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레시피」 쓸데없지만 쓸모 있는 - 16
오랜만에
아주 아-주 오랜만에 온라인 무크지가 도착했다.
해피 코너와 고양이
최희승
짐을 늘리지 않기 위해 필사적 미니멀리스트의 삶을 실천하고 있는 나의 부평초 인생에서도 쉽사리, 혹은 절래로 놓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도자기로 만들어진 고양이 조각 삼총사이다. 엄지손톱보다 작은 세 개의 고양이 조각들은 2007년 유럽 배낭여행 중 프랑스 니스에서 발견한 것이다.
(...중략...)
부평초의 삶을 시작하고 이들은 나의 중요한 이른바 해피 코너를 담당하게 되었다. 해피 코너란, 책상이나 테이블, 창틀 위 등 집 안 어딘가에 작은 기쁨을 주는 것들을 올려두는 모서리를 부르는 말이다.
메일에 실려 온 이 글을 읽으며 사람 사는 건 거기서 거기라는 말을 떠올린다.
내게도 최희승의 '해피 코너'와 같은 '작지만 큰 기쁨이들'이 있다.
작은 세계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정교함과 깜찍함에 웃음이 절로 흘러나온다.
무심한 이들, 성급한 이들, 어두운 이들은 보지 못하는 비밀의 화원 같은 세계다.
기꺼이 그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이들..
오늘은 그런 이들이 그리워지는 날이다.
특히 나는, 배지 모으는 것을 좋아한다.
전시장이나 여행을 갔을 때 수집 대상 1호로 배지를 꼽는다.
미니미한 사이즈면서도 그 시간, 그 공간을 대표하는 이미지를 품고 있어 언제든 나를 그 자리로 데려가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동행하기에도 아주 그만이니 가심비, 가성비로 최고의 아이템이라 할 수 있다.
천가방을 주로 이용하는 나는 그때그때 기분에 맞춰 배지를 달고 다니길 즐긴다.
(그런데 잃어버릴 위기를 몇 번 겪고 난 뒤 많이 자제하는 편이다.)
이렇게 작디작고 작디작은 친구들을 보고 있으니 떠오르는 시가 있다.
나는 본디 서정주 시인을 좋아하지 않는다.
거기에 더해 그의 행적을 아는 이상......
그런데, 내가 유일하게 버리지 못하는 그의 시가 있다.
<우리 님의 손톱의 분홍 속에는>
우리 님의
손톱의
분홍 속에는
내가 아직 못다 부른
노래가 살고 있어요.
그 노래를
못다 하고
떠나올 적에
미닫이 밖 해 어스름 세레나드 위
새로 떠 올라오는 달이 있어요.
그 달하고
같이 와서
바이올린을 켜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생각 안 나는
G선의 멜로디가 들어 있어요.
우리 님의
손톱의
분홍 속에는
前生의 제일로 고요한 날의
사둔댁 눈웃음도 들어 있지만
우리 님의
손톱의
분홍 속에는
이승의 비바람 휘모는 날에
꾸다 꾸다 못다 꾼
내 꿈이 서리어 살고 있어요.
부디,
'우리 님의 손톱의 분홍'만큼 나의 마음을 휘어잡는 작고 소중한 우주를 만나서
더 이상 서정주라는 이름 석 자를 꺼낼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삶 속에서 작지만 큰 기쁨이들을 많이 만나길.. 많이 찾기를..
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