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건넬 문장: 『벌새, 김보라, 최은영 외 3명 (아르테)』
가끔 발작처럼 화를 내거나 눈물을 터뜨리기라도 하면 ‘쟤는 성격이 왜 저럴까, 앞으로 사회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어른들의 근심 섞인 충고만을 들었을 뿐이다. 겨우겨우 참았던 감정이 내 통제를 벗어나 그렇게 분출되고 난 뒤에는 언제나처럼 자기혐오가 밀려왔다. 아무도 제대로 받아 주지 않는 감정은 언제나 추하게 느껴졌으니까. 그럴 때 영지 선생님 같은 누군가가 내게 다가와 은희를 바라보듯 나를 그저 잠시라도 바라봐 주었다면, 내 이름을 그렇게 다정하게 불러 주었다면 나는 그 사람을 영원히 잊지 못했을 것이다.
고통은 언제 고통이 되나. 누군가의 시선으로, 공감으로 고통은 고통이 된다. 영지 선생님의 눈빛을 통해서 은희의 고통은 비로소 고통으로 이해받는다.
『그때의 은희들에게, <벌새>, 최은영 해설 (아르테)』
아무도 제대로 받아 주지 않는 감정은
언제나 추하게 느껴졌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