 저를 보고 있네요. 언제 보아도 정말 아름다운 얼굴입니다. 아, 천사의 그림자처럼 새카만 홍의 눈동자는 언제나 제 정신을 아득하게 합니다.

화분에 홍을 심어보면 그녀가 활짝 피어나 줄까요. 언젠가 볕 좋은 날, 그녀를 닮은 바르고 단정한 화분을 구해다 그녀를 심어줄 생각입니다. 그럼 그녀의 일부분이 떠나지 못한 채 영원히 제 곁에서 자라나겠죠.


홍을 처음 만난 날은 비바람이 강하게 몰아치는 날이었습니다. 그 날 저는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아주 충동적인 기분에 휩싸였고, 혼자 집에 있으면 무슨 일을 낼 까봐 제정신이 아니었지요. 저는 당시 깊은 마음의 병을 앓고 있었거든요.

때로 제 몸이 막 흔들어 댄 콜라처럼 느껴졌습니다. 언제 폭발할 지 모르는, 마구 흔들어 댄 콜라 말입니다.

그럴 때면 저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느끼며 어찌할 바를 몰라 방구석에 몇 시간이고 틀어박혀 있었지요.

무엇 때문에 이 재미없는 삶을 이어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들 때면 이내 이 의미없는 생을 마감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습니다.


그 날도 그랬습니다. 집 안에 있으면 이 짧고 하찮은 목숨을 제 스스로 끝낼까봐 굳이 바깥에 나왔으나 바깥도 재미가 없긴 마찬가지였죠.

사방이 어스름해져서 비바람에 자꾸 뒤집어지는 우산을 달래며 목적 없이 거리를 걷다가 한 카페로 들어갔습니다.

제 이 미쳐 날뛰는 마음을 진정시켜 줄 아주 달콤한 음료가 필요했지요. 커피 향기는 언제나 저도 가늠할 수 없는 미친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줍니다.

카페는 아주 작았고, 날씨 탓인지 손님은 한 명도 없었지요.

따스한 노란빛 같기도 하고, 주황빛 같기도 한 은은한 조명 속 홍을 그 때 처음으로 보았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라고 깨닫게 된 날이기도 하죠.


단정한 눈썹에 천진한 눈매가 참 사랑스러운 사람이었죠. 특히 긴 속눈썹 속의 겨울밤과 같은 눈동자가 어린아이의 눈처럼 티없이 맑았습니다. 입가에 살짝 머금고 있는 상냥한 미소에서 마치 갓 내린 커피 향이 피어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주문하시겠어요? 라고 나지막히 묻는 홍의 목소리가 어찌나 귓가에 착 감기던지 그만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었지요.

저런, 근데 다 젖으셨네요. 뭐 닦을 것 좀 드릴까요?

홍의 첫인상은 아주 아름답고 우아했습니다. 꿈을 꾸고 있는 몽롱한 기분으로 홍이 건네는 수건을 받아 머리의 물기를 털었습니다.


그동안 어떤 아름다운 연예인을 봐도 시큰둥한 저였는데 말입니다. TV속 연예인들 이름이나 얼굴을 하나도 구분하지 못하는 저인데, 홍만큼은 말입니다. 천 명의 사람들 가운데 섞여 있다고 해도 그녀를 금방 집어 낼 자신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은 처음 보았습니다. 아름답고, 강렬하게 끌리는 사람은요.

그 후로 매일 그 카페를 찾아 드나들었지요. 나중에 홍은 고백했습니다.

그렇게 욕망에 가득 찬, 집어삼킬 듯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은 처음이었다고. 자신을 갈망하고 독점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가득한 제 강압적인 눈빛이 참 마음에 들었다고요.

어쩌면 우리는 서로 첫 눈에 반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소소한 일상 공유로 시작한 우리의 대화는 사회, 경제, 역사, 문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어떠한 주제라도 막힘 없이 넘나들었고, 전 진정한 의미의 소울메이트가 이런 것인가 생각했지요. 어떤 대화를 하든 유쾌하고 명료했습니다.

중간 중간 대화가 끊기면 우리는 말없이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죠. 상대방의 눈을 고요히 바라보며 그 안에 담긴 마음을 주고받는 것. 이보다 더 평안한 것이 없다는 걸 처음으로 깨닫게 해준 이가 홍이었습니다.


전 홍과의 의견을 나누는 시간이 너무 즐거웠지요. 언제나 귓가에 젖은 듯 나직하게 감겨오는 홍의 목소리는 듣는 것만으로도 아주 나른해서, 듣고 있으면 미쳐 날뛰던 마음조차 언제 그랬냐는 듯 온통 편안해지곤 했습니다.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 모두 제게는 한정된 축복이었습니다.

우린 서로의 남은 인생을 평생 함께 지내고 싶어했으나, 친정에서 저의 성향을 알아챈 순간 그 평화는 깨졌습니다.

가진 것이 많은 그들은 평범하지 않은 절 받아들이지 못했죠. 어떻게든 절 강제로 결혼시키려 했습니다. 참 슬픈 순간이었죠.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같이 도망도 치지 못하고 가족에게 휘둘리는 기분은요.

그 후로는 뭐, 여러번 선을 보다가 결국 당신과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시시한 이야기죠.

왜 하필 당신이었냐면요.

당신을 본 순간 홍의 붉은 입술이 생각났기에, 그 점이 당신을 남편감으로 고르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평생 당신의 모습에서 홍을 떠올릴 수 있었으니까요. 저의 영원한 뮤즈이자 여신, 홍 말입니다. 당신이 감히 저의 허락도 받지 않고 멋대로 삼켜버린, 소중한 저만의 홍 말입니다.


아, 어지럽네요. 갑자기 호흡이 가빠지고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겠습니다.

저의 발가락과, 당신이 홍을 내리친 것으로 보이는 혈흔이 선명한 망치, 그녀를 도려내고 자르는 데 쓰인 듯한 칼과 메스, 군데 군데 조각으로 남아있는 홍의 잔해와 머리카락까지 모두 잘 포장하였습니다. 요즘 세상은 참 편리하지요. 가만히 앉아 손가락만 까딱하면 알아서 택배 접수까지 되고, 문 앞에 놓아만 두면 기사가 알아서 수거를 해주니까요.

계획한 모든 것을 마치고 나니,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제게 밀려옵니다. 모든 것이 끝났다는 안도감 때문일까요.


노도와도 같은 무기력감과 후련함이 저를 덮칩니다. 저는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노도가 덮치는 대로 바닥에 쓰러집니다. 그런데 바닥이 좀 이상합니다. 평소와 같이 딱딱하지 않고 폭풍이 불기 전 수면 위 불안정한 파도처럼 출렁이네요. 이 흔들림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한동안 약을 먹지 않아서일까요, 불법으로 구한 마취약 때문일까요. 아니면 지혈이 잘 되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당신에게 곧 저의 신체의 한 부분을 내어줄 수 있다는 흥분감 때문일까요.

당신의 몸 속에서 곧 홍과 만날 제 또 다른 자아를 떠올려서 너무 기쁘기 때문일까요.


어쩌면 조금의 우울감일 수도 있겠고, 어쩌면 이 모든 과정이 끝나 버린 서운함일수도 있겠습니다.

아니, 어쩌면 제 계획은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겠습니다.

택배 기사가 제 소중한 것들을 가지고 배송하다가, 갑자기 중앙선을 넘어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덤프트럭을 피하지 못한 채 큰 사고가 나서 택배들이 분실될 수도 있는 일이니까요.


아니면 제가 몽롱한 기분 속에 택배 접수를 잘못하여, 영원히 현관문 밖에 놓인 택배를 수거하지 않을 수도 있겠네요. 아니면 당신이 택배 겉면에 씌여진 저의 이름을 보고 내용물을 확인하지도 않은 채, 반송하거나 버릴 수도 있겠요.

하지만 부디 제 계획이 성공하길 바랍니다. 저는 영원히 홍과 함께 하고 싶거든요. 이 볼품없이 남은 하찮은 제 인생을요. 그녀가 저의 세상이 되어 주었으니까요.


지금 제가 갖는 이 감정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는 이해할 수 없지만, 잠시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것 같습니다. 자꾸 눈꺼풀이 무겁게 감겨오고 있으니까요. 조금만 쉬자는 듯 보채는군요.

잠시만 이 모든 것을 외면한 채 꿈을 꾼다면 기분이 한결 나아질 것 같습니다. 저의 모습을, 눈을 감지도 못한 채 오롯이 지켜보고 있는 홍의 시선 안에서 말이죠. 그녀의 다정한 시선이 따스한 이불이 되어 제 온 몸을 덮어줄 것입니다. 더불어 제 사치스러운 감정도 치기 어린 어린아이를 잠재우듯 토닥거려서 진정시켜줄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잠시 잠을 자고 일어나 보면 이 모든 것이 아직 시작도 되지 않은 악몽의 한 자락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된다면,


당신의 몸 속에서 저와 홍은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셋은 영생을 함께 할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당신. 그리고 당신이 허락 없이 품은,

나의 아름다운 홍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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