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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별 Jan 26. 2022

누구에게나 바닥을 치는 순간이 온다


무방비 상태로 바닥에 내팽개쳐진 기분.

나락으로 끝없이 침전하는 느낌.

인생의 밑바닥을 쳤다는 직감.


바닥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끝이 아니라는 걸 알아버렸을 때의 참담함.


30대쯤 되니 인생 좀 알 것 같고, 경험도 좀 했다 싶었는데, 40대에 들어서고 뒤를 돌아보니, 명료해지는 게 있었다. 인생은 단 한순간도 알 수 없고, 그 무엇이든 자만할 수 없다는 거였다. 불운은 언제나 준비되지 않은 순간에, 내가 가장 나약한 순간에 불현듯, 일시에 찾아든다는 걸 말이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은 반드시 찾아온다는 것도.

그래서 언제나 중도를 지키며 사는 것이 가장 어렵지만 중요하다는 사실이었다.


인생의 밑바닥을 쳤다는 직감.

 

내게도 그런 날들이 있었다. 주가가 곤두박질치듯 연일 하한가를 치며 쭉쭉 떨어지는 걸 바라보기만 하며 좌절해야 했던 날들, 무력감을 느끼고 열패감을 느꼈다. 제일 먼저 일에서 악재가 찾아왔는데, 일을 해도 돈을 받지 못하거나 적당한 금액을 받지 못했고, 일 년에 반 이상을 원치 않게 쉬게 되는 날이 이어졌다. 사랑하는 사람이 상처를 줬고, 믿었던 사람에게 신뢰를 잃었다. 부모님의 건강에 이상이 생겨 집안에선 근심이 생겼다. 악재가 또 다른 악재를 끌고 들어와 나를 우롱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럴 때 가장 힘들었던 건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는 거였다. 바닥에서 기어올라가기 위해 무엇부터 해야 할지, 나를 도와줄 사람이 누구인지, 누구에게 손을 내밀어야 할지 확신이 없었다. 나의 불행을 누가 책임지거나 해결해주지 않았다.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들은 물론 있었지만, 거기까지였다. 그들이 해줄 수 없는 게 더 많았다. 남들과의 비교가 시작됐고, 열패감은 증폭됐다. 크고 작은 패배감들이 모여 나를 더 갉아먹었다. 외롭다는 감정이 우울을 초래했고, 불면증을 가져왔다. 극심하게 외로웠다.


'내 인생만 이렇게 힘든 걸까' ' 왜 상황은 더 나쁜 쪽으로만 흘러갈까' '지금의 우울은 언제 끝나는 걸까, 끝나기는 하는 걸까' 아주 깊은 바다에 쪽배를 탄 내가 혼자서 표류하고 있다는 기분... 언제 풍랑이 나타나서 배를 뒤집을지 모른다는 불안. 차가운 물속엔 보이지 않는 심연만 존재하리라는 막막함. 까만 밤, 어두운 망망대해에서 윌슨도 없이 오직 혼자라는 생각. 그것은 외롭다는 감정을 넘어 두려움의 감정이었다. 심리적인 자기 방어선이 무너지면서 무기력함이 자아를 장악한 듯했다. 그때의 나를 지금 돌아보면 가여워서 안아주고 싶다.


현실적으로, 감정적으로 가장 최악이라고 느끼게 되는 상황은 누군가에겐  짧게 지나갈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길고 험난하게 머물기도 한다. 이럴 때는 감정 컨트롤이 쉽지 않기 때문에 별일 아닌 일에 큰 의미를 두면서 깊은 우울에 빠지기 쉽다. 그래도 더 깊은 바닥으로 스스로 걸어내려 가진 않아야 하는데, 중심을 잡고 버티기가 어렵다. 누구에게나 밑바닥의 시간은 있고, 그럴 때 애써 바닥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기보단 그저, 풍랑이 잘 지나가기를 기다리라고 말해 주고 싶은데, 완전 바닥인 사람에게, 이 말이 과연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다.


그때 나는 내게 찾아온 불안과 외로움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사람에게서 희망을 찾았던가, 일에 몰두했던가, 결국 시간에 맡겼던가. 극복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지금은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다. 다만, 무기력한 내가 잡고 놓지 않으려 애썼던 건, 이것 역시 끝이 있을 거라는 아주 미약한 희망이었다. 지나갈 거라고. 지나고 나면 다 별 게 아닌 게 되는 거라고. 그러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서 이 어두운 풍랑이 지나가기를 기다려보자고. 그리고 그때 내게 닥친 불운은 한번 무섭게 내리치고 끝나는 폭우 같은 게 아니라, 끝날 듯 끝나지 않는 긴 장마와 같이 오래 이어졌다. 비에 젖은 마음은 그 시간만큼 축축했고, 눅눅했다. 장마가 끝난 후에도,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습도 가득 찬 방 안의 온도는 얼마간 지속되었지만, 서서히 적정온도가 되었다.


그리고 난 후에야 나는 밖으로 나와 맑게 개인 하늘을 보고 햇살을 쪼이며 다시 세상을 향한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것 같다. 바닥에 있을 때는 왜 하늘이 보이지 않을까? 고개를 들 여유조차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럴 때 한 가지만 기억했으면 좋겠다. 누구에게나 바닥을 치는 순간은 온다는 것, 내게만 인생이 가혹한 게 아니고, 그냥 그럴 때가 있다는 것, 그 와중에도 아주, 아주, 조금씩 우리는 위로 올라오는 중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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