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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하다 Sep 23. 2023

매 순간을 귀하게 살아갈 때 보이는 사랑

오늘 건넬 문장: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고명재 (난다)』

용감하게 사랑하는 한 시인의 예쁜 마음을

한 번은 가져보는 시간.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그때 나는 한줌도 불행하지 않았다."라고 말하는 한 시인이 있다. 집이 너무 좁아 가족 넷이 누우면 어깨가 겹치는데도 "그게 정말이지 행복했다"라고 말하는 한 시인이 있다.


그 시인의 교수님은 너무 예쁜 마음은 술값을 내고 가져본다고 시창작수업에서 말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그날 술값은 제가 냈지요. 그 표현, 나 달라고 조르면서요. 여러분도 그러세요. 너무 예쁜 마음은 술값을 내고 한 번은 가져도 보셔요." 

나는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를 읽는 내내 만난 한 시인, 고명재 시인님의 예쁜 마음을 한 번만이라도 가져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술값을 낼 순 없지만.


그때 나는 한줌도 불행하지 않았다. 몸은 춥지만 겨울은 정말 따듯하구나. 사람과 사람이 포개지면 그게 보온이구나. 좋은 부모, 좋은 사랑은 그런 걸 해낸다. 캄캄한 환경을 넘어설 무릎과 용기를 주는 것.

 『스티로폼,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고명재 (난다)』


한 아이가 훗날 어른이 되었을 때 '그때 한줌도 불행하지 않았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하는, 그런 걸 해내는 좋은 부모, 좋은 사랑이라니.

그런 어른을, 사랑을 만난 시인님이 미칠 듯이 부러웠다.


그리고 좋은 어른이고 싶은 나는, 시인님을 만난 북토크에서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어른이 되려면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

그러자 시인님은, 자신의 어머니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살려고 노력한다고 말씀하셨다.

너는 기적을 알라고, 너는 매번 기적을 살라고. 내 인생은 험하고 아프기도 했지만 내게도 한순간 축복이 왔어. 엄마랑 밥 한끼 먹는 거. 그 흔한 게 얼마나 기적적인지 이제는 알아.

윤 4,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고명재 (난다)

"순간순간이 귀하고 기적적이라는  의도적으로라도 떠올리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헌신적으로 대하려고 노력하기.

실패하더라도 계속 반복해야 그나마 나아질  있다고 믿고 싶다고."


좋은 어른이 주는 좋은 사랑에 대해 들은 북토크 이후, 시인님 말씀을 되새기면서 이 책에 수록된 <스티로폼>을  다시 읽으니 다른 사랑이 보였다. 매 순간을 사랑할 줄 아는 아이가. 그렇게 기적을 사는 아이가.


겨울이 오면 커피포트에 물을 끓여 세숫대야의 찬물과 섞어 머리를 감아야 되는 상황에서, 나는 가족이 나란히 붙어 수다 떠는 행복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

부끄럽지만 "차갑다고, 차갑다고! 좁다고 좁다고!" 짜증 내는 내가 눈에 선하다.


나의 질문은 그런 좋은 어른이 되려면 가져야 할 태도였지만, 좋은 사랑을 하려면 가져야 할 태도로 치환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같이 지녀야 할 수 있는 사랑. 주는 어른도 받는 아이도 같이 지녀야 할 수 있는 사랑을 말이다.

매번 기적을 사는 이들이 하는 사랑이 좋은 사랑이다.


그렇게 천천히 '나'라는 사람이 그리 대단하지 않다는 걸 받아들이게 되었을 때 그 대신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남'이 참 많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별게 아니다, 나의 시도 별게 아니다, 하지만 나도 용감하게 사랑할 수가 있다. 세상에는 정말이지 아름다운 시와 소설이 많았고 또한 아름답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런 그들을 응원하고 좋아하고 사랑하다보니 시 쓰는 일도 더욱 행복해졌다. 매일 밑줄을 긋고 어떤 책에는 입술을 대었고 어떤 책에는 이마를 기대며 끝나지 말라고 말했다.

『검은 닭,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고명재 (난다)』


사랑하는 사람이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시인의 손에서 눈이 내리자 하늘이 '무채'로 칠해졌다. 아름답게.
오랫동안 사랑받은 시인은, 그 사랑을 함께 나누기 위해 '무채'로 칠해진 세상에 대해 쓴다. 이토록 용감하게 사랑을 주고자 하는 마음이 담긴 무채로운 책은 그 자체로 우리를 구하기 충분하다.
우린 볼 수 없어도 계속 사랑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랑하는 것들을 오래도록 함께 사랑하면서.
좋은 어른 좋은 사랑이 또 다른 좋은 시인과 좋은 사랑을 만든다, 기적적으로.

아낌없이 받은 사랑을 기록한 시인의 정한 글이, 좋은 어른이 되기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게 만든다. 용감하게 사랑할 수 있게 용기를 준다. 자신을 키운 비구니가 그랬듯이, 시인은 그걸 능히 해낸다.



퇴근길에 반려견과 마중 나와 환하게 웃으며 손 흔드는 엄마. 냉장고에 보관하기 번거로운 수박을, 너무 좋아하는 딸을 위해 여름 내내 사는 엄마. 브런치에 올리는 글을 기다리고 여러 번 재독 하는 우리 엄마. 그 사소한 순간에 존재하는 사랑을 이제는 놓치지 않고 싶다. 그게 얼마나 기적적인지를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용감하게 사랑을 하고 싶다. 능히 해내고 싶다.


고명재 시인님 덕분에 좋은 어른, 좋은 사랑을 만나고, 거기에 있는 아름다운 마음을 한 번이라도 가져볼 수 있었다. 이 기억을 가지고 래도록  것이다, 일상에서 마주한 작은 기적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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