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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하다 Aug 19. 2023

불행이 찾기 전에 행복을 찾아 떠나는 작은 거인들

오늘 건넬 문장: 『디스옥타비아, 유진목 (알마)』

단지 살아 있기에 볼 수 있었던 것들.

그에 동하는 마음을 지녀 불행 중 행복 수 있는

우리네 작은 거인들. 




"너는 뭐가 그렇게 좋니?"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하면서 살고 있지만 돈을 잘 벌지 못하는 내가 종종 듣는 질문이다.


"너 옛날에는 승부욕 장난 아니었는데... 지금은 왜..."

그렇다. 어릴 때 같이 영어 공부하던 한 살 차이 나는 언니가 먼저 문제를 풀어도 나는 울었다, 분해서. 즐겁기 위해 하는 윷놀이에서 져도 울었다. 그 정도로 학창 시절에 욕심 많고 승부욕 강한 아이였다.


나도 지금의 내 모습을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나의 하루를 좋아하는 문장으로 채워가며, 소소한 일상에 만족하며 사는 나를.


생각해 보면 고등학교 올라갈 때부터였던 거 같다. 특목고 진학에 실패한 나는 이미 '죄송하지만 불합격입니다'라는 문구를 6번 정도 만났다. 그때 타격이 제일 컸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그 누구도 어떻게 잘 실패하는지 알려주지 않으니까. 실패하면 모든 게 끝이니까. 자신감은 급격히 떨어지고, 제일 중요한 고등학생 시절에 나는 그만 공부에 흥미를 잃고 말았다. 그러고 나니 고3 때 역시 '불합격' 통보를 6번 정도 받고, 재수생 시절에 내가 다닌 대학교에서 유일하게 '축하드립니다. 합격하셨습니다.'라는 문구를 받을 수 있었다. 그것도 간신히 예비로.


이 과정을 거치고 나면 허리에 손을 얹고 하늘을 노려보며 얘기하게 된다.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세상이 나랑 잘 맞지 않음을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다. 다 같이 하는 입시가 나에겐 어려웠기 때문에, 난 달라져야 했다.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남들은 그때 재수해서 성적이 조금 좋아졌으니, 삼수하라고 권했다. 오히려 난, 나에게 처음으로 합격 문구를 구경할 수 있게 해 준 나의 학교가 너무 감사했고 고마운 마음으로 대학생활 내내 행복하게 다녔다.


답을 찾기 위해 무진장 애를 썼던 지난날,

철학 수업 첫 OT때 교수님은 "철학에서 정해진 답은 없다. 인생에 대해 스스로 자신만의 답을 찾아된다"라고 얘기하셨다. 그 순간 나는 나의 전공을 사랑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걸 느꼈다.

'행복무엇인, 삶은 무엇인' 수많은 논쟁을 한 철학자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나를 힘들게 하는 나의 인생에 대해서도 사색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미 중학교 시절부터 모범 답안처럼 정해진 길은 나에게 적합하지 않음을 배웠기 때문에, 주체적인 삶을 살아보자고 다짐했다. 나를 좋아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래도 조금은 화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 고민이 쌓여 지금의 내가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나의 지금이 좋다고, 다른 누군가에게 이렇게 살아보라고, 말할 생각은 아니다. 그럴 수도 없고.

다만, 성공하는 방법만 앞다퉈 알려주는 무한경쟁 시대에 실패했을 때 미워 죽겠는 나와 잘 화해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하나의 예를 들고 싶을 뿐이다.


"살아오는 동안에 나는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의 신이 되어야 하고 스스로 행운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쁜 일은 어쨌든 생기거나 안 생기거나 하는 것이었다. 누구도 그걸 막을 수는 없다. 다만 우리는 신이 될 수 있을 뿐이다."

『디스옥타비다』 쓰신 유진목 작가문장 나오는 '작은 거인들'의 이야기를.


만약 삶으로부터 충만한 감정을 얻고 싶다면 우리에게 당장 대가를 바라지 않는 것을 원하라고 말하고 싶다. 이를테면 날씨 같은 것. 흘러가는 구름 같은 것 말이다. 어느 날 나는 우연히 올려다본 하늘에서 달빛에 투명하게 빛나는 기이한 구름들을 보았다. 내가 살아 있어서 이런 구름들을 다 보는구나 하고 시시한 생각에 한참을 잠겨 있었다. 한밤중의 다시없을 창문 밖의 광경은 내가 단지 살아 있기 때문에 볼 수 있었던 것이었다. 물론 창문 밖을 보는 것만으로도 생동하는 마음을 지녀야 할 테지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나의 마음을 좋아한다. 구름을 따라 움직이는 나의 마음을.

『디스옥타비아, 유진목 (알마)』


지극히 평범한 일상 다시 보고, 해석한 후에 다시 쓰기, '내가 살아 있어서'로 시작하는 문장을.


"사람들은 각자의 슬픔을 품고 살아간다. 슬픔은 없애버려야 할 것이 아니다. 상처는 낫고 슬픔은 머문다. 우리는 우리에게 머물기로 한 슬픔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슬픔은 삶을 신중하게 한다. 그것이 슬픔의 미덕이다."

유진목 작가님의 또 다른 책, 『슬픔을 아는 사람』 92쪽에 나오는 문장은 '내가 단지 살아있기 때문에' 작가님이 걸어간 문장을 따라 천천히 소요(逍遙) 하고 나를 마주 보는 시간 충분히 소요(所要)할 수 있었던 거다.
 '내가 살아 있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되고 싶은 인간상이 너무나도 닮아있 작가님을 걷다가 자주 마주칠 수 있었던 것이다.


부연 설명필요 없이 나의 마음이 응시하는 것들을 따라 나만의 보폭으로 걸어가고 싶다. 걷고 또 걷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 그 시간들만으로도 충분하게 여기는 것이 가능 유진목 작가님이 그린 '자기 스스로의 신'이자 '불행 중 행복도 할 수 있는 작은 거인'이 되어 웃고 있는 나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넌 뭐가 그렇게 좋니?라고 또다시 묻는다면,

이룬 것 없어도 사소한 걸 응시하면서 행복을 찾아 나서는 가 좋다고, 이것 또한 가증스러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차선책으로 선택한 우리네 작은 거인들만의 방법이라고 우문현답을 내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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