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안하다 Sep 10. 2023

한발 늦은 후에야 비로소 나란히 맞추어보는 발걸음

오늘 건넬 문장: 『걸어도 걸어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민음사)』

잃은 것은 잃은 채로,

언제나 한발 늦은 남겨진 자들은 

'거기 있었다'는 기억을 가지고 오늘도 걷는다.




 '죽음', '상실'에 대 생각하기 시작한  사랑하는 할머니 때문이었다. 소중한 할머니와 나 사이에 딱 한 가지 걸림돌은 50살이 넘는 나이 차이였다.

늘 그래왔듯이 할머니와 친구처럼 지내고 싶은 나에게, 맞닥뜨리고 말 할머니와 이별의 순간이 가장 큰 걱정이었다. 부모님은 해당되지 않았다. 

영화 <걸어도 걸어도>를 처음 봤을 때만 해도, 부모님이 돌아가실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이 영화의 메시지인 '인생은, 언제나 한 발씩 늦다'는 그다지 나에게 와닿지 못했다.


그러나 몇 년 후, 의 일상에

당연하게 존재해야 할 아빠가 사라졌다.


그때 나는 이 영화의 대사가 떠올랐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인생은 언제나 한 발씩 늦는구나.'

같은 아픔을 겪은 주인공을 다시 만나야만 했다. 이번에는 영화 말고 민음사에서 나온 소설, 『걸어도 걸어도』를 읽었다.


언젠가 그분들이 먼저 돌아가시리라는 것은 물론 알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언젠가'였다. 구체적으로 내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는 상황을 상상하지는 못했다. 그날, 무언가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났던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수면 아래에서는 여러 가지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고, 나는 이를 눈치채고 있었다. 그럼에도 모른 척했다. 나중에 분명히 깨달았을 때는, 내 인생의 페이지가 상당히 넘어간 후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때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미 돌아가신 뒤였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상당히 긴 세월이 흐른 것만 같지만,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이라든가 지금이라면 좀 더 이렇게 했을 텐데라든가……. 이제 와서 그런 감상에 젖을 때가 종종 있다. 그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시간과 함께 가라앉아서, 오히려 흐름을 가로막는다. 잃어버릴 것이 많았던 하루하루 속에서 한 가지 얻은 것이 있다면, 인생이란 언제나 한발 늦는다는 깨달음이다. 체념과도 비슷한 교훈일지도 모른다.

『걸어도 걸어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민음사)』


'해주지 못한 게 너무 많은데'라는 후회에서 <걸어도 걸어도>는 출발하지만 반대로 밝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말한다. <걸어도 걸어도>가 결코 가볍지 않은 가족 간의 관계를 그리지만 우리에게 잔잔한 위로가 되는 이유는, 상실 이후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우리 일상을 그대로 언어화하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죽어가는 과정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있는, 삶의 한순간을 '남겨진 사람들'의 시각에서 그리는 감독님. 감독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한발 늦은 이후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로소 부모님과 나란히 걸어보려는 노력을 시작, '분명 있었던' 그들을 기억하면서.



늦은 후에야 우리는 가족이니까 더 모를 수 있음,

"가족끼리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네가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어?"라는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게 되면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폭력이 됨을 깨닫는다.


둘도 없이 소중하지만 여전히 치고받고 싸우기도 잘하는, 같은 아픔을 나눈 가족과 함께하는 하루하루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고 . 

거듭 실패하더라도.




인생의 페이지에 아빠가 더 이상 적히지 못한다는 사실을 가까스로 인정하고 난 뒤 아빠를 붙잡기 위해 애쓰는 시간이 계속됐다,

꿈에서.


"글쓰기는, 구원하고 죽음을 극복하는 데 이용됩니다. 그 자신의 죽음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말입니다. 그들을 위해 증언하면서, 그들을 영원하게 만들면서, 그들을 비기억 밖으로 끌어내면서 말입니다."

-롤랑 바르트, 변광배 역, 『롤랑 바르트, 마지막 강의』 중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은 물론 『애도 일기』에서 엄마에 대한 기억을 기록한 롤랑 바르트 작가님을 따라 나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아빠를 나만의 언어로 기록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것만이 나의 아빠를 붙잡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마지막으로 배웅했던 엄마의 뒷모습을 담은 감독님. 나는 중환자실에서조차 문병 온 에게 장난을 치는 아빠의 모습이 오래도록 다.


-간호사와 눈 맞추고 있는 아빠를 문밖에서 보고 있는 나. 

-내가 들어가자 눈을 감고 자는 척하는 아빠.

-"아빠 내가 밖에서 안 자는 거 다 봤거든?"

-그러자, 씩 웃으며 눈 뜨는 아빠.  


이처럼 삶이랑 잘 지내려면 힘든 날들을 안아주는 농담과 웃음으로 무장해 가벼워줘야 된다는 소중한 사실을 알려준 아빠를 담고 싶다. 아픈 채로 웃음을 아낌없이 주고자 한 아빠가 있었다고 증언하고 싶다. 나의  속에서 만큼은 '아빠가 기 잘 있구나' 할 수 있도록, 아빠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마음껏 재생시키고 싶다.




글 속 아빠를 만나 남겨진 가족들과 함께 추억하며 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빠를 기억하며 웃는 이들이 있다면 아의 인생도 꽤 괜찮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오늘입니다.


저는 아직 더 걷고 싶습니다, 아빠랑.

이제는 나란히 나란히 발맞추어.

이전 13화 슬프면 슬퍼해도 된다, 당신 잘못이 아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