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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Nov 0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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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텅 비어버린 것 같은 배고픈 나날들이었다.

매일을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그중 절반은 모든 게 나의 무능 같아서 자신을 탓하며 일 년 가까이를 보냈다. 나무가 옷을 갈아입고 해가 부쩍 짧아지는 가을이 되어서야 퍼뜩 정신이 들었다.

1월부터였다. 이렇게 정신없이 지낸 건.


친구에게 얘기했다. 

적어도 누구에게서도 나에게 실망했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고.

친구가 그랬다. 

'야. 잘하려고 하지 마. 대충 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말이 끊길 때면 괜스레 딱히 들어온 메시지도 읽을거리도 없는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곤 했다. 약간 멋쩍은 마음이 들 때는 더욱 밝게 떠들어댔다. 그리고 돌아서서 후회했다. 

아까 그 말은 하지 말 걸...


아침이면 오늘은 아무것에도 휘둘리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했다. 

저녁이면 결국 또 이렇겐가 잘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과거에 늘 그랬던 것처럼 나 자신을 탓했다. 


아무도 나에게 뭐라 하지 않았는데, 자꾸 안으로 안으로 기분이 동그랗게 구부러졌다. 

기분처럼 내 몸도 자꾸 둥그렇게 말리는 것 같았다.

나는 작아지고 쪼그라들어버렸다. 이대로 말라붙어버린 먼지가 되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이대로면 안될 것 같아서 친구들에게 여행을 가자고 부추겼다.

'야, 시간 없잖아.'

'아니야. 나 시간 있어. 없어도 있어!'

친구들을 태우고 짧은 여행을 떠나던 날.

단풍으로 물든 산을 보며 운전하면서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신나는 음악을 틀었다.

들썩이면서 달린 끝에 바다를 만났다. 회를 안주삼아 소주를 마시고, 숙소에 들어가 좋아하는 영상을 실컷 봤다.



그러자 구부러진 내 등이 펴졌다.  

쪼그라들고 말라붙었던 마음도 수분을 머금은 구름처럼 몽글몽글 커졌다.



그래. 이대로 사라지기엔 내가 조금 아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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