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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하다 Oct 14. 2023

나의 후계동, 책의 바람 책방

오늘 건넬 문장: 『나의 아저씨, 박해영 (세계사)』

나의 필명이자 나의 바람에 대한 이야기.




한 여자가 있다.

병든 할머니와 단둘이 남겨져 하루하루 닥치는 대로 일하며 사채 빚을 갚아야 하는,

할머니를 위해 살인까지 불사한.


그 여자의 이름은 '지안(至安)'이다.


동훈:무슨 지 자야?
지안: 이를 지요.
동훈: 안은?
지안: …
동훈: …
지안: … 편안할 안이요.
동훈: …! (처지와 정반대인 이름. 짠하다. 그렇게 되길 바라는 마음에) 좋다… 이름 잘 지었다….

 『나의 아저씨, 박해영 (세계사)』


이를 지에 편안할 안, 편안함에 이르다는 뜻을 지닌 이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지안.

그런 지안 곁에 "옛날 일, 아무것도 아냐. 니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냐. … 이름대로 살아. 좋은 이름 두고 왜."라며 네가 먼저라고 말해주는 동훈이 있다.  

"망해도 괜찮은 거였구나,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망가져도 행복할 수 있구나…", 안심시켜주는 망가진 거 같은 동네에 사는 망가진 거 같은 사람들. 전혀 불행해 보이지 않아 좋은 후계동 사람들이 있다.


지안: 좋아서… 나랑 친한 사람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게, 좋아서….

동훈: 죽고 싶은 와중에, 죽지 마라, 당신은 괜찮은 사람이다, 파이팅 해라… 그렇게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멈춰서 긴 숨을 내쉬고) 숨이 쉬어저….
...(걷다가 조금 가뿐한 마음으로) 고맙다. 옆에 있어줘서.


그렇게 동훈과 지안은 서로의 편에 서서 부디 행복하길 바라고, 스스로의 행복을 다짐한다.

참 귀한 인연이다.


단 한 사람만 있으면 살아진다. 행복해진다. 

지안이가 동훈이 있어 그랬듯이,

동훈이가 지안이 있어 그랬듯이.




나에게도 동훈이 있다.

바로, 책의 바람 책방에 적힌 '오늘 건넬 문장'이다. 그 문장들을 간직한 책들이 꽂힌 '나만의 책장'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 덕에 살았다. 숨이 쉬어졌다.


나조차 나를 변호할 수 없을 때, 다정하게

나를 받아주었다.


혼자 오롯이 머물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되어준 작가님들 그리고 책들. 도닥임과도 같았던 시공간을 붙잡아 두고 싶었다. 여기서부터 '책의 바람 소리 머무는 책방' 이야기는 시작된다.


"망해도 괜찮은 거였구나,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망가져도 행복할 수 있구나…",


동훈을 포함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하루 끝에 모여 각자의 오늘을 도닥이는 동네, 후계동.

그렇게 하루를 잘 보내고 내일로 건너갈 수 있게 도와준다.


나에게 『책의 바람 소리 머무는 책방』은 후계동을 언어로 지은 시간이었다. 나만의 책장이 있는 책의 바람 책방이 '망가져도 괜찮다', 회복할 수 있는 후계동이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으로. 나를 살린 문장들이 쌓여, 우리 모두가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아지트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단 한 사람이라도 동훈이 같은 좋은 책을 만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단 한 사람에게라도 책의 좋음을 글로 증명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내게도 '후계동'이 생겼다.


나의 아저씨가 있어 살아졌고,

나의 후계동이 있어 행복해졌다.


책이 있어 살아진다. 

책방 안에서 행복해진다, 는 걸

이제는 안다. 든든한 내 편이 생겼다.




동훈: (E) 지안. 편안함에 이르렀나?
무리들과 가다가 동훈 쪽을 돌아보는 지안. 그러다가 다시 밝게 가는 얼굴 위로
지안: (E. 가뿐하고 차분한) 네. …(한 번 더) 네.
그렇게 밝게 가는 동훈과 지안의 모습.

 『나의 아저씨, 박해영 (세계사)』
나의 아저씨 16화, 다시 만난 동훈과 지안 (그림, 이유빈)


책의 바람 책방에 들린 여러분이 스스로의 행복을 다짐하며 책방을 나가는 순간이 책방지기의 언어로 지은 후계동이 마치 현실 후계동이 되는, 동화 같은 순간이 아닐까요. 어찌할 도리도 없이 나빠질 때 마음을 돌봐주는 여러분만의 동훈과 후계동을 발견하는 기적이 일어난다면, 이 이야기는 나름의 편안함에 이르도록 도와주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얼마나 고마울까요.  


느리고 오래 걸리더라도 필명을 닮은 이야기를 쓰면서, 필명대로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책의 바람 소리 머무는 책방 이야기는 여기까지 이지만 책의 바람 책방에서 여러분을 기다리며

또 다른 동훈이와 후계동을 닮은, 구하는 이야기를 다정한 언어로 짓고 있겠습니다. 책장에 담긴, 나를 구원한 책에게 받은 응원을 조금이라도 돌려놓을 수 있도록.


끝끝내 쓰고자 하는 이야기에 도착해,

누군가 편안함에 이르렀나? 물으면

누구보다 밝게 웃으며  "네"라고

대답하는 미래의 나를 자주 그려봅니다.


그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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