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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하다 Sep 16. 2023

좋기만 해도 돼, 우린 어떻게든 살아갈 거니까

오늘 건넬 문장: 『각각의 계절, 권여선 (문학동네)』

너 어디로 들어와, 물으면 어디로든 들어와, 대답하는 '의젓한 사슴벌레 문답'을 통해 적어나가는 해방일지.




"모르겠다."


모르는 것 투성인 사람에게 누군가 알고자 하는 바를 얻기 위해 물을 때 질문은 힐문이 될 수 있다.

『각각의 계절』에 수록된 <사슴벌레식 문답>에서 정원을 추궁하는 부영이처럼.


"그렇게 좋기만 하다 아무것도 안 되면?"

"그렇게 느슨하게 꿈만 꾸다 아무것도 안 되고 평생 아마추어로만 살아도 행복하겠냐?"


이 대목을 읽어나갈 때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있던 정원이 된 것 마냥 부끄러워 우물쭈물하며 위축됐다.  


서점에서 파트타이머로 3일 근무하며 좋아하는 책을 맘껏 읽고, 나머지 시간에는 밑줄 그은 문장에 대해 쓰고 있는 하루하루. 정말이지 좋기만 하다.

이토록 좋지만, '아무것도 안 되면' 어쩌지에 대한 생각, '평균에 못 미치는 월급을 받는 청년'이라는 사회적 시선에 아예 무뎌진 건 아니다.

노후 보장이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 미래에 대한 생각을 되도록 안 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봤자 미래에 나는 '굶어 죽을 확률이 높은' 사람이니까. '평생 이렇게 살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매여으면 불행해질 수밖에 없으니까.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책이라는 세상에 발붙여 좋기는 하지만, 이 좋음을 남에게 설명할 자신은 없던 나에게 도착한 권여선 작가님의 '사슴벌레식 문답'.


너 어떻게 그렇게 잔인해?
나 어떻게든 그렇게 잔인해.
정원이 씩 웃으며 해보자는 건가, 했고 우리는 해보았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인간은 무엇으로든 살아.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는가?
강철은 어떻게든 단련돼.
너는 왜 연극이 하고 싶어?
나는 왜든 연극이 하고 싶어.
너는 어떤 소설을 쓸 거야?
나는 어떤 소설이든 쓸 거야.
정원과 나는 이런 대화법을 의젓한 사슴벌레식 문답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뒤집힌 채 버둥거리며 빙빙 도는 구슬픈 사슴벌레의 모습은 살짝 괄호에 넣어두고 저 흐르는 강처럼 의연한 사슴벌레의 말투만을 물려받기로 말이다.

『사슴벌레식 문답, <각각의 계절>, 권여선 (문학동네)』


이번 소설집에서 작가님은 각각의 시절을 기억하면서 두 번 살고 그 기억을 쓰면서 세 번  살 수 있음을 알려준다. 겨우 이만한 삶이지만 우리가 건너온 수많은 오늘을 기억하고 건너갈 미래를 다르게 고쳐 쓸 수 있기에 아직 희망을 버리기엔 이르다고 작가님은 말한다. 작가님이 그려내는 '다시 쓰고자 하는' 소설 속 인물들을 통해 우리는 위로받는다.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계절에 맞는 새로운 힘을 길어내시길 바랍니다.  


『각각의 계절』을 통해 전해준 작가님 당부대로, 의젓한 사슴벌레식 문답을 품고 스스로 문답을 주고받으며 지금 필요한 힘을 길어내보려고 한다.


"그렇게 좋기만 하다 아무것도 안 되면?"이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대답하지 못한 정원이와 그 시절 나를 대신해

"그렇게 좋기만 하다 아무것이든 돼."라고 대답해 본다. 


"그렇게 느슨하게 꿈만 꾸다 아무것도 안 되고 평생 아마추어로만 살아도 행복하겠냐?"라는 질문에는

"그렇게 느슨하게 꿈만 꾸다 아무것도 안 되고 평생 아마추어로만 살든 행복해."라고 답해 본다.


"너는 무엇으로 먹고살려고?"

"나는 무엇으로든 먹고살아." 

"너는 어떻게 웃을 수 있어?"

"나는 어떻게든 웃을 수 있어."

"너는 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

"나는 왜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

"너는 어떤 글을 쓰고 싶어?"

"나는 어떤 글이든 쓰고 싶어."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거미줄 같은 질문에서 벗어나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긍정하며 그것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마법 주문 같은, 사슴벌레식 문답.

쓰고 싶은 글을 쓰고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어떻게든 웃을 수 있는 나만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게 도와준다. 덕분에 나의 삶을 긍정하며 기꺼이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힘이 필요할 때 주문을 외운다, 사슴벌레식 문답이라는 주문을.




여러분들도 혹시 답하지 못하고 빈칸으로 남겨둔 채 자신의 선택을 의심하며 그렇게 지나 적이 있다면 사슴벌레의 말투를 물려받아, 다시 써나가시길.

삶에 채워놓고 싶은 단어를 넣어 '나는 어떻게든 돼, 어떻게든 할 수 있어', 라고 의연하게 답해보시길.  

더 이상 주눅 들지 말고 자신만의 힘을 잘 길어내, 각자의 계절을 환하게 맞이할 수 있길 기대해 봐요.

 

그렇게 각각의 시절을 어떻게든 잘 살아, 우리.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하면서. 그렇게 좋기만 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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