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 권장 프로젝트」 마음의 장바구니 - 19
어느 날 문득, 브런치북의 두 세계관을 결합시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치 권장 프로젝트」 '마음의 장바구니'에 실릴 도서를 「삶의 레시피」 '쓸데없지만 쓸모 있는'의 글과 짝을 이뤄 선정하고 있습니다.
이번 그림책은 「삶의 레시피」 여덟 번째 글, 나만의 놀이와 짝을 지어볼까 합니다.
생각을 모으는 사람이라.. 근사하다.
하지만 지금 내가 무언가를 모을 수 있다면, 모아야 한다면, 나는 시간을 모으고 싶다.
사실 생각도 지식도 건강도 돈도 모을 수 있다면야 물론 좋지만, 요즘 내게 간절한 건 우선 시간이기 때문이다. 어제도 잠을 자지 못한 채 코앞에 놓인 미션들을 꾸역꾸역 해나가는 나를 보면서 '학생 때 이렇게 열심히 했더라면..' 하는 생각을 했다. 마음 같아선 좀 더 잘하고 싶은데, 좀 더 찬찬히 하고 싶은데.. 시간이 허락되질 않으니 하루살이처럼 하루하루에 집중해서 앞으로 걸어 나갈 뿐이다. 본의 아니게 욕심을 내려놓는 연습이 되는 거 같아서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위안을 스스로 하며 많이 늦게 브런치를 시작한다.
배우 로빈 윌리엄스를 연상시키는 한 사람이 있다.
책을 찾는 독자에게는 관심도 없는 듯한 이 주인공은 허름한 가방 속에서 꺼낸 무언가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저 순수하게 호기심 어린 눈빛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정체 모를 것들의 디테일함이 독자의 궁금증을 자극한다.
(개인적으로) 그리 매력적인 그림은 아니지만,
취향을 뛰어넘는 그림인 것만은 분명하다.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한 듯하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인가, 바로 만나볼 수밖에...
그의 이름은 '부루퉁'이라고 한다. 그 이름이 나만 이상한 건 아닌 모양이다. 책 첫 문장이 "부루퉁 씨라는 괴상한 이름의 아저씨가 있단다."라고 시작하는 걸 보면. 아, 그런데 아저씨라기보다는 할아버지에 가깝다고 한다. 그러게, 아무리 봐도 그렇다.
이때 화자가 이렇게 말한다.
노인들은 종종 시간이 아주 많은 것처럼 보이지. (......) 곧잘 자기 주위에 조심스럽게 시간들을 쌓아 놓곤 한단다.
아, 이제 보니 부루퉁 씨는 내가 원하는 시간도 이미 모아 놓은 모양이다. 정말 부럽기 짝이 없다.
하지만 진짜 부러운 건 이 그림책을 쓴 작가일 것이다.
'생각'이라는 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작가의 상상력과 세계관이 탐날 만큼 매력적이다. 어떤 사람은 그림에 대해 불호를 나타내기도 하는데, 어디까지나 취향의 문제니까 그럴 수 있지만, 호불호를 떠나서 그 아이디어만큼은 엄지 척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생각들의 생김새나 움직임,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웃음이 절로 지어진다. 구석구석에 떨어진 갖가지 생각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쏠쏠하다.
이렇게 즐거워하는 부루퉁 씨를 보면서 나는 '나만의 놀이'를 떠올렸다.
누구나 남들은 잘 모르는, 남들이 할까 싶은 나만의 놀이가 한두 개쯤은 있을 것이다. 아마 있어도 인식을 못하고 살 수도 있지만.
무언가를 진심으로 즐길 수 있다면 충분히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부루퉁 씨처럼 자신만의 루틴까지 장착했다면 그야말로 완벽한 놀이일 것이다.
켜켜이 쌓인 생각들을 보면서, 가만히 옛날을 떠올려봤다.
나도 저렇게 열심히 무언가를 모으던 시절이 있었는데 말이다.
마론인형을, 메모지를, 단추를, 영화 포스터 엽서를, 영화 팸플릿을, 영화 잡지를 열심히 모았더랬다.
그렇게 열심히 모았는데, 이제는 미간에 힘을 주며 생각을 끄집어내야 겨우 떠오르는 일들이 되었다. 누군가 물었다. 아쉽지 않냐고. 그럴 때마다 난 최선을 다해서 즐겼기 때문에 쿨하게 정리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사실 무엇을 모았는지, 왜 모았는지, 어떻게 모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그 시간의 내가 존재했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책의 화자가 노인들은 곧잘 자기 주위에 조심스럽게 시간들을 쌓아놓은 다는 말이 이런 의미의 연장선이 아닐까. 그렇게 많은 것들에 애정을, 시간을, 에너지를 투자해 본 노인의 종착지는 생각이다. 이것도 참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어린 시절 이것저것에 몰두했다가 나이를 먹으면서 몰두하게 되는 방향은 생각, 지혜.. 이런 쪽으로 흘러가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같이 다가온다.
평소 놓치고 있던 생각에 숨을 불어넣고, 생각을 정리하고 가꾼다니..
이거야 말로 어른만의 놀이가 아닌가!!
이쯤에서 생각해 본다.
과연 나는, 내가 지금 바라는 '시간을 모으는 사람'이 될 만큼 어른이 되었는가?
Book. 『생각을 모으는 사람』, 모니카 페트 글 / 안토니 보라틴스키 그림 / 김경연 옮김, 풀빛, 2001.
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