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안하다 Sep 30. 2023

가족이 떨어져 각자 있을 때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오늘 건넬 문장: 『마주, 최은미 (창비)』

가족 간 거리 두기를 통해 비로소 마련하는 한숨 돌릴 수 있는 각자의 공간.




가족은 가족성원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자주 하나의 총체로 보곤 한다. 그때 가족은 안녕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가족성원들이, 각자가 그리는 '가족'이라는 이미지에 한참 못 미치기 때문이다. 가족 안에서 딸이자 언니 역할을 담당하는 나 역시 그 역할을 100% 해내지 못하지만 가족들에게 불만이 쌓인다.

우리 가족의 제일 큰 문제는 경제력이다.

아빠의 부재 이후 가족의 경제력도 크게 기울어졌다. 월급으로는  생활비 충족하기도 모자라다. 이런 상황에서 가계를 꾸려가기 버거울 수밖에 없다.


현실이 무거워질수록 더 이상 다정함을 유지할 체력이 없어진다. 그러니 우리 가족 안에는 점점 고운 말보다 날 선 말들만 남았다. 어떤 날에는 귀가 감당하기 힘들다고 신호를 보내왔다. 그때는 정말 귀가 썩을 것 같아 양 손바닥으로 내 귀를 틀어막았다. 질릴 정도로 가족을 겪었다.


이런 날들이 반복될 때, 어떻게든 깨진 관계의 조각들을 붙잡으려 애쓰는 게 답이 아님을 알려주는 소설  『마주』.


마음이 수없이 헤집어지더라도 나는 수미와 서하가 겨우내 서로를 충분히 겪길 바랐다. 두려움을 껴안고서라도 마주 보길 바랐다. 수미가 실감할 수만 있다면 나는 언제까지고 내 공방 문을 열어놓을 수 있었다. 서하를 보고 있는 어른이 너뿐이 아니라고, 너만이 아니라고, 가족이어서 해줄 수 없는 게 있다는 걸 받아들이라고, 가족이 아니어서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걸 믿어보라고, 가족 아닌 그이들이 저기 있다고, 수미가 체감할 때까지 나는 언제까지고 말해줄 수 있었다.
 보라고. 서하는 해변에 가려 한다고. 마음을 접어버리지 않았다고. 너한테 계속 자기 자신을 얘기하고 있다고. 너한테 순응하지 않았다고. 너를 포기하지 않았다고.

 『마주, 최은미 (창비)』


같은 아픔을 겪었을 때 오히려 가족이 해줄 수 없는  게 있다는 걸, 나는 7년 전 아빠를 잃었을 때 느꼈다. 슬픔을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각자의 슬픔이 너무 커서 나의 요청은 묵살되었다. 그땐 이해할 수 없었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아빠를 잃어서 주변 친구들 중에 같은 아픔을 겪은 친구도 없고, 이야기할 수 있는 대상이 가족뿐인데 차단당했다. 그렇기에 나는 계속 '가족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가족이라면 아픔을 함께 나눠야 되는 거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그러나 그때 최은영 작가님의 첫 소설집  『쇼코의 미소』를 접한 후 그 생각이 바뀌었다.


슬픔을 억누르고 억누르다 결국은 어떻게 슬퍼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엄마였다. 평생을 함께 산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도 두려움 없이 눈물을 풀어낼 수조차 없는 사람, 울고 게워내서 씻어낼 줄을 모르는 사람, 그저 차가운 손과 발, 두통처럼, 보이지 않는 증상으로만 아픈 사람이 엄마였다.

『쇼코의 미소 (최은영)』 p.205

우리 가족은 어떻게 슬퍼해야 하는지 모르고, 펑펑 울지도 못하고 그 시절을 건너온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적어도 나의 슬픔을 응시했는데, 우리 가족은 제대로 그 감정을 마주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더 힘들었을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그동안의 서운한 마음이 사라졌다.  당시 가족이 보인 태도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네가 다시는 그렇게 고통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선배가 말했다. "네가 인생을 너무 심각하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라고 해도, 적어도 네가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지만, 소은아."

<먼 곳에서 온 노래>, 『쇼코의 미소 (최은영)』 p.205

더 나아가 다친 이들이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인물들을 만나면서 밝은 곳으로 가고자 하는 작가님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음대로 되는 일 없지만, 그럼에도 조금씩 나아질 수 있다는 응원을 받았다. 꼭 가족이 아니어도 나만의 안전한 공간을 찾을 있구나를 깨달았다. 그게 작가님들과 책들이라 참 다행이고 감사하다. 살다가 서럽고 눈물 나고 고통스러운 일들을 당할 때마다 책과 작가님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살게 했다.



가족이라고 항상 좋을 수만은 없고, 가족이 해줄 수 없는 걸 다른 이들이나 다른 것들이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나의 삶은 한층 평안해졌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가족들은 가족구성원의 삶을 자기 삶의 연장선으로 보고  힘들어하거나 실패하면 자기 잘못이라고 책임을 느낀다. 또 자신의 가치관과 맞지 않은 삶을 추구할 때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가족들에게 언제까지고 말해주고 싶다.  


가족이어서 해줄 수 없는 게 있어요.

가족이 아니어서 할 수 있는 게 있어요. 

가족은 같이 힘든 상황을 겪기에 똑같이 다정할 여유가 없어요. 저의 아픔을 다정하게 다독여주는 건 책과 친구들이에요.

내가 '읽고 쓰는 나'로 있을 수 있어 행복해요.  

제가 책과 친구들 덕분에 잘 살아갈 수 있다고 이렇게 계속 얘기하는 건 망했다고 주저앉기보다는  내가 나의 삶을 더 잘 만들어가기 위함이에요.


여러분들도 가족이 다정할 수 없을 때, 가족이 아니어서 다정할 수 있는 것들을 발굴해 봐요.




가족 구성원들에게 모든 걸 바라는, 그런 막중한 짐을 짊어지게 하지 말고 그냥 우리 인정해요. 가족이어서 해줄 수 없는 게 있다는 걸 받아들이고, 가족이 아니어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가족이 메꾸지 못한 부분을 채워봐요. 그렇게 자신이 살아가기 위해 꼭 있어야 하는 것들이 있는, 편하게 쉴 수 있는 자기만의 공간을 마련해요.


가족과 거리를 두는 건 서로를 포기하는 게 아니에요. 서로 숨 쉴 수 있기 위해서예요.

가족이 안녕하기를 바라서예요.



이전 16화 매 순간을 귀하게 살아갈 때 보이는 사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