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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초의 꿈

SNU행정담론 ep#014

by 정현 Jun 11. 2021

우리 부서에 근무하는 공익요원이 대봉투 하나를 내게 내민다. 우연히 이 에서 만난 공익은 알고 보니 내가 업한 고등학교 한참 후배다. 고등학교 후배라니... 정말 만나기도 쉽지 않은 인연을 이 곳에서 만. 공익을 볼 때마다 나의 기억은 잘 다려진 교복을 입고  향해 골목길을 바쁘게 걸어가던 그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참으로 분좋은 인연이다.


봉투어보니 '난초'라는 이름의 책 한 권이 들어있다.

발행인은 신당야학. 난초는 1979년 설립하여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는 야간학교(야학)의 설립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기념 사진첩이다. 진을 바라보는 나의 눈은 또 다른 인연을 찾아 40년 전으로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대학 신입생 시절, 동아리 선배의 권유로 야학의 문을 두드렸다. 우리 대학과 한 간호대학에서 같은 이름의 동아리 학생들이 합심해 공동으로 교사진을 구성한 야학으로, 중학교 과정을 2년간 이수하여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학교였다. 학생들은 다른 정규학교의 학생들과 똑같은 검정 교복을 입고 등교했고, 교복을 입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갖가지 사유로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아쉬움을 다소나마 달랠 수 있었다.


야학에는 지각은 물론 중도 자퇴를 하는 학생이 많았다. 동료들과 집들이 다닥다 붙어있는 신당동 산동네 언덕길을 풀이 잔뜩 들어있는 통을 짊어지고 오르락거리며 학생 모집 벽보를 붙이다가 동네 사람들에게 쫓겨나기도 했고, 갑자기 학교에 오지 않는 학생을 찾아 집을 방문했다가 쓸데없는 바람을 넣는다고 혼쭐이 나기도 했다.


식당에서 일하는 어린 쌍둥이 자매, 달리는 버스 올라타 지갑 벨트를 파는 청년, 시간 맞추어 달려오느라 숨을 헐떡이던 습 여, 많은 사연이 있는 아이들(나보다 나이가 많은 학생도 있지만 나는 선생 그들은 학생이기에 우리는 그리 불렀다)이었지만, 그들은 항상 우릴 행해 웃고 있었다. 래보다  검정 교복을 소중히 입난초들은 꿈을 꾸고 있었다. 내일은 오늘보다 나아지리라...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 10언저리에 끝나는 야학을 마치고 우르르 몰려가는 곳은 신당동 떡볶이 집다.

커다란 사각 철판 위에 푸짐한 재료를 한판 가득 쏟아붓고 뒤집고 섞어대면 떡볶이가 완성된다.

행복한 늦은 저녁이자 야참이다.

헐레벌떡 막차 버스를 타면 통금 전에 집에 도착한다.

그 시절 난초들은 그렇게 또 꽉 찬 하루를 보냈다. 


우리의 열정이 가득했던  야학에서 나는 내 일생에 가장 소중한 인연을 만났다. 나는 지금 그 사람과 함께 소파 위에 앉아 '난초'사진을 보며 그때 그 거리를 다시 한번 거닐고 있다. 책자 한 권으로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그 시절의 인연을 여전히 기억하고 함께 나누는 우리는 소망한다.

우리의 인연처럼 난초들의 소중한 꿈도 계속 이어지기를...

우리 모두의 내일이 오늘보다 나아지기를...


(이미지 출처 : pixabay)(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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