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사람이 어떻게 밥만 먹고살아?"

비행기를 타고 가던 너, 바다 가고 싶어 울었던

by 김명진

‘엄마, 사람이 어떻게 밥만 먹고살아?’


어린 시절, 반찬 투정을 부리며 누구나 한 번쯤은 어리광을 부리며 했던 말. 그저 맛있는 고기반찬이나 아이들이 좋아하는 기름진 음식을 찾아 무심코 했던 그 말이, 어느새 훌쩍 커버린 지금 돌이켜보면 꽤나 깊은 고민과 답을 묻는 질문이 되어버렸다.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에도 우리들은 밥만 먹고살지 않았다. 물론, 밥과 반찬을 비롯한 음식이라는 것이 인간의 조건에 빠질 수 없는 의식주를 이루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지만 때로는 배불리 먹고사는 밥 이외에 우리는 무언가 먹고살 것이 필요했다. 지금에 비하면 보고 들은 것이 터무니없이 부족하고 좁았던 어린 시절이었지만, 우리가 밥 이외에 먹고살아야 하는 것들에 대해 고민하게 된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지금도 선명하게 생각나는 것을 보니, 꽤나 철학적이고도 훌륭한 말씀이 아니었을까.


'모든 사람들은 한 살씩 나이를 먹을수록, 자신의 흘러가버린 과거의 추억을 먹으며 살아가는 거란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우리의 봄이 사라진다면, 우리의 봄은 이랬노라고 말할 수 있는 곡이 버스커 버스커의 <벚꽃 엔딩>이라는 유명한 댓글이 있었다. 누군가의 그 소중한 바람처럼 계절이 돌고 돌아, 매년 봄이 찾아오면 이 노래는 어김없이 차트 인하며 우리의 곁에 들려온다. 2012년 봄에 발매되었던 <벚꽃 엔딩>이 흘러나오던 시절,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자신만의 추억이 쌓여갔을 것이다. 누군가의 첫사랑과의 기억, 캠퍼스의 새내기 시절, 군 입대, 시험 합격, 결혼 등 저마다 다른 추억을 먹으며 버스커 버스커의 <벚꽃 엔딩>은 자라났을 터. 그렇기에 따스한 봄바람과 함께 봄이 돌아오면 그렇게 단단하진 <벚꽃 엔딩>은 사람들이 걷고, 떠드는 그 어디에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음악과 우리네 삶이 꽤나 깊은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들은 종종 찾아오곤 한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가정환경이 좋지 않아 사랑하는 부모님의 얼굴을 일주일에 한 번 밖에 보지 못한 아이가 있었다면. 그토록 보고 싶은 엄마에게 가는 차 안에서 들었던 음악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아이의 마음에 아로새겨질 것이기에. 먼 훗날 어른이 된 아이에게는 그 음악이 무엇보다 마음을 안정시키고 보고 싶던 엄마를 추억할 수 있는 음악이 될 것이다.


어릴 적엔 그저 마냥 신나는 음악이었지만, 너무도 많이 커버린 어느 날에 듣는다면 눈물이 나는 곡이 모두에게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신나는 멜로디로 사람을 슬프게 하는, 신기한 마법처럼 말이다. 내게도 그런 노래가 한 곡 있다. 2019년 8월 10일, 바로 오늘 당장 들어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오히려 더 듣기 좋아지는 노래. ‘순수’라는 단어가 세상 그 무엇보다 잘 어울릴 것만 같은 노래. 지금은 완전체로 모인 모습을 볼 수 없게 된 혼성그룹 ‘거북이’의 <비행기>다.

슬라이드 폰을 밀어 올리고, 폴더 폰을 접었다 펴며 문자를 찍었던 시절. 기술의 발전으로 그때의 감성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지만 조금은 불편했던 슬로우 라이프(Slow Life)가 그리워지는 순간이 문득 있다. 흔히 말하는 대형 음원 사이트 ‘멜론’의 실시간 TOP 100을 가득 채운 사랑 노래들 말고, 꿈이나 희망을 이야기하는 노래가 듣고 싶어 지는 감성과 일치한다. 내게 ‘거북이’의 <비행기>가 그런 의미와 다르지 않았다.


<비행기>는 철없던 어린 시절 비단 하늘을 나는 비행기뿐만 아니라, 처음 경험해보는 무언가를 기대하는 순수한 우리네 시절을 그대로 보여주는 음악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그 시절, 아버지의 슬라이드 폰에서 울리던 벨소리이기도 한 이 노래가 길거리를 걷다 문득 들려온 적이 있다. 괜히 그때가 생각나고, 나는 거리를 거닐며 오랜 기억을 조금씩 꺼내 먹었다. 당장 하루가 힘이 들고 지쳐있었지만 밥을 먹지 않아도, 나는 그 시절의 냄새와 공기 그리고 사람들을 떠올리며 배를 채웠다. 엄마에게 ‘사람이 어떻게 밥만 먹고살아!’하며 투덜거렸고, 오래전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의 뜻을 어렴풋이 이해했던 순간이었으리라. 나뿐만 아니라 이 길거리의 누군가 또한 노래와 추억을 먹으며 걸어가고 있음을 마음으로 느꼈다.

“비행기를 타고 가던 너 따라가고 싶어 울었던 / 철없을 적 내 기억 속에 비행기 타고 가요.”


그때와 달리 많이도 커버린 우리는 이제, 누군가를 따라가고 싶거나 맛있는 고기반찬이 먹고 싶어 떼를 쓰고 울지 않는다. 배를 채우고 무언가 음식을 집어넣고 싶다는 허기보다, 더 간절한 무언가를 찾아 먹고 싶어 할지도 모르겠다. 어제와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크게 달라지지 않고 내 눈에 비치는 풍경들 또한 비슷비슷해지는 일상 때문일까.


곱게 차려 입고 모든 것이 설레던 비행기 타러 가는 길. 바깥으로 스쳐가는 풍경조차 들뜬 기분. 수많은 사람들을 지나, 비행기에 오르는 마지막 게이트를 마주한 기분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 밥을 먹지 않아도 배부른 무언가가 내게는 무엇일까. 오랜 시간이 흐르면, 오늘 또한 철없던 과거가 될 텐데 그 날이 되면 내가 오늘을 추억하며 배부를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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