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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유리 Sep 20. 2024

알면 사랑하게 된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자연, 특히 식물에 대해 아는 바가 없는 내가 최근 몇 년간 동물에 흥미를 보이기 시작한 데에는 모종의 서사가 있다. 우리 집 아이들이 청소년이 되고 나자 길에서 만나는 갓난쟁이들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유튜브나 SNS 등에서도 그런 유아들의 영상을 찾아서 보게 되었다. 알고리즘은 비슷한 영상을 계속 소개해주었는데 그중 아기와 동물이 함께 교감을 나누는 영상도 있었다. 그와 연결되어 또 아기 없이 동물만 있는 영상도 추천이 된 것이다. 핸드폰을 들고 영상을 보며 낄낄대는 건 채신머리없어 보이지만 귀여운 생명체들의 장난기 어린 행동을 보는 것은 나의 작은 행복이 되었다.     


주인이 필요로 하는 것을 바로바로 갖다 주는 강아지 채널은 구독도 했다. 또 판다곰 푸바오가 중국으로 돌아가기 전 우리나라의 동물원에 있을 때 사육사 할아버지와 교감하는 영상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다. 때로 임시 보호를 했다가 해외로 입양 보내지는 강아지의 사연이 나오면  헤어짐의 순간에 눈물을 닦아내기도 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알게 된 동물 중 하나가 바로 ‘갈비 사자’다.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실내 동물원에서 햇빛도 못 보고 7년 동안 갇혀, 제대로 먹지도 못해 갈비뼈가 다 드러난 사자가 있다는 뉴스를 접하고 가슴이 아려왔다. 이후 시민들의 제보와 요청으로 시립 청주 동물원이 그 사자를 데려가기로 결정했고 겁 많은 사자를 위해 매우 조심스레 절차를 진행한 뒤 이제는 청주 동물원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바람이’라 이름 지어진 이 사자 옆에는 원래 이 동물원에서 보호되던 암사자 ‘도도’가 함께 살게 되었고 최근에는 기존 동물원에서 함께 있던 바람이의 친딸 ‘디’도 합류해 알콩달콩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이 소식을 접한 뒤 갑자기 바람이가 너무도 보고 싶어졌다. 푸바오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때도 영상을 보는 것으로 만족했는데 이상하게 바람이의 건강해진 모습은 꼭 내 눈으로 직접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게다가 사자의 평균 수명이 10~15년이라는데 바람이는 벌써 20살이 되었다니 마음이 급해졌다. 아무리 건강해졌다고 해도 수명이 다 되어 자연사할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지난 8월, 오직 바람이를 보러 여름 휴가지를 청주로 잡았다. 소위 ‘성덕’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동물원을 향해 달려가며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리던지!      


청주 동물원은 산기슭에 위치한 작은 동물원으로, 몇 년 전만 해도 매우 좁고 낙후된 시설로 운영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동물의 입장을 고려한 공간으로 변모하려는 노력이 이어졌고 바람이처럼 구조와 치료가 필요한 동물을 데려와서 보호하는 ‘보호소’ 역할을 하는 국내 첫 ‘거점 동물원’이 되었다고 한다. 바람이의 여자 친구 도도 또한 2번의 개복 수술을 거치고 치료를 받은 사자다. 이 밖에 웅담 채취용으로 길러졌던 사육 곰들이나 부리가 꺾여서 먹이를 제대로 먹지 못하던 독수리 또한 구조해 보호하고 있다.      




‘덕계못’(덕후는 계를 못 탄다–정작 팬은 좋아하는 스타를 만날 기회를 얻기 힘들다는 뜻)이라 했던가. 8월의 뜨거운 태양을 견디지 못한 바람이는 내가 찾아갔던 날 하루종일 실내사육사에만 머물러 있었고 나는 아주 멀리서 꿈뻑꿈뻑하는 바람이의 눈만 겨우 볼 수 있었다. 혹시나 해서 몇 시간 동안 동물원에서 서성대며 기다렸는데도 그날 바람이는 제대로 만날 수 없었다. 방송을 보고 바람이를 만나러 온 다른 관람객들도, 바람이를 취재하러 온 한 방송사 기자도 아쉬움에 발길을 돌렸다. 나는 조만간 날씨가 시원해지면 다시 찾아오기로 마음먹었다. 내 꼭 ‘계를 타는 덕후’가 될 테니 그때까지, 건강 잘 유지하며 잘 살고 있기를.      


휴가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우리가 키우는 고양이 두 마리로 위안을 삼았다. 이들은 원래 길고양이였는데 몇 년 전 주택에 살던 때에 마당에 들락거리자 남편이 먹이를 주는 바람에 우리 집에 정착하게 되었다. 평소 다른 고양이들이 고정적으로 괴롭히는 대상이어서 항상 상처를 달고 살았었기에 현재의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데려와야 할 것 같았다. 키우는 것이 자신이 없어 고민을 많이 했지만 결국 함께 하는 것으로 결정했고 지금은 우리집에 잘 적응해서 가족들과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어릴 때는 부모님이 <동물의 왕국> 같은 TV 프로그램을 보시면 ‘저런 걸 왜 보나’ 싶었다. 사람이 나와서 시끄럽게 떠드는 드라마나 코미디 프로가 재밌지, 말도 못 하고 그저 뛰어다니며 먹고 먹히는 동물들의 생활은 내 눈에는 그리 흥미롭지 않았다. 자연에 관심이 없는 것이 비단 식물에만 국한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이러저러한 이유로 여러 동물들이 내 눈에 들어온다. 교육 잡지 기자 시절 인터뷰했던 동물학자 최재천 교수가 ‘(생명에 대해) 알면 사랑하게 된다’고 말했는데 그런 이유에서 일까? 바람이도 우리 집의 길고양이들도 그 사연을 잘 알기 때문에 애착이 가는 게 아닐지. 나이 들면서 꽃이 좋아지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동물이 더 좋아지는 사람도 있나 보다. 어쨌든 생명에 대한 애틋함이 생기는 것은 나이듦의 긍정적인 면이 아닐까? 언젠가 바람이를 만날 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 사진출처 :청주동물원 공식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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