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먼 곳을 다녀온다던 아버지가 제시간에 나타나지 않았다. 기다리던 연인의 전화가 오지 않았다. 간절히 바라던 합격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믿었던 팀원이 등을 돌리고 우리의 뒤에서 서운한 이야기를 했다. 한 치 앞도 바라볼 수 없던 눈보라 속, 도움의 손길이 나타나지 않았다. 더 많은 풍경이 있으리라. 우리에게 ‘철석같이 믿었었는데’라는 노랫말 한 줄에서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기억들이.
이적의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뮤직비디오 속 풍선을 한 가득 손에 쥔 아이. 물끄러미 어딘가를 바라본다. 웅크리고 앉아 밤이 깊어도 아이가 기다리는 무언가, 누군가는 나타나지 않는 것 같다. 그대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던 아이는 풍선에 파묻혀 예쁜 웃음을 지어 보이던 순간을 떠올린다. 찬바람에 길은 얼어붙는데 아이는 여전히 혼자다. 손에 쥐고 있던 풍선 한 줌도 곁을 떠나 날아간다. 잘못이 없던 아이는 무엇 때문에 혼자가 되었을지. 어쨌든 계속 혼자다. 아이는 텅 빈 종이 위에 계속 혼자 무언가를 그리고 지우며 남아있다. 아이가 가졌던 추억들은 스스로 버리고 체념해야 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체념해야 할 것들이 많은 이들을 떠올려보자.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은 한때 꿈 많던 소년이었고, 모든 어머니들은 풋사랑을 꿈꾸던 소녀였으며, 선잠을 설치며 이른 새벽부터 지하철에 몸을 싣는 어른들도 한때는 풍선을 손에 쥐고 누군가를 기다리던 아이였다. ‘취린이’라고 부르는 취업준비생들도 캠퍼스를 거닐던, 누구보다 빛나던 청춘이었다. 그것이 아주 잠시의 기억이었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랄까.
이적의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노랫말은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고 생각하기에는 형언하고 있는 언어의 수준이 전혀 낮지 않다. 작가 수준의 표현이라 할 만큼 단어 선택이 철학적이다. ‘물끄러미 선채 해가 저물고 웅크리고 앉아 밤이 깊어도’라는 말은 몇 년 살아내지 않은 아이가 내뱉기에는 참으로 어려운 단어이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너무 많이도 커버린 이적의 입에서 불려진 이 노랫말을 단순히 어른의 말이라고만 생각했었다. 다시 생각해본다. 이 노랫말들은 누가 말하는 것일까. 아 참, 우리와 달리 지독하게 순수한 아이의 말일 수도 있겠구나. 곰곰이 떠올려보면 ‘여기 서 있으라’는 말은 아이가 들을 수도 있는 말이다.
즉, 이적의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의 노랫말이 뻔한 사랑 노래로만 해석되지 않을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여기 서 있으라’는 말을 듣고 하염없이 어른을 기다리던 어느 깊은 물속 아이들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나는 좋은 사람이라 했잖아’는 자신을 낳아준 부모에게 버림받고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르는 긴 인생을 살아갈 입양아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산타할아버지를 진짜 ‘산타’로 철석같이 믿고 자라는 유치원의 아이일 수도 있겠지. ‘다시 나는 홀로 남겨진 거고’는 주인을 하염없이 기다리다 떠난 반려견을 그리워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내겐 잘못이 없다고 했잖아’는 연인을 기다리던 명동 거리의 쓸쓸한 남자도 떠올리게 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무엇이 떠올랐을까.
뮤직비디오 속 아이는 노래가 끝에 이르러 하얀 깃털로 가득 찬 천사 ‘날개’를 등에 달고 누군가에게 안기며 사라진다. 그런데 아이를 안아주는 어른의 등에는 ‘날개’가 없다. 누군가 아이에게 날개를 달아줬을지도 모르지만 어른이 된 누군가는 그 날개가 떼어져 있다. 다 커버린 어른이 스스로 떼어낸 것인가. 아무튼 아이보다 세상에서 홀로 해낼 수 있는 것들이 훨씬 많은 어른에게는 더 이상 날개가 없다. 슬프게도 스스로 날아오를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어른은 그러지 못해 보인다. 반면, 아이는 충분히 날 수 있다.
여기서 또 하나의 해석이 떠오른다. 천사 날개는 아이의 추억일 수도 있겠다. 평생 가지고 갈 수 있는 하얀 깃털이 모여 날개가 되고 그것은 아이에게 좋은 기억이 된다. 어른이 될수록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이 훨씬 많아짐에도 어른에게는 날개가 생기지 않는다. 이때 이적의 마지막 속삭임이 들려온다.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스물예닐곱 즈음이 되면 괜찮아져요, 서른 되면 괜찮아져요, 마흔 되면 괜찮아져요 라는 말들도 생각해보면 ‘여기 서 있으라’는 말과 같다. 그때 되면 괜찮으니 그냥 같은 자리에 서 있으라는 말. 네가 무엇을 해도 크게 변하지 않으니 그렇게 그냥 우두커니 서 있으라고.
‘음유시인’ 이적의 노래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에 관한 해석은 여전히 꽤 다양하다. 신기한 것은 뻔한 사랑 노래로 듣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만큼 세상에 ‘거짓말’이 많다는 방증일까, 아니면 여전히 누군가를 ‘철석같이’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일까. 노래 한 곡이 불러온 나비효과처럼 생각이 복잡해졌다. 달콤한 사랑 노래들도 충분히 즐겨 듣는 나지만 이런 노래도 많이 들려왔으면 좋겠다. 20대, 30대, 40대 누구나 듣고 자신의 일상과 삶에 대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좋은 노래. 생각의 틈이 참 많은 노래.
가사 한 줄에서 시작되어 천천히 생각해보니, 나름 길게 돌고 돌아 끝에 이른 오늘의 글. 철저히 내 기억과 가치관에 의한 해석들이니 당신도 이적의 노래를 한 번 들어보고 생각을 떠올려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