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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 세 알

by 은섬


복숭아가 사라졌다!


우리 집에는 냉장고가 두 대 있다. 다른 집처럼 기본 냉장고와 김치 냉장고 조합이 아니라, 그냥 냉장고 두 대다. 주방에 있는 큰 냉장고, 그리고 건너방에 있는 237L짜리 작은 냉장고. 무려 2008년 생산 제품으로, 남편이 결혼 전부터 쓰던 것이다. 고장도 안 나고, 딱히 불편한 점도 없어 계속 사용하고 있다.


그 작은 냉장고 문짝에 넣어둔 내 복숭아가 사라졌다. 작은 냉장고는 사실상 나만의 비밀 간식 창고다. 남편이 수시로 여는 주방 냉장고에 주전부리를 넣어두는 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랄까? 그런데 방심이 문제였다. 내 간식 창고 속 복숭아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범인은 멀리 있지 않았다. 남편이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지난 월요일, 혼자 시댁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만난 어머님은 내게 이것저것 과일을 깎아주시더니, 냉장고에서 주섬주섬 복숭아를 꺼내신다. 날 보며 웃으시며 “줄까?” 하신다. 누가 봐도 시부모님 드시려고 사둔 과일인데, 만난 김에 주고 싶으신 거다. 아까워하는 마음은 전혀 없이.


그 마음이 고맙고 또 죄송해서, 조금만 달라고 했다. 마침 복숭아는 다섯 알이었고, 어머님은 “그럼 가족이 하나씩 먹어” 하시며 세 알을 내 가방에 넣어주셨다. 그날 저녁, 남편과 아이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 나는 공표했다. “어머님이 복숭아 주셨어. 세 개니까 각자 하나씩 먹는 거야.”


그런데 왜 남편은 주방 냉장고 속 복숭아는 놔두고, 하필 내 간식 창고 속 그것을 꺼내 먹었을까? 제대로 안 들은 거다.


최근 몇 년 사이 남편의 청력은 묘한 방향으로 진화했다. 소파에 누워 있으면 내가 무슨 얘길 해도 전혀 못 듣는다. 일부러 크게 불러 눈을 마주친 다음에 해야 한다. 물개, 바다사자, 수달, 족제비 같은 물속에서 귀를 닫을 수 있는 근육이 발달해 있다고 한다. 나는 가끔 남편의 귀에도 그런 근육이 있는 게 아닐까, 의심스럽다. 물론 나의 잔소리를 차단하기 위한 남편 나름의 궁여지책일지도.


나는 소리를 빽 질렀다.
“내가 냉장고 서랍에 어머님이 주신 복숭아 있다고 했잖아? 왜 하필 작은 냉장고 걸 먹어?”
남편은 눈만 껌뻑거렸다. 그날 내가 한 말 중 아마도 ‘복숭아’만 들었겠지. 귀가 막혀 있었을 텐데, 그거라도 들은 걸 용하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복숭아가 눈에 띄자 아무 고민 없이 먹었을 것이다. 홍시 맛이 나서 홍시 맛이 난다고 했는데, 어찌 그걸 알았느냐며 억울해하던 장금이 같은 표정.


남편은 먹는 걸 좋아한다. 나는 밥만 먹으면 간식은 잘 안 먹는 편이라, 먹는 속도도 다른데 남편은 그런 건 염두에 없다. ‘모자라면 더 사면되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만두면 혼자 다 먹어버린다. 나도 치사해지고 싶진 않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몫을 지킬 수 없다. 안 그래도 평소 ‘아내’라는 이름으로, ‘엄마’라는 이름으로 양보와 포기가 몸에 밴 나였다. 그래서 몫을 정해둔 거였다. 그런데 엉뚱한 복숭아를 먹은 것도 모자라, 두 개나 먹었네? 그건 누군가 복숭아를 못 먹는다는 소리 아닌가.


“내가 하나만 먹으라고 했잖아?”
그럴 때마다 남편의 대답은 늘 똑같다. “몰랐어.”


남편 입장에서는, ‘돈도 벌어오는데 복숭아 하나 더 먹었다고 이 난리야? 치사하다, 서럽다’ 생각할지도 모른다. 또 누군가는 ‘똑같은 복숭아인데 뭘’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아니다. 둘은 전혀 다른 복숭아다. 게다가 작은 냉장고 안에는 박스로 사놓은 다른 복숭아도 있다. 그런데도 굳이, 나만의 복숭아를, 그것도 두 알이나 먹은 남편 때문에 나는 정말 속상해서 눈물이 찔끔 날 뻔했다.


얼마 전 친정에 갔을 때였다. 부모님이 큼지막한 복숭아를 내미셨다. 내가 가기 전날, 집에 먹을 게 없다며 일부러 유성장까지 다녀오셨단다. 시장 바닥을 모두 다니면서 가장 큰 복숭아를 골라 사셨다고. 물복숭아는 한 입 베어물 때마다 사르르 허물어지며 단물이 줄줄 흘렀다. 그게 꼭 부모님의 애정 같아서 얼마나 달갑던지. 먹고 남은 복숭아를 부모님은 집에 가서 먹으라며 챙겨주셨고, 나는 다람쥐처럼 그 복숭아를 작은 냉장고에 숨겨둔 거였다.


요즘은 입맛이 없다. 날은 덥고, 신경 쓸 일이 많아 몸무게 앞자리가 바뀔 만큼 살이 내렸다. 어릴 적 시골에서는 더위를 먹는 일이 흔했다. 에어컨도 없던 그 시절, 할 일은 태산이었기에 마냥 굶을 수 없는 엄마는 찬물에 밥을 말아먹으며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물이 제일 맛있다.” 지금의 나는 이렇게 말한다. “복숭아가 제일 맛있다.”


이제 엄마아빠의 복숭아도, 시어머니가 주신 복숭아도 모두 사라진 지금, 시골에 다녀온 친구가 ‘감자, 양파, 마늘, 복숭아’를 얻어 왔다며 필요한 게 있느냐고 물었다. 고민할 것도 없이 나의 선택은 복숭아였다. 노지 황도복숭아는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다섯 개를 받아서 남편 몫으로 두 개를 줬다. 아이는 최근 생긴 복숭아 알레르기 때문에 제 몫이 없다. 내 몫은 다시 간식 창고로 들어갔다.


오뉴월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데, 아이가 감기에 걸렸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아이에게 뭐라도 대령해 보려고 뭘 먹고 싶냐 물었더니, 복숭아를 찾는다. 혹시 몰라 황도를 뽀득뽀득 닦아 껍질을 벗겨줬더니, 입술이 붓지 않는다. 괜찮단다. 꽤 입맛에 맞았는지, 하나 더 달라고 한다. 내가 하나 맛보고, 남은 복숭아 두 알은 아이의 뱃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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