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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누리 Aug 11. 2022

어느새 글을 천천히 읽는 게 어려워졌다.

빠른 게 무조건 좋은 것일까?


"아이고. 마우스 커서 움직이는 거 진짜 빠르네. 못 쫓아가겠다."


 곧 환갑이신 사장님이 고개를 도리도리 흔든다. 내 모니터 앞에만 서면 다들 파리 좇는 고양이처럼 눈알을 이리저리 굴린다. 난 빠르다고 생각한 적 없는데? 사장님에게 포토샵을 가르쳐 드려야하니 오른손을 좀 더 천천히 움직여본다. 으. 답답해. 다시 마우스를 휙휙 움직인다.

 어느새 글을 천천히 읽는 게 어려워졌다. 거래처에서 온 메일도 처음과 끝부터 읽는다. 인터넷 창도 다 열리기도 전에 버튼을 클릭한다. 브런치 글마저 댓글부터 읽는다. 그 다음 내용을 읽는다. 읽다말고 다시 다른 창으로 넘어간다. 뭔가 이상하다. 머리에 남는 게 없다. 눈은 바쁜데 머리는 텅 비어있다.



꼭꼭 씹어서 봐야지.


 밥은 꼭꼭 씹어먹으라면서 왜 글은 꼭꼭 씹어보라는 말을 안 할까? 밥은 위에서 소화시킨다면, 글은 뇌에서 소화시키는 것인데. 우린 머리에게 너무 불친절하다. 글은 조각조각 내어 던져줄테니 알아서 이해하란다. 아니다. 글도 꼭꼭 씹어서 봐야한다.


 난 어른들이 모니터를 한참 보고 있는 게 이해가 가질 않았다. 내겐 이미 무슨 버튼을 눌러야할지 다 보이는 데, 어른들은 한참 찾고 있다. 사장님은 머릴 긁적이며 '눈이 침침해서 안 보인다'고 했다. 젊은 사람들은 좋겠다며 부러워하신다. 하지만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보면 뭐하나. 금방 다 잊어버리는데. 심지어 급하게 눌렀다가 뒤로가기를 누르기 바쁜데. 어쩌면 정말 눈이 침침한 건 사장님이 아니라 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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