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몇 번씩 스마트폰의 일정표를 확인하는 습관이 있다.(프리랜서로 일하기 때문에 직장인에 비해 일정이 불규칙하다.) 일을 해야 하고 보내야 날이 들쑥날쑥하기 때문에, 행여나 할 일을 놓치거나 빠뜨리는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함이다. 빽빽하게 일정이 있는 주도 있지만, 한 주에 이틀 정도만 일을 해도 되는 널럴한 주도 있다. 올해는 일을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만 하고 있기 때문에, 매일매일 숨 막힐 정도의 일정이 잡혀있지는 않고, 개인 시간이 더 많은 편이다. 하지만, 느슨한 일정에도 어느 정도의 루틴이 있다. 가령 일주일에 세 번은 요가를 한다거나, 하루 중 볕이 좋을 때 집 앞 산책로를 40분 정도 걷는 일 등. 또 대본을 쓴다거나 하는 일은 대부분 점심 전에 시작해서 해가 질 때는 노트북에서 끄고, 저녁 시간은 온전히 휴식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하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루틴이다. 매일매일 9 to 6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면서, 주말은 또 칼 같이 지키려고 한다. 주 5일은 일상 루틴을 따라가되, 주말은 더 늘어져도 좋다고 스스로에게 허락해 준다.
금요일은 일주일에 세 번 가는 요가도 없는 날이다. 오전 10시 요가 수업에 가기 위해 9시부터 준비하는 행위가 생략된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오전 일정이 프리하다. 오전에 뭐가 없다는 사실 하나로 목요일 밤부터 묘한 해방감이 솟아난다. 무리한 약속은 스스로 하지도, 누가 걸어오지도 않는 심심한 금요일. 아무 이벤트가 없는 하루가 될 걸 알지만,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하루가 펼쳐질 거라는 게 왜 그리 안심이 되는 걸까.
나는 오늘 그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고 혼자서 하루를 보내게 될지도 모른다. 빵집에 빵을 사러 갔다가 포인트를 적립할 거냐는 직원의 물음이 누군가와 처음 대화를 하게 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혼자 아침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거나 책을 보고,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열었다 닫는다. 그 흔한 카톡 하나가 오지 않아도 좋다. 나는 이번 한 주에도 내 할 일을 문제없이 끝냈고, 밥벌이를 놓지 않았으며, 하루하루를 잘 살아냈으니까.
나는, 진심으로,
이런 타격감 1도 없는 하루가 좋다.
타인으로부터 상처받을 일도, 과하게 스트레스받을 일도 없는, 흘러가는 대로 흘러가는 시간들. 내게 주어진 시간을 마음껏 소비하기에 나의 골방은 꽤 안전하다. 그런데, 이 골방 안에선 진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하다. 관계는 단절되어 있고,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은 희미하다. 내 마음에 타격을 주는 그 어떤 물리적, 화학적 반응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안전하게 느껴지는 것들이 사실은 모두 안전하지만은 않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타격을 주지도, 받지도 않으면서 계속 살아도 괜찮은 걸까.
너무 수동적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건 아닐까.
외로움을 모른척할 만큼, 혼자 있는 게 좋은 시간들에도 유효기간이 있지 않을까.
타격감 없는 하루를 동경하면서도, 정반대의 생각을 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모습 앞에서 고민이 많아진다. 너무 깊게 들어가지는 말자고 다독다독, 괜찮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