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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별 Dec 09. 2022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그저 나이기에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같은 나’일까?

지난날의 후회와 나에 대한 연민이 쌓인 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어떤 사람일까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스무 살 때 나는 이십 년 뒤 내가 이런 모습일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그때 꿈꿨던 대로 나는 몇 년 후, 방송작가가 되긴 했다. 당시의 내게 방송작가란, 그저 환상 속의 직업일 뿐이었다. 지금처럼 매체가 다양하지도 않았고, 작가의 수가 훨씬 적었기 때문에 희소성이 큰 직업이었다. 그때 나는 방송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진짜 완전 멋있고,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후에 아니라는 걸 완전하게 알게 되지만!) 방송작가가 되기 위해서, 손수 아르바이트를 해서 방송아카데미에 들어갈 비용을 마련하고, 어렵게 방송작가가 되었을 땐, 수없는 밤샘과 열정 페이에도 꿋꿋하게 버텨냈다. 청춘을 다 갈아 마실 기세로 나는 작가 일에 매진했다.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어렸고, 패기 넘쳤고, 더 불안했으며, 더 연약한 존재였다. 지금이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넘길 일들 앞에서 고심했고, 아파했고, 두려워했다. 가끔은 그때의 내가 조금 가여워서 오랫동안 안아주고 싶어 진다. 너는 앞으로도 계속 너의 길을 갈 것이니 너무 불안해하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만큼 해 나가면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내가 될 줄 알았을까?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어떤 면에서는 강해지고, 그래서 무식하게 용감하고, 그때는 흔들렸던 수많은 일들에 의연한 태도를 보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불안하고 나약한 존재다. 많은 일들을 겪어왔지만, 지금도 여전히 풀지 못하는 것들이 많고,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아서 슬프다. 인생 살아볼 만큼 살아봤다고, 어리석게도 자만했는데, 살아봤다고 다 알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앞으로도 알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이 펼쳐질 것 같아 두려운 걸 보면, 아마 죽을 때까지 그럴 것 같다.


지금의 나를 미래의 내가 본다면, 역시 오랫동안 그저 가만히 안아주고 싶을 것이다. 네 인생을 살아내느라 고생 많았다고, 너는 앞으로도 너의 인생을 갈 것이고, 그 속에서 행복한 순간들도 많이 맛볼 것이니 조금만 더 기대를 가져보라고.   

   

과거의 수많은 경험들과 선택들이 쌓여 만들어진 ‘나’라는 인간을, 숱하게 맘에 들지 않는 순간에도, 또 맘대로 되지 않는 무한한 순간에도 조용히 응원해 주고 싶다. 지금은 응원이 필요한 순간.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그저 나이기에. 나를 믿는다. 믿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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